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오르간 버전’ 지수 ‘꽃’…이토록 위험한 모험극이라니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 에오에…(중략) 구름 한 점 없이 예쁜 날, 꽃향기만 남기고 갔단다.” (블랙핑크 지수 솔로곡 ‘꽃’ 중) 몽환적인 보컬이 사라진 자리에 복잡한 음표가 내려앉는다. 생소하고 이질적인 현대음악 같기도 하고, ‘절대 반지’를 찾아 떠나는 판타지 영화 같기도 하다. 2분 55초 짜리 K-팝이 10분을 훌쩍 넘긴 ‘오르간 대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블랙핑크 지수의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 ‘꽃(FLOWER)’이다. “모든 곡은 오르간으로 연주할 수 있다”던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라트리의 말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지난 16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선 6년 만에 내한한 올리비에 라트리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올리비에 라트리의 리사이틀은 관객과 호흡하는 이벤트가 많다. 공연 시작 전 홀 앞에서 즉흥연주로 듣고 싶은
2023.05.17 10:47“더 하고 싶다”…‘가왕’ 조용필, 여전히 젊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왕의 시간’은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일생’이다. 데뷔 55주년을 맞은 2023년, 잠실주경기장에서의 여덟 번째 단독 콘서트에서 내리 세 곡을 연속으로 부른 뒤 꺼낸 첫 마디도 그랬다. “여러분과 평생을 함께 했어요. 제 나이가 몇인 줄 아시죠? 오십 다섯이에요. 아직 괜찮습니다.” ‘재미없기로 소문난’ (‘찰나’ 가사 중) 가왕식 농담에 세대를 초월한 팬들은 동그란 응원봉을 흔들며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손에 쥐고 놓치 않는 같은 빛깔의 응원봉이 가왕을 향한 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2023년 최신곡인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까지….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막을 올린 ‘2023
2023.05.14 15:22연극이 묻는다…우리가 외면한 세계의 진실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사전 정보 미리 읽고 가지 마세요.” 서울시극단의 공식 SNS에선 연극 ‘키스’의 게시물을 올리며 이 한 줄의 문장을 덧붙였다. 구구한 설명들이 극의 묘미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칠레의 젊은 작가 기예르모 칼데론이 쓴 이 작품은 201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초연됐다. 창작진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그 어떤 힌트도 줘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서울시극단을 이끄는 고선웅 단장은 작품에 대해 “허를 찌르는 반전이 큰 충격을 안길 것”이라고 했다. “반전이라는 말을 써도 안되지만, 그조차 쓸 수 없다면 작품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용했다”고 그는 귀띔했다. ‘반전’엔 여러 의미가 있다. ‘일의 형세가 뒤바뀐다’는 의미의 반전(反轉), ‘전쟁을 반대한다’는
2023.05.08 18:35‘돈키호테’의 영리한 재탄생…키트리 32회전 압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추장스러운 갑옷과 부츠를 벗고, 백발의 수염은 떼버렸다. 기골이 장대한 ‘젊은’ 돈키호테가 마침내 날아올랐다. 나이가 들어 춤을 출 수 없었던 돈키호테는 그의 꿈 안에서 그토록 그리던 ‘환상 속 여인’ 둘시네아와 파드되를 춘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이자 안무가인 송정빈이 재해석한 발레 ‘돈키호테’에서다.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4월 16일까지, 예술의전당)는 마침내 ‘돈키호테’다워졌다. 이 작품은 스페인 극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1869년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를 맡아 초연한 고전이다. 제목이 ‘돈키호테’였음에도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다. 돈키호테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된 춤 한 번 추지 못했고, 주인공마저 다른 사람에게 내준 조연에 불과했다. ‘꿈만 꾸던 영혼’이 ‘꿈 속에서&
2023.04.15 19:16평범한 사람들의 수호자, ‘너무도 인간적인’ 살리에리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신이시여,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을 안다는 것은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의 말씀은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헤라클레스에게 부여된 과제보다 어려우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보다 더욱 불길하다”고 했다. 살리에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신의 응답’을 구했기에, ‘그 어렵다’는 신탁도 온전히 받아들였다. 나를 알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자신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그의 삶은 어디로 향했을까.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 연극 ‘아마데우스’(4월 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살리에리의 광기에 찬 독백으로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정 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
