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스승은 오선지·제자는 음악’…손민수·임윤찬, 두 우주가 만든 초신성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스승과 제자 사이의 거리 약 1~1.5m. 두 대의 피아노는 건반을 마주한 채 무대에 섰다. 피아노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시선엔 늘 서로가 있었다. 스승의 시선은 내내 제자를 향했고, 제자는 스승과 눈을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사이로 8년, 2920일, 7만 80시간의 음악이 흘렀다. 두 개의 우주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클래식계에서 가장 화제인 ‘사제 듀오’가 왔다.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2022년)을 한 이후 국내 음악계의 변곡점이 된 피아니스트 임윤찬(21)과 그를 길러낸 스승 손민수(49). 지난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0 손민수 & 임윤찬’ 리사이틀에선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도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의 줄임말)에 뛰어들게 만든 사제 듀오의 위상이 증명됐다. 이날의 연주는 스승과 제자가 공유한 긴 시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견고하게
2025.07.15 10:20
짐승처럼 포효한 근육질 백조…고정관념을 깨자 달라진 ‘몸의 언어’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왕자의 방, 왕실 문장이 새겨진 커다란 침대가 쏟아질 듯 아찔한 경사로 기울어졌다. 왕실의 의무에 짓눌린 유약한 왕자를 괴롭히는 악몽. 그의 머리 위로 새장을 벗어나길 갈구하는 야성적 백조가 춤을 춘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내면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어느 밤의 호숫가, 생을 끝내려던 왕자의 앞에 꿈속 백조가 나타난다. 깃털 바지를 입고 근육질 상체를 드러낸 그 백조가 왕자를 구하며 매혹한다. 백조는 짐승의 몸짓으로 본능을 춘다. 매튜 본의 발레 ‘백조의 호수’다. 어떤 세계에서 남성은 흔치 않은 게 뒷순위다. 만약 당신에게 발레에 관해 묻는다고 치자. 적어도 10명 중 9명은 새하얀 튀튀(발레 치마)를 입고 우아한 아라베스크를 완성하는 발레리나를 떠올리지 않을까. 으레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세계의 법칙을 무너뜨렸다. 고정관념을 깨고 나온 ‘몸의 언어’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성별의 관념을 부수고, 전통의 경계를 넘어 찾아낸 춤의 어휘들은
2025.07.13 12:07
8만 블링크가 함께 ‘점프’…블랙핑크의 화려한 귀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블랙핑크 인 유어 에리어(BLACKPINK in your area), 뛰어!” 마침내 돌아왔다. 블랙핑크의 한 마디에 고양이 들썩였다. 웨스턴 스타일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사운드를 버무린 신곡 ‘뛰어(JUMP)’가 울려 퍼지자, 30도의 폭염을 잊은 블링크(블랙핑크 팬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폭죽과 ‘뿅봉’(블랙핑크 응원봉)이 분홍 파도를 만들며 ‘여왕들의 귀환’에 환호했다. K-팝 간판스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걸그룹’(타임)으로 군림해 온 블랙핑크의 컴백은 최근 K-팝의 가장 강력한 오늘을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블랙핑크는 5~6일 이틀간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새 월드투어 ‘데드라인’(DEADLINE)으로 7만8000명의 관객과 만났다. 2022∼2023년 월드투어 ‘본 핑크’(BORN PINK)로 180만 명의 관객과 만난 이후 1년 10개월 만의 ‘완전체’ 무대. 2년 8개월 만에 발
2025.07.07 08:46
온기 더해진 완벽주의자 지메르만, 박보검도 찾은 ‘역사적 순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박제된 음표가 그의 손끝에 내려앉으면, 공기의 온도가 달라진다. 불과 5초, 10개의 음표. 속삭이듯 이어가는 음표와 음표 사이로 온기가 스몄다. 두 개의 다른 시간대가 음악에 쌓였다. 1808년 초연돼 2025년에 다시 연주되기까지의 197년, 1993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빈필하모닉과 연주한 30대 청년 지메르만이 쌓아온 32년. 오선지 위에 박제된 검은 점에 불어넣은 숨결은 시간의 서사였다. 희귀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지난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선 뉴욕필과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협연이 성사됐다. 뉴욕필은 11년 만이 내한이며, 지메르만이 미국 악단과 연주하는 것은 장장 16년만, 뉴욕필과의 협연은 1996년 이후 29년 만이다. 2009년 LA타임스의 왜곡된 기사로 지메르만이 조국 폴란드에 대한 미국의 군사 조치에 항의해 미국 공연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지면서다. 심지어 지메르만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는 것도
2025.06.30 16:59
‘한국의 메디치’로 불린 손열음의 ‘키다리 아저씨’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른손과 왼손이 건반 위에서 모든 다른 노래를 불렀다. 타건 마다 세기도 박자도 속도마저도 달랐다. 복잡다단한 내면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변덕스러운 감정의 양 끝을 오간다. 평안한가 싶으면 격정이 소용돌이치고, 느릿한 여유를 만끽하다가도 이내 속도를 내며 건반 위의 양손이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손열음이 연주한 슈만의 ‘피아노를 위한 8개의 환상곡, 크라이슬레리아나’였다. “제가 왜 ‘크라이슬레리아나’와 같은 어려운 곡을 골랐을까 싶어요. 회장님은 한 번도 제가 어떤 곡을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시진 않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곡을 나도 좋아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성이 떨렸다. 무대를 마치고, 몇 번의 커튼콜 이후 마이크를 잡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 자리 잡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20주기 추모 음악회에서다
