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헐떡이는 흉곽, 근육의 떨림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박 → 3박 → 2박 → 4박. 망치로 내려찍듯 몰아치는 리듬, 의도적인 화음의 충돌.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는 발레리노들의 몸이 무대를 가른다. 주먹을 꽉 쥔 채 팔을 펼쳐 뛰어오르다, 충돌하는 땅을 향해 다리를 내리꽂는다. 자신의 몸을 무기로 만든 거친 공격성에 대지의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둘씩, 셋씩 무리를 이뤄 같은 동작을 추는 남성 무용수들은 어느 부족 사회의 전사들이었다. 국립발레단의 ‘봄의 제전’(8~10일, GS아트센터)이 관객과 다시 만났다. 2016년 이후, 무려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봄의 제전’은 작품의 안무가인 글랜 테틀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막을 올리게 됐다. 전 세계 8개국의 대표 발레단이 테틀리의 탄생을 기념해 올리는 공연의 일환이다. 이날의 무대는 지난 10년간 국립발레단이 확장해 온 몸의 언어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각자의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치는 처절한 현장이 관객들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테틀리의 ‘봄의
2026.05.11 13:09
질서와 광기 사이…조성진이 만든 ‘두 개의 우주’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아노는 괴물이었다. 오케스트라를 압도하고 집어삼킨다. 5분 가까이 이어지는 카덴차. 조성진의 얼굴은 야수처럼 타올랐다. 단단하게 받치고 선 저음 위로, 긴장감 넘치는 중간 음이 쌓였다. 그 위로 오른손이 만들어내는 칼날 같은 고음이 날렵하게 허공을 베었다. 명징하게 쏟아지는 음표 안에서 차가운 침착함이, 그 위로 이글거리는 야성이 도사렸다.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몸을 빌려 시공간을 뒤틀었다. 조성진의 손끝에서 관객은 ‘두 개의 우주’를 만났다. 지난 5일(예술의전당), 9일(롯데콘서트홀)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만남을 통해서다. 독일 남부 악단의 자존심인 뮌헨필이 깊고 풍부한 사운드로 판을 깔자, 그 위를 뛰노는 조성진은 두 얼굴을 꺼내 보였다. 뮌헨필과의 만남에서 조성진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첫날 공연에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둘째 날 공연에선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다. 두 번의 연주에서 조성진은 자신의 이름
2026.05.10 23:51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임윤찬의 위험한 음악 서사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개의 손가락은 시간을 건너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오갔다. 죽음을 예감하고도 눈부시게 거대한 소나타를 남긴 슈베르트,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황홀경을 꿈꾼 스크랴빈. 그 사이에서 피아니스트는 ‘몰락하는 자아’를 길어 올렸다. 내면의 아주 깊은 곳을 향해 두려움 없이, 기꺼이 뛰어들었다. K-팝 노랫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우즈 ‘드로우닝’) 스물두 살의 피아니스트가 빠져든 것은 음악이었다. 이성의 끈을 단단히 붙잡아 빈곤한 허상으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내버릴 준비를 이미 마친 것처럼 자신을 내맡겼다. 이번엔 ‘사유’였다. 임윤찬은 슈베르트와 스크랴빈을 꺼내며 소용돌이치는 가슴 안에 쌓아온 음악과 예술가의 사유를 꺼내놓았다. 리사이틀은 지난 3월 홍콩을 시작으로 일본 4개 도시(도쿄, 오사카, 나고야, 가와사키)를 거쳐 6일 롯데콘서트홀부터 이어지는 일정이다. 사실 프로그램은 공연을 앞두고 달라졌다. 임윤찬이 직접
2026.05.07 18:31