2023.04.03 00:14짜릿하고 청량하다…다시 쓰는 여섯 왕비의 역사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 우릴 모두 여섯 명의 전 부인으로 알지.” 이것은 ‘일종의 선언’이다. 한 남자의 ‘이름’ 뒤에 가려진 ‘전 부인’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전포고다.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허스토리(Her story)’의 시작. 역사 속 주인공이 직접 쓰는 새로운 시대의 역사다. 시간은 500년 전 영국의 튜더 왕가로 되돌아간다. 헨리 8세에겐 출신도 제각각인 여섯 명의 왕비가 있었다. 두세 줄 짜리 역사로 기술한 여섯 왕비의 ‘사연 많은 삶’이 80분 짜리 팝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식스 더 뮤지컬’이다. 작품은 영국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동문인 20대 동갑내기 창작진 토비 말로와
2023.03.26 17:05정명훈·조성진, 마지막 포옹까지 완벽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미 열 번도 넘게 호흡을 맞춰본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무대. 오랜 인연, 그만큼의 시간의 길이가 빚어내는 조화로움은 유독 빛났다. 협연자 조성진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서로를 바라보며 세심히 귀를 기울였다. 피아노 솔로의 연주 중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휘자 정명훈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만남’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선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10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정명훈,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마지막 협연 무대가 관객과 만났다. 30여분의 화려한 협주곡은 한 눈 팔 새도 없이 흘러갔고, 협연을 마치자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립해 한국 클래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클래식 음악 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로도
2023.03.06 10:01‘거대한 한국사’ 위에 꺼내놓는 수많은 질문들…연극 ‘빵야’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굳이 찾아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보관한 소품 창고. 낡은 영창 피아노 위, 멋스러운 세고비아 기타 옆으로 단단한 케이스에 담긴 장총 하나가 놓여있다. 이곳에 1945년생,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태어난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 ‘99식 소총’(99식 소총은 단총과 장총으로 나뉜다)이 살고 있다. 이름은 ‘빵야’. 78년의 기구한 삶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귀여운 이름이다. 연극은 빵야와 드라마 작가 나나의 만남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빵야의 대사) 총은 말을 한다. 한국 연극 사상 본적 없던 기이한 장면이다. 굴곡진 생을 보내온 장총을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앞세운 사람은 2016년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김은성 작가다. 2020년 극본을 완성하고, 3년이 지나 마침내 막을 올린 작품이 바로 연극 ‘빵야’(2월 26일까지, LG아트센
2023.02.17 13:46아찔한 서커스로 소환한 기억…기발한 상상력의 승리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오면, 대형 모니터로 ‘Recall’(리콜)이라는 단어가 뜬다. 숨 막히듯 째깍거리는 소리가 극장을 메우고, 하얀 무대 위로 남자는 뛰어오른다. 깜빡이는 조명에 맞춰 시계 소리 같기도 하고, 메트로놈 소리 같기도 한 기계음이 커지며 숨통을 조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될 무렵, 무대는 얼굴을 바꾼다. ‘밀당’이 제법이다. 등장부터 신선했다. 무대 아래에서 무용수들이 올라온다. 일곱 명 ‘완전체’가 되자, 피아노와 관악기가 버무려진 재즈풍 음악에 맞춰 나긋나긋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뮤지컬의 1막 ‘첫 번째 신’ 같은 인상적인 출발. 알록달록한 평상복을 입은 무용수들은 의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다 무대 오른쪽에 움푹 파인 구멍 안으로 뛰어든다. 다시 홀로 남겨진 남자는 무대 끝에 설치된 작은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안무와
2023.02.02 10:36인생은 B와 D 사이의 C…뮤지컬 ‘이프 덴’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 때는 꿈이 있었다. 대학에선 제법 유능하고, 내일이 기대되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다. 어떤 미래를 그려봤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날개를 펴는 꿈. 그랬다면 10년 후의 미래는 달라졌을까. 인생은 B(Birth, 탄생)과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다. 눈앞에 놓이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의 결정이 지금의 오늘과 미래를 결정한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아주 평범하다. ‘백마 탄 왕자’는 없다. 내면의 성장을 이루며 위대한 업적을 쌓은 ‘역사적 인물’도 없다.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핍박받는 여성도 없다. 그러나 여성 서사물. 나이 39세, 성별 여(女), 이름 엘리자베스. 그의 삶이 이제 펼쳐진다. 뮤지컬 ‘이프 덴’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작품엔 거대한 서사도,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사건 사고도 없다. 평범한 일상 앞에 놓이는 고민
2023.01.24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