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대타‘ 힐러리 한, 나흘간 같은 드레스도 감동이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명징하고 우아한 선율, 단 한 음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마지막까지 활 시위를 당겨 마침표를 찍는다. 섬세하고 깊이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단 한 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객석 사이사이에서 느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고, 마지막 악장까지 마친 이후에야 참았던 함성을 쏟아냈다. ‘슈퍼스타 대타’의 등장이었다. 종이 한 장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로 ‘얼음공주’라 불렸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본의 아니게’ 나흘 연속 한국 관객과 만난 그는 온화한 ‘봄날의 여왕’이었다. 지난 8일 협연자 손열음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마지막 리허설 날이었다. 서울시향에 따르면 손열음의 “고열을 동반한 심각한 인후염”으로 리허설 중 공연 중단이 결정됐다. 손열음은 얍 판 츠베덴 신임 음악감독의 취임 첫 시즌 중 임윤찬과 함께 가장 기대를 모았던 협연
2024.05.12 17:58손편지 같은 조성진의 슈만…‘깔끔함의 극치’ 정명훈과 도쿄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나하나 공들인 음표들이 물잔에 떨어진 잉크처럼 서서히 번져갔다. 화려하진 않지만 유려했다. 신중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누르는 음표마다 응축된 감정들이 내려 앉았다. 조성진의 슈만은 느릿느릿, 꾹꾹 눌러 진심을 써내려간 손편지였다. 불과 6개월. 지난해 11월 안드리스 넬손스가 이끄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조성진이 이번엔 정명훈이 이끄는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7일, 예술의전당)와 다시 한 번 같은 곡을 연주했다. 슈만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아내 클라라 슈만을 위해 작곡한 유일한 피아노협주곡인 이 곡은 강력한 피아노의 타건으로 시작을 알린다. 계절의 변화 만큼이나 조성진의 피아노는 완전히 다른 옷을 입었다. 조성진의 완벽주의는 변함이 없었으나, 계절의 변화 때문인지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이날의 슈만은 다른 사람의 연주인 것처럼 이전과는 또 다른 접근이었다. 6개월 전이 겨울이었다면, 이날은 완연한 봄날이
2024.05.08 13:14감당 못할 데시벨·벅찬 눈물…데이식스, 모두가 청춘이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데이식스, 웰컴 투 더 쇼!” “너와 함께 하는 미래가 위태로울지 몰라”도, 한 조각 숨어 있을지 모를 ‘감동’을 찾아 ‘함께 하자’고 맹세(‘웰컴 투 더 쇼’ 중)한다. 아련한 마음 담아 “제발 너를 사랑하게 해달라”(2024 미니 8집 ‘사랑하게 해주라’)고 노래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눈빛으로 “행복하라던 마지막 그 인사도 사랑인 줄 몰랐”(미니 8집 ‘그게 너의 사랑인 줄 몰랐어’)다고 토해낸다. 그 모든 것이 청춘이었다. ‘청춘의 사운드’는 멈추지 않았다. 초여름의 새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 하얀 상의로 ‘드레스 코드’를 통일한 마이데이(데이식스 팬덤)와 데이식스는 더이상 “혼자가 아닐 무대”로
2024.04.14 19:58“우리는 지금 세븐틴과 캐럿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린 지금, 세븐틴과 캐럿의 시대에 살고있어요.” (세븐틴 민규) 오후 5시 13분, ‘원팀’ 세븐틴이 등장하자 2만 8000여 명의 캐럿은 잠시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함성과 세븐틴을 연호하는 캐럿의 목소리는 이곳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아치운 톱그룹의 공연 현장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세븐틴의 앙코르 투어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인천 (SEVENTEEN TOUR ‘FOLLOW’ AGAIN TO INCHEON)’이 30~31일 이틀간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렸다. 세븐틴의 국내 공연은 지난해 7월 고척돔에서 열린 공연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양일간의 공연동안 세븐틴은 5만 6000여명의 관객과 만나는 것으로 월드투어의 포문을 열었다. 완전체 세븐틴을 보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다. 지난해 여름 고척돔 공연
2024.04.01 00:05후두염에도 노래한 조수미…기적 같은 15분이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행진곡 풍의 음악이 시작되자, 조수미는 개선장군처럼 무대로 걸어나왔다. 원조 ‘클래식 스타’의 입장에 객석에선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함성이 터졌다. 급성 후두염에 걸렸음에도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무대에 선 그는 도니체티 오페라 ‘연대의 딸’ 중 ‘모두가 알고 있지’를 들려줬다. 이날의 공연에선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명성과 위상, 그를 향한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후두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갔고, 1절을 마친 뒤엔 “2절”이라며 여유로운 무대 매너로 관객들에게 깨알 같은 웃음을 안겼다. 5분 길이의 곡을 마친 뒤에 승리를 확인한 장군처럼 씩씩한 경례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무사히 노래를 끝낸 후, ‘현실의 조수미’로 돌아온 그는 잉키넨 감독과