보랏빛 고독 뚫고 나온 빨간 구두…이소라의 ‘파스텔톤 위로’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봄은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도 더디게 당도한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라 화창한 색채로 빛나지만, 어떤 이에겐 기억과 상실을 되살리기도 한다. 이소라의 봄은 미로를 걸었다. 사랑과 실연, 기억의 미로였고,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감정의 미로였다. 고풍스러운 대학 건물 사이를 지나 평화의전당 앞에 다다르자, 들쑥날쑥해 보이는 연령대의 관객들이 입장을 위해 둥그렇게 줄을 섰다. 때마침 봄비가 내리는 날, 가수 이소라의 여덟번째 봄 콘서트 ‘봄의 미로’(5월 2~3일, 경희대 평화의전당)가 시작됐다. “비처럼 사랑을 부르는 봄비처럼”(‘바라 봄’) 아득한 기억을 부르듯 이소라는 첫곡 ‘바라봄’을 부르며 ‘시간의 미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계절을 상징하면서도 누군가를 ‘보는 행위’ 자체를 담아낸 이 중의적 곡을 시작으로 이소라는 오랜 팬들을 자신의 내밀한 세계에 초대했다. 이소라의 콘서트는 ‘없는 것’이 더 많은 공연이다. 화려한 LED영상이나
2026.05.04 00:06
“주인공은 카르멘 아닌 정명훈”…연출 없이도 증명한 ‘오페라 신(神)’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잘 조련된 명마처럼 금관 악기들이 리드미컬한 춤을 춘다. 단단하게 밀어붙이는 선율은 추동 엔진이 돼 흐른다. 다부지고 단호한 음표는 완벽하게 잘 짜인 ‘인생의 각본’.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비극이 이토록 짧은 3분에 담긴다. 아니나 다를까, 담배 연기처럼 피어난 현의 트레몰로, 심장박동처럼 바닥을 치는 팀파니. 그 사이를 가르며 한 인간의 운명이 도착한다. 세비야의 뜨거운 거리도, 투우장의 열기를 발산하는 경기장도 아니었다. 이렇다 할 세트도 없는 무대는 ‘조련사’ 정명훈의 양손이 공기를 가르자 19세기 스페인 세비야가 됐다. 남관모 KBS 교향악단 수석의 트럼펫이 날카롭고 정확하게 날아 꽂히고, 이원석 팀파니 수석의 강렬하고 경쾌한 타격이 이어지자 운명의 발소리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쾌활한 행진곡이 이내 절정에 다다르니 난데없이 늦춰진 템포. 현악기의 불길한 반음계 진행으로 ‘운명의 테마’가 이어지면 바순의 중후하고 어두운 음색이 귓가에 내
2026.04.23 16:16
BTS 2.0, ‘아리랑’으로 쏘아 올린 ‘한국적 세계화’의 서막[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룻밤에 300리(140km)를 달렸다’는 파발꾼이 뛰어 들어온다. 붉게 타오르는 연막탄을 든 파발꾼의 다급한 발걸음은 곧 ‘희소식’이라는 것을 수만 관중은 당연히 직감한다. 이날만을 기다린 아미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난 지금 폭발하기 직전이야(I‘m ’bout to blow a fuse), 통제불능, 머리 춤, 뛰어 미친놈인 듯, 어디에나 내가 존재해(Me everywhere), 얼쑤” (방탄소년단 정규 5집 ‘아리랑’ 수록곡 ‘훌리건’ 중) 챙챙거리며 금속성 칼이 서로를 겨누는 소리가 창공에 흩어지자, 거친 랩이 쏟아진다. 오프닝 곡으로 이보다 완벽한 선택은 없었다. 파발꾼의 예고편으로 달아오른 무대는 ‘왕의 귀환’을 화려하게 선포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BTS 2.0’을 선언하는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의 막을 올렸다. 회당 4만 4000명, 세 번의 공연만으로 약 13만 2000명의 관객과
2026.04.12 14:47
‘왕의 길’ 위에 선 BTS…광화문 월대에 새긴 ‘아리랑’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녕 서울, 위 아 백(We are back)!” ‘왕의 길’이 열렸다. 경복궁 근정전, 흥례문, 광화문을 지나 월대까지…. 세종대왕 동상을 마주하고 선 14.7m, 5층 높이의 큐브형 구조물 너머로 광화문의 위엄이 모습을 드러내자, 오랜 기다림이 함성이 돼 터져 나왔다. 수북한 운무 사이로 50명의 무용수가 길을 터주자, 방탄소년단(BTS) 일곱 멤버의 등장. 190개국에 생중계된 영상 안에선 미끄러지듯 훑어 내리는 카메라가 전 세계 아미들을 역사의 복판으로 끌어들였다. 방탄소년단이 돌아왔다. 21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 광장은 전 세계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들의 심장 박동을 동기화한 K-컬처의 성지이자, 글로벌 대중문화의 교두보가 됐다. 하이브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는약 10만 4000명의 관람객이 현장을 찾은 것으로 추산됐다. 티켓 예매자수, 통신3사, 알뜰폰 이용자, 외국인 관람객 수를 종합한 추정치다. 힙합 아이돌로 시작해 글로벌 팝스타를 거쳐,
