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임윤찬과 만난 츠베덴…‘황제의 탄생, 거인의 첫 걸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소년의 성장은 찬란했다. 패기와 열정이 넘쳤던 어린 황제는 전장의 고통까지 끌어안은 성년이 돼있었다. 황제는 마침내 태어났다. “음악만을 위해 살겠다”던 영재 피아니스트의 다짐이 음악으로 증명되는 순간을 관객은 마주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만났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의 취임 연주회를 함께 하는 자리. 지난 25일(예술의전당), 26일(롯데콘서트홀) 열린 두 번의 공연은 스타 음악가들이 함께 한 자리였던 만큼 공연 전부터 화제였다. 티켓 예매 시작 1분 만에 양일간의 좌석은 동이 났고, 시민 무료 추첨 티켓 경쟁률은 340대 1에 달했다. 임윤찬의 공연 날마다 이어지는 주차 대란은 여전했고, 공연장 로비는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K-팝 스타 못잖은 팬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도 일찌감치 매진된 프로그램 북을 애타게 찾아 다녔다. 임윤찬이 한국 관객과의 만남에서
2024.01.28 15:50노래神 vs 연기달인 vs 테너상...3인 3색 ‘조선인 최초 테너’ [고승희의 리와인드]
뮤지컬은 단 한 줄의 역사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한국 오페라’인 ‘춘희(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린 주인공. 일제강점기 동양 제일의 테너로 불린 성악가 이인선(1907~1960)에 대한 기록이다. 성악가 이인선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일 테노레’다. 뮤지컬의 스토리를 쓴 박천휴 작가는 “실존 인물 이인선에게서 따온 건 딱 한 가지”라며 “1940년대 초반 의대생이었지만,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유명한 성악가에게 오페라를 배웠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일 테노레’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간 나른했던 국내 뮤지컬 업계에 모처럼 등장한 신선한 소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흥행이 검증된 대작, 혹은 베토벤과 모차르트·반 고흐와 같은 서양 위인이 주인공이었던 그간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모처럼 우리의 역사에서
2024.01.24 11:30박헌영의 첫 애인, 미제 스파이?…누구도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 앨리스 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20년대 상해 시절 ‘박헌영의 첫 애인’이자 ‘거물급 남자들’ 사이에서 나라에 분탕질을 한 여성, ‘공산주의 빨갱이’이자 ‘미(美) 제국주의 스파이’. 그래서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린 사람…. 시대의 풍파를 살다간 한 여성이 있다. 그는 위대한 성취를 남긴 ‘독립운동가’도, 역사에 개인을 희생당한 피해자도, 모든 순간 현명한 판단을 내려던 주체적인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역사를 살았고, 역사에 휩쓸렸다. 굴곡진 현대사가 삶의 순간마다 깊숙이 새겨졌고, 역사 앞에서 한 사람이 아닌 여성으로 평가받았다. 한국 이름 현미옥,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받은 앨리스 현(1903~1956?). 1956년 함경북도 청진 해안, “미국에서 파견된 간첩”을 ‘즉결심판&rsquo
2024.01.21 18:21김선욱의 출발, 국심의 언박싱…막 올린 신년음악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장 백건우와 만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새 수장 김선욱,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스튜어트 굿이어의 첫 내한을 성사시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1월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국내 주요 악단들의 신년음악회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신년음악회는 국립은 물론 민간 오케스트라까지, 일 년에 한 번 전력투구하는 무대다. 새로운 해를 여는 무대인 만큼 쉬운 레퍼토리이면서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거나, 각 악단의 한 해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4대 주요 악단 중 먼저 출발한 두 악단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도 그랬다. 해오름극장 안 거대한 선물상자…국심의 콘셉트는 ‘언박싱’ 정통 클래식홀이 아니라 깊고 넓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안으로 거대한 선물 상자가 자리했다. 이날의 콘셉트는 ‘언박싱’
2024.01.18 15:34한 사람을 살리려 모두가 죽는 ‘그 연극’…김혜수·박보검도 관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면 남의 팔자에 따라 살고 죽는 겁니까.”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정영 아내의 대사)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죽는다. 의리와 충절이 지배하는 고대의 세계관. ‘칼로 물 베기’라던 부부싸움은 처절했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조씨고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려는 아비 정영(하성광 분). 아내는 “하룻밤 새에 바보천치가 됐다”며 “그깟 약속이 뭐라고, 그깟 의리가 뭐라고, 남의 자식 때문에 제 애를 죽이냐”며 피를 토한다. 남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려도 ‘예정된 운명’은 바꿀 수가 없다. 텅 빈 무대,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마룻바닥에 관객을 등지고 앉은 정영의 처(이지현 분). 아이의 죽음을 마주한 어미의 문드러진 심경이 작은 등에 묻어난다. 들썩이는 등에 분노와 슬
