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의 첫 애인, 미제 스파이?…누구도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 앨리스 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20년대 상해 시절 ‘박헌영의 첫 애인’이자 ‘거물급 남자들’ 사이에서 나라에 분탕질을 한 여성, ‘공산주의 빨갱이’이자 ‘미(美) 제국주의 스파이’. 그래서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린 사람…. 시대의 풍파를 살다간 한 여성이 있다. 그는 위대한 성취를 남긴 ‘독립운동가’도, 역사에 개인을 희생당한 피해자도, 모든 순간 현명한 판단을 내려던 주체적인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역사를 살았고, 역사에 휩쓸렸다. 굴곡진 현대사가 삶의 순간마다 깊숙이 새겨졌고, 역사 앞에서 한 사람이 아닌 여성으로 평가받았다. 한국 이름 현미옥,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받은 앨리스 현(1903~1956?). 1956년 함경북도 청진 해안, “미국에서 파견된 간첩”을 ‘즉결심판&rsquo
2024.01.21 18:21김선욱의 출발, 국심의 언박싱…막 올린 신년음악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장 백건우와 만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새 수장 김선욱,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스튜어트 굿이어의 첫 내한을 성사시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1월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국내 주요 악단들의 신년음악회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신년음악회는 국립은 물론 민간 오케스트라까지, 일 년에 한 번 전력투구하는 무대다. 새로운 해를 여는 무대인 만큼 쉬운 레퍼토리이면서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거나, 각 악단의 한 해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4대 주요 악단 중 먼저 출발한 두 악단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도 그랬다. 해오름극장 안 거대한 선물상자…국심의 콘셉트는 ‘언박싱’ 정통 클래식홀이 아니라 깊고 넓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안으로 거대한 선물 상자가 자리했다. 이날의 콘셉트는 ‘언박싱’
2024.01.18 15:34한 사람을 살리려 모두가 죽는 ‘그 연극’…김혜수·박보검도 관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면 남의 팔자에 따라 살고 죽는 겁니까.”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정영 아내의 대사)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죽는다. 의리와 충절이 지배하는 고대의 세계관. ‘칼로 물 베기’라던 부부싸움은 처절했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조씨고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려는 아비 정영(하성광 분). 아내는 “하룻밤 새에 바보천치가 됐다”며 “그깟 약속이 뭐라고, 그깟 의리가 뭐라고, 남의 자식 때문에 제 애를 죽이냐”며 피를 토한다. 남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려도 ‘예정된 운명’은 바꿀 수가 없다. 텅 빈 무대,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마룻바닥에 관객을 등지고 앉은 정영의 처(이지현 분). 아이의 죽음을 마주한 어미의 문드러진 심경이 작은 등에 묻어난다. 들썩이는 등에 분노와 슬
2023.12.20 16:46떼창, 또 떼창…2030세대 대동단결, ‘노엘의 팬’은 늙지 않는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노엘, 아이 러브 유(I love you)”를 외치면 노엘 갤러거는 한껏 들뜬 팬들을 진정시키듯, “아이 노우(I know), 아이 노우”라고 말했다. 공연장을 꽉 채운 20대 팬들은 지치지도 않았다. 목이 터져라 “사랑해”라며 또 다시 소리를 질렀고, 노엘은 플러팅을 이어갔다. 그는 “하우 머치?(얼마나?)”라며 “아이 러브 유 모어(내가 더 사랑해)”라고 답하며 의외의 달달한 모습으로 팬들을 조련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20세기가 21세기가 돼도 ‘노엘의 팬’은 늙지 않았다. 그들은 이전에도 지금도 20대였고, 노엘은 그의 음악처럼 여전히 ‘청춘의 상징’이었다. 비틀스 이후 최고의 영국 밴드로 불리는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한국을 찾았다. 27~28일 이틀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공
2023.11.29 01:37임윤찬·정명훈의 ‘하모니’…명장면은 ‘레고 장미’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잠시 숨이 멎는 시간이었다.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 극단적인 느림이 쌓아올린 침묵의 순간들은 온전히 음악이 됐다. 결코 누구와도 같지 않은 임윤찬 만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2023년 ‘오케스트라 대전’의 마침표 격인 뮌헨 필하모닉과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클래식 아이돌’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이 마침내 막을 올렸다. 뮌헨 필은 지난 24일 대구를 시작으로 다른 나라는 거치지 않고 한국에서만 총 여섯 번의 일정을 이어간다. 26일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은 세 번째 시간이었다. 임윤찬의 협연은 이후 29일 세종문화회관, 다음 달 1일 롯데콘서트홀로 이어진다. 30일엔 협연자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나선다. 이날의 공연도 어김없이 ‘클래식 스타’들의 위엄이 입증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 수 십년간 강력한 팬덤을