2026.03.22 01:57
모든 길은 바흐로 통한다…안드라스 시프가 그린 건반의 계보학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꾸준히 한국을 찾는 거장은 이번에도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곤 무대 위 덩그러니 놓인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첫 곡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아리아 다 카포’. 내한 전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에도 바흐는 할 것”이라고 귀띔했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의 장장 3시간의 음악 여정의 출발이었다. 모든 길은 바흐로 통한다. 안드라스 시프가 펼쳐놓는 건반 위의 지도엔 언제나 ‘바흐’라는 거대한 태양이 존재했다. 88개의 건반을 잇는 시프의 음악 유전자는 언제나 바흐라는 ‘성산(聖山)’을 향해 있다.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 안드라스 시프의 리사이틀엔 어김없이 프로그램이 공개되지 않았다.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가 판매한 프로그램 북엔 그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中’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연주자의 공연이 확정되고 통상 1년 전 프로그램을 공지하는 것과 달리 안드라스 시프의 공연은 관객
2026.03.17 14:20
찬란한 결핍, 우즈가 그려낸 청춘의 아카이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다시 한번만 돌아와 줄래.” (우즈 ‘드라우닝(Drowing)’ 중) 청춘은 언제나 양면적이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지만, 그 이면엔 속절없이 가라앉는 심연이 공존한다. 우즈의 노래는 청춘을 앓는다. 그것도 지독하게, 그리고 뜨겁고도 시리게. 가수 우즈(WOODZ·조승연)가 14∼15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아카이브. 1’(Archive. 1)으로 월드쿠어의 포문을 열었다. 양일간 이어진 공연은 전석, 전회차가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번 공연은 우즈가 데뷔 13년 만에 내놓은 첫 정규 앨범 ‘아카이브’와 동명의 타이틀이 붙었다. 공연의 포문 역시 정규 앨범의 수록곡인 ‘블러드라인(Bloodline)’과 ‘다운타운(Downtown)’으로 열었으나,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그간 우즈가 쌓아온 치열한 ‘성장’의 궤적이었다. 그가 노래하는 청춘은 그저 맑고 밝고 희망차진 않다. 오히려 “나를 더 깊게 더 깊게, 잠겨
2026.03.15 23:58
군중의 광기부터 베드로의 통곡까지…3년의 기다림, 헛되지 않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라! 딸들아! 나와 함께 슬퍼하자” “보라! 누구를? 신랑을! 그를 보라! 어떻게? 어린 양처럼!” (바흐 ‘마태수난곡’ 제1곡 합창) 합창단이 질문하고 답을 하듯 역할을 나눈다.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선 합창단은 서로 대화하듯, 와서 보라고 소리치고, 무엇을 보라는 것이냐며 묻는다. 그 순간 공연장은 극장이 됐다. 이것은 그리스 비극보다 비극적이며, 오페라나 뮤지컬보다 드라마틱한 격정과 속죄의 서사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2026년의 수난절에 찾아온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관객들을 300년 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로 데려갔다. 한국 고음악계에서 선구적 역할을 해온 김선아 지휘자가 이끄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Collegium Vocale Seoul)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Collegium Musicum Seoul)이 3년 만에 다시 올린 무대다. 이날의 공연은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마
2026.03.12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