2023.12.20 16:46떼창, 또 떼창…2030세대 대동단결, ‘노엘의 팬’은 늙지 않는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노엘, 아이 러브 유(I love you)”를 외치면 노엘 갤러거는 한껏 들뜬 팬들을 진정시키듯, “아이 노우(I know), 아이 노우”라고 말했다. 공연장을 꽉 채운 20대 팬들은 지치지도 않았다. 목이 터져라 “사랑해”라며 또 다시 소리를 질렀고, 노엘은 플러팅을 이어갔다. 그는 “하우 머치?(얼마나?)”라며 “아이 러브 유 모어(내가 더 사랑해)”라고 답하며 의외의 달달한 모습으로 팬들을 조련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20세기가 21세기가 돼도 ‘노엘의 팬’은 늙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도 지금도 20대였고, 노엘은 그의 음악처럼 여전히 ‘청춘의 상징’이었다. 비틀스 이후 최고의 영국 밴드로 불리는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한국을 찾았다. 27~28일 이틀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공
2023.11.29 01:37임윤찬·정명훈의 ‘하모니’…명장면은 ‘레고 장미’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잠시 숨이 멎는 시간이었다.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 극단적인 느림이 쌓아올린 침묵의 순간들은 온전히 음악이 됐다. 결코 누구와도 같지 않은 임윤찬 만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2023년 ‘오케스트라 대전’의 마침표 격인 뮌헨 필하모닉과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클래식 아이돌’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이 마침내 막을 올렸다. 뮌헨 필은 지난 24일 대구를 시작으로 다른 나라는 거치지 않고 한국에서만 총 여섯 번의 일정을 이어간다. 26일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은 세 번째 시간이었다. 임윤찬의 협연은 이후 29일 세종문화회관, 다음 달 1일 롯데콘서트홀로 이어진다. 30일엔 협연자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나선다. 이날의 공연도 어김없이 ‘클래식 스타’들의 위엄이 입증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수 십년간 강력한 팬덤을
2023.11.27 10:56조성진, 조토벤 이어 조슈만…신뢰와 여유의 앙상블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따뜻하고 고운 목관 뒤로 겨울바람처럼 시린 피아노 소리가 이어지고, 깊고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선율들이 퍼즐을 맞춘 것처럼 제자리에 안착했다. 마주하는 눈빛에선 서로를 향한 신뢰, 다년간 쌓아온 믿음 속에서 피어난 여유가 묻어났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에스트로 안드리스 넬손스와 명실상부 최고의 ‘클래식 스타’ 조성진의 만남이었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이끄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대구콘서트하우스(17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12년 만의 내한이었다. 서울과 대구에서 이어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조성진의 협연에선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었다.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 수시로 협연했던 280년 역사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는 너무도 잘 맞는 선택
2023.11.19 15:06빈필 ‘유려’ vs RCO ‘고상’ vs 베를린필 ‘조화’…빅3 오케스트라 대전 승자는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계 빅3 악단이 한국을 습격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까지 한 주 사이에 모두 한국 관객을 만났다. 전례 없는 ‘오케스트라 대전’에 세 악단은 티켓 경쟁은 물론 악단의 음악성까지 한국의 클래식 애호가들의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파비오 루이지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베를린필, 빈필, RCO 등 세 특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큰 행운”이라고 했을 정도다. 세 악단의 연주는 취향의 차이만 있을 뿐, 우열을 가리긴 어려웠다. 저마다의 강점으로 이들은 스스로가 왜 빅3인지를 증명했다. 빈필은 유려했고, RCO는 고상했으며, 베를린필은 조화로웠다. ‘찬란한 소리의 향연’ 빈필, 다채로운 소리 인상적 랑랑의 쇼맨쉽은 여전했고, 빈필은 찬란했다. 이날의
2023.11.14 07:51감성과 이성의 공존…깊어진 조성진, 앙코르 마치자 베를린필도 박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악보 속에 박제된 음표들이 건반 위로 튀어오른다. 흰 종이 위에 잠들었던 까만 점에 피아니스트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맑고 깨끗한 음색,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은 정결한 소리에 오케스트라는 조심스럽게 발을 맞추며 풍성하게 감싸 안았다. 어떤 음악은 5초 안에 관객의 귀가 호오(好惡)를 가른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10여개의 음표가 첫인상을 결정한다. 건반을 누르는 왼손과 오른손의 무게, 그 무게로 실린 음색, 곡의 인상을 결정짓는 호흡. 조성진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5초의 승부’에서 압도적 승자였다. 이 연주가 라이브가 아닌 음반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미리듣기’와 ‘스킵(Skip·건너뛰다)’의 위협을 가뿐히 이겨내고, 누구라도 이들에게 34분을 맡겼을 것이다. 금세기 최정상 악
2023.11.13 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