2024.03.31 19:51소년 첼리스트 한재민, 담대한 자기 확신으로 채운 100평의 무대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0평(333㎡)의 무대 위로 덩그러니 놓인 첼로단 하나. 지나치게 외롭고 유달리 더 작아 보이는 의자를 향해 보타이를 맨 소년 첼리스트 한재민(18)이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두려움도 없이 걷던 그는 2000명의 관객을 마주하고, 인사를 건넨 뒤 몇 번의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활을 움직였다. 역대 최연소 롯데콘서트홀 상주 음악가인 한재민의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이 지난 27일 열렸다. 이날의 공연은 한재민에겐 유독 특별한 자리였다. 상주음악가로 선정됐을 당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 솔로 독주회를 꼭 하고 싶었다”며 “항상 가슴 속에서 꿈꿔왔던 프로그램이자 올해 손 꼽으로 기다린 공연 중 하나”라고 했다. 관객들도 무척이나 고대한 무대였다. 공연에 앞서 롯데콘서트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행한 ‘한재민 응원하기’ 이벤트에서 관객들
2024.03.29 18:15예술의전당에 다스베이더가 나타났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I’m your father.(아임 유어 파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 다스베이더가 나타났다. 튜라스틸로 만든 검은 갑옷을 입고, 상징 같은 검은 헬멧을 쓴 은하 제국의 2인자. 영화 ‘스타워즈:새로운 희망’ 에피소드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강인한 포스와 파괴력의 상징 다스베이더가 새로 찾은 점령지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두려움도 없이 긴 줄을 늘어서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모처럼 예술의전당에 생기가 넘쳐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로 관객과 만났다.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영화음악 작곡가인 존 윌리엄스는 지난 70년간 약 150편의 영화 음악(OST)을 만들어온 OST의 장인이다. ‘E.T’,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슈퍼맨’
2024.03.25 12:546만 명 만난 ‘K-팝 퀸’ 아이유…‘승리의 여신’의 과도기?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누군가에겐 삶, 누군가에겐 좌절, 누구나에겐 굶주림, 또 누군가에겐 축복, 또 누군가에겐 결핍, 어쩌면 쉼.” 나지막한 목소리로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유의 날이 시작됐다. “고소공포 하나도 안 무섭다”(‘홀씨’ 가사 중)는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상공의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360도로 회전하며 ‘홀씨’를 불렀다. 아이유는 지난 2일을 시작으로 3, 9, 10일까지 서울 잠실 케이스포돔에서 ‘2024 아이유 허 월드투어 콘서트(2024IU H. E. R. WORLD TOUR CONCERT)’를 열고 6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이번 콘서트는 2022년 여성 솔로 가수 최초로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더 골든아워 : 오렌지 태양 아래’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아이유의 케이스포 돔 공연은 그 어느
2024.03.10 20:37조현병 엄마 때문에 왕따 당했다…내가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해?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사라의 하늘엔 비가 많이 내렸다. 엄마와 함께 구름다리를 오르던 그날부터였다. “하나님께 기도를 한 이후 화투에서 진 적이 없다”며 웃기 시작하는 엄마. 강력한 웃음에 전염되듯 사라도 따라 웃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엄마, 그만 웃어.” 사라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스민다. “사라 엄마, 혼자 실실 웃고 다녀.” 엄마의 웃음이 사라의 낙인이 된 날. 이 날부터 사라의 삶에 균열이 생겼다.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2월 23일~3월 3일·대학로예술극장)는 조현병을 앓는 엄마를 둔 10대 소녀 사라의 고백을 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이다. 질병 기호 F20, 조현병 가족이라는 이유로… 원형의 무대, 동그란 테이블 위에 사과 하나가 놓여있다. 그 옆으로 앉은 사라.
2024.03.03 18:15경계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찾아...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눈빛 한 번으로 충분했다. 열 명의 연주자들은 비밀결사대원처럼 ‘무언의 신호’를 주고 받았다. 척하면 척. 애써 맞추려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소리가 화음처럼 쌓여 음악을 만들었다. ‘너무 앞서가거나 뒤쳐지지 않게.’ (테리 라일리가 ‘In C’ 악보에 적어둔 지시사항) 어쿠스틱 기타, 모듈러 신스, 가야금, 바순, 쳄발로, 성악…. 10개의 악기가 교집합처럼 얽혔다. “음악 사이에 편재한 아름다움의 조각들”을 찾기 위해 저마다의 소리를 꺼낸 사람들. 각기 다른 장르, 서로 다른 악기를 다뤄온 10명의 연주자들은 아주 오래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나와 타인을 침범하지 않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Musica ex Machina)의 ‘인 앤 어라운드 씨(In & Around C)’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이다. 음악을
2024.03.02 1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