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산협력 현주소와 발전방향’ 세미나
글로벌 MRO 사업은 전체 무기체계 70%
인태지역 중심으로 하는 방산협력 구체화
한화오션의 미 함정 MRO 수주 큰 주목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확장되고 있는 군사 장비 유지·보수·정비(MRO) 산업이 우리 방위산업계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 해결과 방산협력 체계 구축을 위해 지역거점운영유지체계(RSF) 정책을 도입하며 무기체계의 원활한 운용을 위한 MRO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조선업 협력을 주문한 것도 향후 양국이 MRO 부문에서 상호 협력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2000년대부터 미 공군 전투기 창정비 사업을 수행해 왔고 최근에는 함정 MRO 분야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MRO 산업 육성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협력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항공, 함정은 물론 육상장비로 MRO 사업을 확대하고 방산 수출과 MRO 사업을 연계해 장기적 수익성을 확보하는 등의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미 방산협력 현주소와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국내 방산업계 주요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이후 한미 간 방산협력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MRO였다. MRO는 무기체계의 정비와 수리, 분해조립을 포괄하는 후속시장으로 사업의 기간을 연장한다는 차원에서 ‘방산업체의 노후연금’으로 불린다.
통상 무기체계는 가격이 비싸고 한 번 도입하면 장기간에 걸쳐 운용되기 때문에 획득보다 운영·유지에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실제 글로벌 MRO 사업은 전체 무기체계 시장에서 약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방산업계가 미래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MRO 사업이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수억 방위사업청 북미지역협력담당관은 “최근 MRO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배경은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으로 산업 기반이 악화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헤즈볼라 간 무력충돌 등을 거치면서 공급망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됐다. 중국의 급부상과 러시아-북한의 급격한 연결 등이 더 큰 위기의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를 동맹·우방국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면서 인태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방산협력이 구체화됐고 이는 우리나라에 기회가 되고 있다고 이 담당관은 강조했다.
최근 발족한 ‘인도태평양 산업 회복력 파트너십’(PIPIR) 협의체에서 우리나라가 MRO 분야의 공동의장직을 수행하게 된 것도 향후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긍정적이라고 봤다. 미국 주도로 출범한 PIPIR은 한국, 일본, 호주 등 13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며 방산 공급망 회복을 위한 국제협력을 추진한다.
그는 “함정 분야에서 MRO 사업 성과가 나오고 있고 항공 분야에서도 이미 외주 장비를 수행했으며 일부 항공 기종에 대해 시범 사업도 추가 수행할 예정”이라며 “지속적인 소요 확보와 더불어 엔진 등 핵심 탑재 장비까지도 MRO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서는 김대식 한화오션 특수선 MRO TF(태스크포스)장, 안혁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미주수출팀장, 김진겸 한화시스템 MRO 팀장, 정영식 LIG넥스원 MRO 사업부장 등 국내 주요 방산기업의 MRO 및 대미 사업 책임자가 총출동해 대미 MRO 사업 진행 상황을 소개하고 향후 협력 확대를 위해 필요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대해 의견을 내놨다.
김대식 TF장은 “미 함정 MRO 기회가 생긴 것은 인구 절벽에 따른 정비인력 수급 악화와 열악한 생산 작업 환경에 따른 기피 현상 영향”이라면서 “우리나라 조선업은 20년 정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군림했고 기술 인력과 인프라가 많다. 특히 부산·경남권에 밀집해 있어 조선소와 관련 업체가 밀집해 있어 상호 협력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MRO 사업을 개척해 새로운 수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정에 대한 기술과 제품 성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미래 조선업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현장에선 한화오션의 미 함정 MRO 수주를 평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화오션은 지난 12일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된 급유함인 유콘함의 정기수리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MRO 사업을 따낸 지 3개월 만에 추가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김대식 TF장은 “현재 월리 쉬라함의 기계, 통신, 전자장비 등을 전체적으로 정비하고 있고 두 번째 수주한 유콘함은 다음주 거제로 입항할 예정”이라며 향후 MRO 사업과 관련해 “인근 중소 조선소와 협업해 그들의 안벽과 설비, 인력을 활용해 공동 수행하는 협업 모델을 만드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안혁주 팀장은 이 자리에서 한미 상호조달협정(RDP-A) 체결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KAI는 록히드마틴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미 해군 고등훈련기(UJTS) 수주 전략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를 통한 수출 지원, 수출 승인 절차 간소화, 국제 국방협력 네트워크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방산 FTA(자유무역협정)로 불리는 RDP-A는 미 국방부가 동맹·우방국 국방부와 체결하는 것으로 각국 방위산업 시장 개방에 관한 법적 권리와 의무사항을 다루는 정부 간 협정이다.
김진겸 팀장은 “육상장비 MRO 사업의 현 주소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시장 개척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무조건 해내야 하는 분야고 이는 나라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제조, 시험, 정비기술 등 MRO 실무 조직을 구축하고 최상의 전투준비태세 보장을 위한 MRO 솔루션 제공을 목표로 관련 사업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며 “운용유지단계의 정비실적이 방산업체에 공유되는 등의 효율적인 수리부속 통합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