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5000명과 만난 Z세대 아이콘
테일러 스위프트와 에이브릴 라빈 사이
첫 내한 공연 수익 韓 여성단체 기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 마이 갓, 여기서 보니 다들 정말 아름다워요. 너무 사랑스러워요.”
2003년생, 여성, 필리핀계 미국인, 나와 우리의 이야기…. ‘젠지(Z세대)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21)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반짝이는 은색의 스팽글 탱크톱에 한 뼘 짜리 스커트를 입은 로드리고가 등장하자, 공연장에선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인간 콜라겐’처럼 팡팡 튀어오르는 로드리고의 발차기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였고, 관객들을 향한 ‘멋짐의 찬양’은 로드리고 식(式) 응원이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마침내 한국을 찾았다. 로드리고는 지난 20~21일 이틀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첫 내한 공연 ‘올리비아 로드리고 : 거츠 월드 투어(Olivia Rodrigo : GUTS World Tour)’를 통해 1만 5000명의 한국팬을 완전히 홀려 버렸다.
로드리고의 공연은 ‘예고편’도 없었다. 첫곡 ‘배드 아이디어 라이트?(bad idea right?)’부터 2020년대 ‘팝 펑크’ 스타의 재림을 알렸다. 금방이라도 사고를 칠 듯한 베이스와 드럼이 리듬을 연주하면 도전적인 싱잉랩을 술술 풀어가다 불만과 귀여움을 적절하게 장착한 팔색조 표정으로 온갖 끼를 대방출했다.
연달아 두 곡을 마친 뒤 로드리고는 돌출형 무대로 나와 객석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오늘 공연은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며 “모두 일어나서 소리지르고 노래하고 뛰어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로드리고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3층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 로드리고의 공연을 함께 했다.
로드리고는 데뷔와 동시에 전 세계를 평정한 팝스타다. 2021년 1월 열여덟 살 때 발매한 데뷔곡 ‘드라이버스 라이선스(drivers license)’는 미국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차트 왕좌에 오르며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드라이버스 라이선스’는 운전면허를 갓 취득한 그가 이별 후의 감정을 발라드 선율 위에 읊조리듯 부르는 곡이다.
이 노래는 로드리고 자신의 ‘환승이별’ 스토리를 그대로 담아내 인기에 불을 지쳤다. 심지어 그 대상이 로드리고가 드라마 ‘하이스쿨 뮤지컬’ 촬영 당시 만난 조슈아 바셋과 미국 배우 겸 가수 사브리나 카펜터라는 ‘역대급 서사’가 미국의 매체들을 통해 쏟아져 나와 엄청난 화제가 됐다. “볼 때마다 신경 쓰이던 금발의 그 언니와 함께 있겠지”라는 노랫말이 카펜터를 지칭한다는 것이다. 이후 숏폼 플랫폼 ‘틱톡’에선 무수히 많은 또래 여성들이 ‘운전면허증’ 인증으로 자신들의 뼈 아픈 환승연애 스토리를 공유했다.
로드리고는 ‘원히트 원더’에 머물지 않았다.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1위를 찍은 뒤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전 남자친구를 비꼬는 곡인 신스팝 ‘데자뷰’(deja vu)‘와 ‘굿 포 유(good 4 u)’까지 연달아 히트시키며 명실상부 새로운 세대의 팝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로드리고라는 팝스타의 뚜렷한 상징성은 여성들을 향한 ‘연대와 지지’다. 이날 무대에서도 로드리고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와 동세대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가 곳곳에 묻어났다. “한국에 와서 김치를 많이 먹고 올리브영에서 과소비를 했다”며 K-컬처에 녹아든 모습을 보여줬고, 관객들을 향해 쉴 새 없이 “멋있다”,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헌사로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응원했다.
피아노에 앉아 “청소년 시절의 난 어른이 되는 것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눈물의 생일파티를 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그 시절의 나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걱정하는 소녀들에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일이 찾아올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틴에이지 드림(teenage dream)’을 불러줬다. 로드리고가 단지 팝 음악계의 신성이 아닌 또래 세대의 ‘꿈의 아이콘’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드러머,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까지 세 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 기타리스트로 구성된 밴드, 8명의 여성 댄서와 선 무대 역시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 세계 ‘소녀’들이 열광하는 로드리고는 한국 소녀들의 마음도 훔쳤다. 이틀간의 공연에서도 20대 여성 관객이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국내 최대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티켓에 따르면 로드리고 한국 공연의 여성 예매자 비율은 전체의 74.5%, 20대가 63%를 차지했다. 30대는 18.9%로 2030세대는 81.9%를 차지하고 있다.
로드리고를 따라 다니는 별칭은 ‘테일러 베이비’와 젠지 에이브릴 라빈이다. 실제로 로드리고는 세계 최고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2000년대 파펑크 아이콘 에이브릴 라빈의 중간 즈음에 있는 아티스트다.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되 보다 직설적이고 수위가 높다. 전 남자친구를 ‘소시오패스’로 지칭하고 발차기를 해버리는 ‘굿 포 유’는 영락없이 그 시절의 에이브릴 라빈을 마주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날 ‘굿 포 유’는 앙코르 곡으로 나왔다.
로드리고가 가진 서사를 넘어 이날의 한국 공연은 그가 왜 세계적인 팝스타가 됐는지를 입증했다. 앙코르까지 총 23곡을 쉼 없이 소화하면서도 흔들림없는 탄탄한 라이브를 보여줬고, 록부터 발라드까지 장르를 아우르는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 실내체육관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로드리고는 이번 무대에 100t에 달하는 무대 장비를 공수해 월드투어와 똑같은 무대를 꾸몄다. 공연 중간 떠오른 커다란 초승달에 앉아 노래하며 꿈 같은 순간을 만든 것도 로드리고 공연의 특별함이었다.
그간 여성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로드리고의 행보는 한국 공연에서도 이어졌다. 로드리고는 한국 공연에 앞서 “‘거츠월드투어 서울’의 티켓 수익 일부를 한국여성재단에 기부한다”며 “한국여성재단(KFW)는 1999년부터 창의적인 성평등 프로젝트, 여성의 폭력 피해를 예방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 미혼모와 이주여성의 경제적 자립 등에서 수많은 여성 단체와 활동가들을 지원해왔다”고 재단의 취지를 설명하며 직접 기부를 할 수 있는 홈페이지 링크까지 공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