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페트렌코 지휘 서울시향 공연

KBS교향악단 이원석 팀파니 수석 참여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서울시향 등장한 KBS ‘팀찢남’, “친정 온 기분” [고승희의 리와인드]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한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이원석 KBS교향악단 수석/고승희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클래식 음악계의 세계관 대통합이 이뤄졌다. 일명 ‘팀찢남’(팀파니 찢어진 남자·KBS교향악단 787회 정기공연 중 팀파니가 찢어졌으나 무사히 공연을 마쳐 엄청난 박수를 받았고, 당시 영상이 무려 5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해 붙은 별명)이라는 별칭을 가진 ‘KBS교향악단의 스타’ 이원석 팀파니 수석이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의 객원 연주자로 등장했다. 할리우드로 치면 마블의 영토에 DC 히어로의 슈퍼맨이 등장하고, K-팝으로 치면 SM의 광야(SM 컬처 유니버스에 존재하는 가상 공간)에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뉴진스가 등장해 에스파와 한 무대를 꾸민 셈이다.

이원석 KBS교향악단 팀파니 수석은 지난 20~21일 이틀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공연을 마치고 “친정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원석 수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KBS교향악단 입단 전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첫발을 디딘 무대도 입단 전 마지막으로 공연한 오케스트라도 서울시립교향악단이었다”고 귀띔했다. 2022년 6월 티에리 피셔가 지휘하고, 프란체스코 피에콘테시가 협연자로 함께한 공연이 이원석 수석의 마지막 서울시향 무대였다.

이 수석이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이틀의 연주에선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시몬 트릅체스키가 협연,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들려줬다. 흥미로운 것은 2년 전 당시 공연에서의 협연곡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서울시향 등장한 KBS ‘팀찢남’, “친정 온 기분” [고승희의 리와인드]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한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이원석 KBS교향악단 수석/고승희 기자

브람스가 스물다섯에 쓴 첫 협주곡이자 첫 번째 관현악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청년 브람스의 풍부한 감성과 대담한 열정을 담고 있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 트릅체스키의 연주는 때론 록스타 같기도 때론 재즈 연주자 같기도 했다. 연주 후엔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서울에 다시 와서 기쁩니다. 음악은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죠”라고 인사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날 공연에서 돋보인 또 한 사람은 바실리 페트렌코 지휘자다. 2022년 서울시향, 2023년 서울국제음악제 연주에 이어 일 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페트렌코는 훤칠한 키와 길게 쭉쭉 뻗는 지휘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페트렌코는 동작만 봐도 음악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악기마다 시작되기 3초 전의 사전 지시로 관객들은 그의 손동작을 통해 다음 파트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보는 재미까지 더해진 지휘인데다 정확한 디렉션으로 각각의 파트를 섬세하게 조율했다.

페트렌코와 만난 서울시향은 지휘자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며 꽁꽁 숨겨뒀던 아름다운 소리들을 꺼내 음악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아름답고 우아한 현의 선율이 일품이었고, 흥이 차오르는 장면에서 페트렌코는 포디움 위를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즐겁게 음악을 이끌었다.

서울시향 단원들과 호흡을 맞춘 이원석 KBS교향악단 팀파니 수석의 연주도 돋보였다. 이원석 수석은 적재적소에서 ‘치고 빠지는’ 연주의 달인이다. 깔끔함과 드라마틱함을 동시에 지녔다. 이번 공연에서도 이원석 수석의 팀파니 연주는 빛을 발했다. 특히 페트렌코 지휘자가 190㎝의 장신답게 긴 팔을 쭉 뻗어 팀파니를 가리키면 이 수석은 그와 눈을 맞추며 서울시향 안으로 녹아들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에선 팀파니의 낮은 여린 저음이 피아노 연주와 어우러져 피아니스트의 것처럼 들리는 마법이 펼쳐지기도 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서울시향 등장한 KBS ‘팀찢남’, “친정 온 기분” [고승희의 리와인드]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한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이원석 KBS교향악단 수석/고승희 기자

이원석 수석은 “공연을 마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며 “사실 클래식 음악계, 특히 외국에서 서로의 오케스트라를 오가며 객원 연주를 하는 경우가 흔해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선 일반적이지 않아 신선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국내 주요 악단의 수석이 타악단에서 객원 연주를 하는 것이 완전히 처음은 아니지만 흔치는 않은 사례다. 특히 객원 연주의 경우 해외 악단에서 오는 사례가 많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현재 팀파니 수석이 공석이라 이원석 KBS교향악단 수석과 함께 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이 수석이 KBS교향악단 입단 이후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의 객원 연주자로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올초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지휘한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 녹음에서 이 수석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번 서울시향 연주에선 베를린슈타츠카펠레의 이소정 단원도 첼로 수석으로 연주를 함께 했다.

이 수석과 페트렌코 지휘자는 이번이 첫 만남이다. 다만 그는 5년에 한 번 주기로 페트렌코의 리허설을 직접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수석은 “수년전 영국에서의 리허설을 봤을 때와 이번 서울시향의 리허설 모습이 많이 다른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영국은 리허설을 많이 하지 못해 한 번 밖에 못했지만 이번 서울시향에서 총 세 번의 리허설을 가졌다”고 했다. 리허설 시간만 치면 총 13시간 30분(첫째날 6시간, 둘째날 5시간, 셋째날 2시간 30분)이었다. 이 시간동안 서로를 충분히 알아가며 음악을 맞춰나갈 수 있었다. 이 수석은 “특히 현악 파트의 디테일을 꼼꼼히 잡아가며 많은 부분애 신경쓴 것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틀 간의 공연을 마친 바실리 페트렌코 지휘자는 오는 28~29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과의 협연 무대로 다시 한국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