2023.11.27 10:56조성진, 조토벤 이어 조슈만…신뢰와 여유의 앙상블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따뜻하고 고운 목관 뒤로 겨울바람처럼 시린 피아노 소리가 이어지고, 깊고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선율들이 퍼즐을 맞춘 것처럼 제자리에 안착했다. 마주하는 눈빛에선 서로를 향한 신뢰, 다년간 쌓아온 믿음 속에서 피어난 여유가 묻어났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에스트로 안드리스 넬손스와 명실상부 최고의 ‘클래식 스타’ 조성진의 만남이었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이끄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대구콘서트하우스(17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12년 만의 내한이었다. 서울과 대구에서 이어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조성진의 협연에선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었다.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 수시로 협연했던 280년 역사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는 너무도 잘 맞는 선택
2023.11.19 15:06빈필 ‘유려’ vs RCO ‘고상’ vs 베를린필 ‘조화’…빅3 오케스트라 대전 승자는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계 빅3 악단이 한국을 습격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까지 한 주 사이에 모두 한국 관객을 만났다. 전례 없는 ‘오케스트라 대전’에 세 악단은 티켓 경쟁은 물론 악단의 음악성까지 한국의 클래식 애호가들의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파비오 루이지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베를린필, 빈필, RCO 등 세 특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큰 행운”이라고 했을 정도다. 세 악단의 연주는 취향의 차이만 있을 뿐, 우열을 가리긴 어려웠다. 저마다의 강점으로 이들은 스스로가 왜 빅3인지를 증명했다. 빈필은 유려했고, RCO는 고상했으며, 베를린필은 조화로웠다. ‘찬란한 소리의 향연’ 빈필, 다채로운 소리 인상적 랑랑의 쇼맨쉽은 여전했고, 빈필은 찬란했다. 이날의
2023.11.14 07:51감성과 이성의 공존…깊어진 조성진, 앙코르 마치자 베를린필도 박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악보 속에 박제된 음표들이 건반 위로 튀어오른다. 흰 종이 위에 잠들었던 까만 점에 피아니스트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맑고 깨끗한 음색,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은 정결한 소리에 오케스트라는 조심스럽게 발을 맞추며 풍성하게 감싸 안았다. 어떤 음악은 5초 안에 관객의 귀가 호오(好惡)를 가른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10여개의 음표가 첫인상을 결정한다. 건반을 누르는 왼손과 오른손의 무게, 그 무게로 실린 음색, 곡의 인상을 결정짓는 호흡. 조성진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5초의 승부’에서 압도적 승자였다. 이 연주가 라이브가 아닌 음반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미리듣기’와 ‘스킵(Skip·건너뛰다)’의 위협을 가뿐히 이겨내고, 누구라도 이들에게 34분을 맡겼을 것이다. 금세기 최정상 악
2023.11.13 07:15‘마중’ 건네자 ‘매기의 추억’ 화답…눈빛으로 교감한 ‘블루하우스 콘서트’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는 불과 2m.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52)은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으로 관객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길 샤함과 한국의 피아니스트 신창용(29)이 연주하는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A장조, Op13’.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만난 두 사람의 연주는 가을 날 따뜻한 온기를 춘추관으로 옮겨왔다. 길 샤함과 신창용은 지난 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2023 블루하우스 콘서트 II’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났다. 이날 공연은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꾸민 자리였다. 지난 4일 소프라노 신영옥과 피아니스트 노먼 크리거가 함께 한 첫날 연주에 이어 이날 길 샤함과 신창용,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의 무대로 두 나라의 오랜 우정을 나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호
2023.11.06 09:08190㎝ 지휘 영웅의 탄생…“현악 잘 살린 매끈한 해석”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0㎝의 큰 키로 성큼성큼 걸어나와, 포디움에 섰다. 긴 두 팔을 힘차게 벌려 허공을 가리키는 그는 마치 승리를 확신한 장수 같기도 하고, 어둠을 헤치고 나온 영웅 같기도 했다. 지금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의 첫 내한 공연. 스물일곱의 어린 나이, 훤칠한 미모, 피아니스트 유자왕의 연인…. 세간에 오르내리기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춘 메켈레는 마지막 남은 ‘물음표’마저 ‘느낌표’로 바꿨다.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가 그의 악단인 오슬로 필하모닉을 이끌고 지난 3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 관객과 만났다. 팬데믹으로 두 번이나 내한 일정은 취소됐고, 마침내 세 번 만에 성사된 한국 공연에서 그는 시벨리우스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메켈레의 자신감이자, 안성맞춤인 선택이었다. 핀란드에서 태어나 음악을 공부한 그가 핀란드가
2023.10.31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