2025.05.26 07:01
한 편의 시가 된 ‘카멜리아 레이디’의 춤…발레는 눈물이 됐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울 앞에 선 파리 최고의 코르티잔(상류 귀족과 계약을 맺고 부유한 생활을 보장받는 여성) 마르그리트(조연재 분). 문밖을 나서면 귀족들의 열렬한 구애를 받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씻어낼 수 없어 절망한다. 그때 마르그리트의 마음을 두드리는 가난한 귀족 청년 아르망(변성완 분). 세상의 모든 것을 손에 쥔 사교계 인기녀의 장난스러운 플러팅에도 비너스를 보듯 사랑과 동경의 눈빛과 몸짓으로 마음을 전한다. 치기 어린 사랑이라 여겼지만, 마르그리트는 코르티잔의 삶과 진실한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에 실어 보내는 마음들이 서로를 어루만진다. 두 사람의 손이 닿으면, 마르그리트는 자신을 맡기며 운명적 사랑을 예감한다. 서로를 향해 기운 몸, 손끝에 실려 오는 숨결에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이 스민다. ‘카멜리아 레이디’ 속 두 주인공의 첫 2인무인 퍼플 파드되. 춤은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2025.05.12 15:01
면도칼로 다리를 긋자 관객이 떠났다…자기파괴적 예술가의 거대한 살풀이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새 나오는 잡음이 귀를 괴롭힌다. 붉은 막이 걷히자 그림 같은 수염을 단 남자가 고양이를 안고 등장한다. 다시 막이 닫히고, 시작하는 연극. “내 모든 것은 상처이며 피투성이다. 나는 이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통은 나에게 긍정을 향한 용기, 표현을 향한 무모함, 그리고 역설을 향한 본능을 주었다.” (에밀 치오란) 안헬리카 리델의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는 벨기에 엔티겐트 극장 상주 예술가이자 연출가인 밀로 하우가 기획한 ‘연극의 역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스페인의 전설적 투우사 후안 벨몬테의 서사를 별치해 안헬리카 리델이 자신의 연극사를 써내려간 작품이다. 스페인 출신의 전방위 예술가인 그는 신랄한 자기 독백과 파괴적 행위로 직조한다. 이국적 색채의 작은 방이 등장하며 연극은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다. 원형 테이블, 와인 한 병, 투명한
2025.05.10 11:15
“외롭고 고달팠지만, 행복하다”…왕관 내려놓는 ‘엘레지의 여왕’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보면은 외로운 길/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노래는 나의 인생 중) 66년을 걸어온 기나긴 길은 “어렵고, 외롭고, 고달픈 일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84·사진)는 “나의 대(代)가 끝나면 전통가요가 사라질까 싶어 마음이 굉장히 외로웠다”고 했다. 지난 26~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전통 가요 헌정 공연-맥(脈)을 이음’에서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낸 이미자는 이전 모습 그대로 흐트러짐 없는 마지막을 맞았다. 이틀간 6000석 전석이 삽시간에 매진된 이미자의 이번 공연은 가수 이미자로서 서는 은퇴 무대인 동시에, 이미자의 왕관을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갈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자리였다. 공연은 후배 가수 주현미·조항조·김용빈·정서주가 함께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전통 가요의 바통을 넘겨
2025.04.28 11:34
“외롭고 고달팠지만, 행복하다”…왕관 내려놓는 ‘엘레지의 여왕’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보면은 외로운 길 /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노래는 나의 인생 중) 66년을 걸어온 기나긴 길은 “어렵고, 외롭고, 고달픈 일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84)는 “나의 대(代)가 끝나면 전통가요가 사라질까 싶어 마음이 굉장히 외로웠다”고 했다. 지난 26~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전통 가요 헌정 공연-맥(脈)을 이음’에서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낸 이미자는 이전 모습 그대로 흐트러짐 없는 마지막을 맞았다. 이틀간 6000석 전석이 삽시간에 매진된 이미자의 이번 공연은 가수 이미자로서 서는 은퇴 무대인 동시에, 이미자의 왕관을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갈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자리였다. 그는 지난달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신곡
2025.04.27 23:45
‘매진까지 3분’ 전민철, 사뿐히 뛰어올라 새처럼 날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뿐히 날아올랐다. 탄성 좋은 고무공처럼 튀어 올라 재빠르게 교차하는 두 개의 발.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그러면서도 정확한 세 번의 동작 뒤 새처럼 지상에 발을 딛고 다시 도약한다. 발레의 고난도 기술로 꼽히는 앙트르샤 시스. 너무도 가혹하고 아름다운 형벌이었다. 지젤을 배신한 알브레히트에게 주어진 이토록 질긴 형벌은 스무살의 발레리노 전민철과 만나 아름다운 춤이 됐다. 누군가의 지옥은 누군가에겐 천국이었다. 용수철을 매단 것처럼 거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동작에 객석은 일찌감치 함성과 박수로 뒤덮였다. 앙트르샤 시스 2회차부터 터져 나온 함성은 같은 동작이 35번이나 이어지자, 환호는 경이로 달라졌다. 전민철은 35번의 점프 내내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다. 2년 전 한국을 찾았던 ‘파리오페라발레의 별’ 기욤 디옵의 앙트르샤 시스보다 3번이나 많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이 마침내 막을 올렸다. 지난 18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2025.04.22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