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여성 아티스트 최초 상암벌 입성
지난 21~22일 이틀간 10만 관객 운집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다 날 볼 수 있게, 날아줄게.” (‘홀씨’ 중)
홀씨가 돼 훨훨 날아올랐다. 5만 명이 가득 메운 상암벌에서다. 어느새 계절의 옷을 바꿔입은 9월의 저녁은 마치 2년 전 잠실구장을 달군 ‘오렌지 태양 아래’ 공연처럼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마법같은 순간이었다. 아이유가 “오늘 집에 돌아가면 오프닝의 모든 기억이 지워질 것”이라며 최면을 걸자, 순식간에 30분의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최면을 거는 듯한’이라는 제목을 붙인 콘서트의 첫 챕터였다.
명실상부 K-팝 퀸이다. 아이유가 지난 21~22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2024 아이유 허 월드투어 콘서트 앙코르 ‘더 위닝’(2024IU HEREH WORLD TOUR CONCERT ENCORE: THE WINNING’)’을 열고 10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아이유는 늘 ‘최초’를 만드는 기록의 아이콘이다.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2022년 서울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를 연 데 이어 마침내 서울 월드컵경기장까지 입성했다. 현재 주경기장이 보수 공사에 돌입한 상황에서 빅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상암벌로 좁혀졌다. 지금까지 이곳엔 서태지, 싸이, 빅뱅, 지드래곤, 세븐틴, 임영웅 등 단 여섯 팀의 아티스트만이 단독 공연을 열었다. 아이유는 밤 늦은 시간까지 공연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자 인근 아파트 단지인 성산시영아파트의 3710세대에 쓰레기 종량제 봉투 10매씩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지난 2월 ‘K-팝 성지’인 케이스포돔을 시작, 전 세계 18개 도시로의 월드투어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앙코르 콘서트다. 이날의 콘서트는 30대에 접어든 아이유가 지난 10여년간 착실하게 쌓아온 커리어를 증명하는 자리이자 모든 날들의 영광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탁월한 작사 작곡 능력과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10대에서 20대, 30대로 이어지는 모든 순간을 노래에 담아냈다. 아이유가 불러온 곡들의 노랫말을 이어 쓰면 한 사람과 한 시대의 서사가 완성될 만큼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불러온다.
‘홀씨’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아이유 콘서트의 상징인 ‘앙앙코르’까지 총 6개 챕터로 구성됐다. 무대는 대형 스크린을 일렬로 배치한 플로워석 앞과 공중그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1층 객석 앞 두 곳으로 구성했다. 상암벌을 날아올라 순식간에 월드컵 경기장을 횡단한 아이유는 “이렇게 가까울 거라고는 리설 전까진 몰랐다”며 “여기 계신 분들의 반짝반짝한 눈빛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여기까지 오는게 간단치 않아 한 번 오면 뽕을 뽑고 가야 한다“며 ‘블루밍’, ‘라일락’, ‘관객이 될게’까지 세 곡을 연이어 들려줬다.
앙코르 콘서트에선 아이유가 걸어온 올 한 해의 기록들을 영상으로 담아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유가 지나온 모든 날들을 함께 한 유애나(아이유 팬덤 이름)에게도 추억의 한 장이었다. 지난 시간을 응답하듯 5만명의 관객은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단 한 곡도 빠짐없이 떼창으로 화답했고, 함성으로 열광했다. ‘그 가수의 그 팬’임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너의 의미’를 부를 때 ‘유애나’의 가창력은 무척이나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유가 긴 무대를 천천히 걸어 이동할 때마다 경기장의 3면에서 구획별로 함성이 터지는 장면은 또 하나의 놀라운 볼거리였다.
