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말까지 0.5%p 추가인하 예고

한국도 내달 금리인하 가능성 고조

한은 부총재 “통화운용 여력 커져”

뛰는 집값·가계대출 증가는 부담

한은, 빅컷 vs 베이비컷...문제는 ‘가계부채’ [美연준 4년 반만에 피벗]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별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미국이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으로 통화정책 전환을 시작하면서 한국은행 역시 10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4년 반만에 글로벌 금리 인하 시대가 돌아오면서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에 여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빅컷을 결정하면서 공개한 점도표에서 연말까지 0.5%포인트 추가금리 인하 예고는 한은에게 더 큰 금리 압박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금리를 더 낮추더라도 환율이 튈 가능성이 낮아진 만큼, 내수부진 등 불안한 경기상황을 감안해서라도 빅컷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이 다음달 금리인하를 단행하더러도 그 폭을 확신하긴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선 내수 진작을 위해 강한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입장은 다르다. 집값과 가계부채 문제가 관리된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과도한 금리 인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은, 통화정책 운용 여력 커져”...우리나라도 10월 금리 인하할 듯=연준 빅컷으로 우리나라 통화정책 방향도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다음 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인하 결정이 나올 수 있다.

물가는 이미 인하 조건을 충족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114.54) 상승률(전년동월대비)은 2.0%로, 2021년 3월(1.9%)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환율 문제도 걱정을 덜었다. 고환율 문제는 근본적으로 미국보다 우리나라 금리가 낮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촉발됐다. 그런데 미국이 금리를 큰 폭으로 인하하면서 환율이 다시 튈 가능성이 낮아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2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면서 물가만 보면 인하 요건을 갖췄다고 평가한 바 있다. 금통위원 4명이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입장을 밝힌 것도 한은의 피벗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당정은 이미 내수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점도표에서 공개한 것처럼 연말까지 0.5%포인트를 더 내리게 되면, 국내 민간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자는 주장은 명분을 더 쥐게 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지방조달청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내수 활성화와 민생안정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그간 우리 경제는 견조한 수출 호조로 회복 흐름이 이어져 왔지만, 내수 회복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은도 이러한 주장에 일부 공감하고 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미국 통화정책의 피봇(통화정책 전환)이 시작되어 외환시장의 변동성 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되며 향후 국내 경기·물가 및 금융안정 여건에 집중하여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도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내수의 핵심 부문인 민간소비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빅컷’ VS ‘베이비컷’...문제는 ‘가계부채’=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같은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하기엔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최근 들썩이는 집값과 빠르게 불어나는 가계대출 때문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 직후 “한은의 통화정책은 금융 안정을 위한 것인데, 금융 불안정의 중요 요인이 부동산가격과 가계부채”라며 “한은이 이자율을 급하게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경제 전체로 볼 때 부동산 가격이 소득과 비교해 너무 오르면 버블(거품)이 꺼지는 걱정뿐 아니라 자원배분 측면에서도 부동산에 대출 등으로 돈이 몰렸다가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하는, 이런 고리를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실제로 꺾이지 않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8월 사상 최대 증가 폭(+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2일 기준 전세자금대출 포함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70조8388억원으로, 8월 말(568조6616억원)보다 2조1772억원 늘었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이달부터 시작됐고, 은행권이 연이어 1주택자 주택담보대출까지 막고 있단 점을 감안하면 감소세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

한은은 이에 우리나라 금리 인하 시작 시점이 11월이 될 수도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시장의 기대가 너무 부풀려져 있단 것이다. 앞서 이 총재는 10월 인하 가능성 관련 질문에 “10월에는 여러 경제 지표를 보고 판단해 결정할 것이고, 11월에 인하할 수도 있다. 어느 방향이라고 지금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홍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