이날 공연에선 최초로 공개하는 곡도 나왔다. ‘바이 서머(Bye Summer)’였다. 아이유는 “이번 투어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긴 여름을 보낸 것 같다. 서울 공연과 다음 도시인 요코하마를 제외하곤 모두 더운 도시여서 쭉 여름이었다”며 “전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번 여름은 특히나 좋았다. 제 인생에서 가장 긴 여름을 보내며 사랑했다고 인사하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 곡의 노랫말 역시 아이유가 직접 썼다.
대형 스타디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연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날씨로 인한 변수도 많았다. 아이유는 “첫날 공연엔 비가 오기도 했고, 안전상의 문제로 드론과 폭죽과 플라잉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비추기도 했다.
아이유의 첫 상암 콘서트는 웅장하고 화려했지만, 아이유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가수를 넘어 배우이자 시대의 아이콘인 그를 설명하는 수사는 사실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유는 언제나 K-팝 퀸이자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점이다. 이번 공연 역시 아이유의 목소리와 음악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무대를 가득 메운 9인조 밴드(코러스 포함)와 39명의 현악 오케스트라, 40명의 합창단은 아이유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뻥 뚫린 상암벌에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간혹 보컬과 연주의 합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흔들림 없는 노래에선 보컬리스트 아이유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다. 무려 62명에 달하는 안무팀 역시 아이유의 공연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였다.
‘공연 장인’답게 아이유의 공연은 역시나 볼거리도 많았다. ‘어푸’를 부를 땐 플로어 석 사이로 고래와 각종 해양 생물을 만든 종이 인형이 날아올랐고, 불꽃쇼 드론쇼는 물론 대형 인형까지 하늘 위를 떠다녔다.
드론쇼는 특히나 압권이었다. 공연이 시작한 시간인 7시로 맞춰진 대형 시계가 까만 하늘 위로 별빛처럼 떠오를 때 아이유는 디즈니 공주처럼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해 ‘라스트 판타지(Last Fantasy)’를 불렀다. 세 번째 챕터인 ‘로맨틱(사랑에 빠진)’의 마지막 곡이었다. 이 곡이 이어지는 내내 하늘에선 드론쇼가 이어지며 동화같은 시간을 연출했다. ‘라스트 판타지’의 곡을 마칠 땐 화려한 불꽃이 터지며 ‘뉴 판타지’라는 커다란 문구로 새로운 시작을 예고했다.
네 번째 챕터의 문을 연 ‘쇼퍼(Shopper)’는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오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은 뒤 마침내 ‘승리’한 아이유가 보내는 응원이었다. “터무니 없는 꿈은 없어요. 주저하지 말고 지금, 카트에 넣어요. 가지게 될 거예요”라는 문구와 함께 이 땅의 모든 ‘홀씨들의 꿈’을 응원하며 그는 ‘쇼퍼’를 시작했다.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폭죽은 아이유의 염원을 담은 불꽃이기도 했다.
두 시간을 내달린 공연은 아이유의 ‘승리 서사’를 완성할 ‘러브 윈스 올(Love Wins All)’을 마지막 곡으로 마무리하는 듯 했지만, 공연은 이 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앙코르에 접어들며 다섯번째 챕터(영웅적인)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 가수들을 향한 헌사인 ‘Shh’와 함께 문을 열고 다시 ‘홀씨’로 문을 닫았다. 수미쌍관이었다. 아이유는 그렇게 모두의 ‘행운의 여신’이 돼 만만치 않을 앞길을 10만명의 유애나와 다시 내딛었다.
“오늘이 제 가수 인생에 있어 단독 공연 100번째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안 세는 공연을 팬분들 중 누군가가 세줬어요. 그걸 대체 누가 센 걸까요. 9월 22일이 아이유의 100번째 공연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세어주신 분께 부모님과 같은 감사한 마음을 느꼈어요. 제가 앞으로 몇 백번을 더해야 가수 인생을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 닿는 데까지 해볼게요.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숫자를 세어주세요. 제게 오늘은 백일잔치 같은 공연이에요. 여러분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감히 ‘저 따위’가 이 공연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가능하면 더 많이 행복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