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그리웠던 그 소리” 김선욱·주미 강·지안 왕…10여년의 인연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깊고 풍부한 첼로 선율과 함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단단하고 섬세한 바이올린이 첼로를 이어받고, 그 뒤로 젊은 악단의 건강한 소리로 선율을 만들어간다.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강 대 강의 대립처럼 느껴지는 1악장의 서두를 지나면 바이올린과 첼로의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깊이 숨겼던 해묵은 이야기를 꺼내 지난했던 시간과 그 시간 위로 쌓인 감정들을 토해내며 소리는 하나로 포개진다. 첼리스트 지안 왕,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의 ‘가을에는 브람스’(9월 19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였다. “아, 맞아, 이 소리지! 이게 그리웠던 거구나.” 클라라 주미 강은 첼리스트 지안 왕과의 리허설을 마친 후 촬영한 경기아트센터의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10여년 전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함께 연주했다. 주미 강은 “그때가 이중 협주곡의 첫 연주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날 공연은 경기필하
2025.09.26 00:39
거장의 활은 녹슬지 않는다…‘현의 여제’ 정경화의 황혼을 만난 시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사랑해요!” 커튼콜 중 잠시 박수가 멎자 관객 한 사람의 목소리가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귓가로 날아든 관객의 음성에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는 온몸으로 ‘하트’를 만들었고, 이내 마지막 앙코르를 연주한다. 때마침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었다. 이 곡은 한국에선 정경화(77)가 처음으로 음반에 담아낸 작품이다. 1985년 데카에서 발매한 소품집 ‘콘 아모레(Con Amore)’에 수록된 ‘사랑의 기쁨’에 대해 그는 “첫아들을 낳은 해, 과르넬리로 바이올린을 바꾼 해에 녹음했다”며 “아들과 남편에 대한 사랑을 담은 곡”이라고 한 TV 프로그램에서 말했다. 이날은 공연을 찾은 관객들을 향한 사랑을 담았다. ‘현의 여제’ 정경화와 그의 ‘영혼의 동반자’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지난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낭만의 시대’로 돌아갔다. 평택(13일)을 시작으로 고양(21일)을 거쳐 통영(26일)으로 이어진 한국 투어 일정 중 하나다. 정경화와 케너는
2025.09.25 15:54
정명훈의 ‘사랑’은 위로와 포용…36년 동행의 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시간의 힘이었을까, 재능의 힘이었을까. 정명훈이 지휘봉을 드는 순간, 같은 음악도 완전히 달라진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상당수는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함께 해온 세월이 36년. 한 사람이 살아온 생의 길이와도 같은 날들을 함께 한 지휘자와 악단의 대화는 어디에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마에스트로의 팔이 공기를 가르면 아름다운 현악 선율이 바람처럼 유유히 흘렀다. 첫 곡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부터, 마지막 앙코르곡 윌리언 텔 ‘서곡’까지,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정명훈과 이탈리아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두 번의 연주(9워 17일 에술의전당, 18일 부산콘서트홀)에서다. “이 오케스트라는 제게 가족과 같아요. 음악에 이토록 깊은 사랑을 쏟는 오케스트라는 드물죠. 음악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앙코르에 앞서 포디움에 선 정명훈 지휘자는 라스칼라와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간은 무려 2분. 정명훈이 무
2025.09.22 18:41
[영상] 구토, 채혈, 전라의 무용수…피 범벅된 잔혹 무용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새하얀 벽에 타고 흘러내린 핏줄기가 바닥까지 흥건히 덮어버린다. 피범벅이 된 무대로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8명의 남자 무용수가 등장해 핏자국을 닦아낸다. 오랜 시간 눌어붙어 잘 지어지지 않는 벽을 박박 문지르고, 검은 걸레로 피 웅덩이를 몇 번이고 훔쳐낸다. 귀를 괴롭히는 진동 같은 전자음. 아무런 말 없이 폭력의 흔적을 지워내니 무대는 핑크빛만 남는다. 아무리 닦아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역사 위에 다시 폭력이 그려진다. 8명의 무용수가 다시 선 무대. 한 사람의 춤으로 무대는 시작한다. 반복적인 테크노 음악에 맞춰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휩쓸리고 당겨진다. 극도로 절제되고 정제된 전통의 세계인 ‘일무’ 공연으로 3000석 대극장 무대를 매진시킨 안무가 김성훈(43)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용의 신세계를 열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축제인 ‘싱크넥스트25’를 통해 선보인 ‘핑크(Pink)’다. ‘핑크’는 국내 무용계에
2025.09.01 09:59
나이 합쳐 360살 ‘불혹의 아이돌’ 슈퍼주니어는 여전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멤버수 9명, 평균 나이 40세(39.6세), 모두의 나이를 합치면 총 360살. 지난 20년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개척했고, 오랜 시간 장수 그룹으로 여전한 ‘폼’을 지키고 있다. 20년의 긴 세월은 써 내려온 역사이자, 써나갈 시간의 탄탄한 기반이었다. “슈퍼주니어 20년의 역사, 과거·현재·미래를 총망라해서 우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보여드릴게요. 슈퍼주니어의 밝은 미래를 기원합니다!” (이특) 리더 이특의 한 마디에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멤버들도 팬들도 여전했다. 지난 20년간 쌓아 올린 멤버들의 에피소드가 봇물 터지듯 터졌고, 그때마다 엘프(슈퍼주니어 팬덤)는 슈퍼주니어의 곁을 지켰다. “20년간 ‘엘프’(팬덤명) 여러분과 함께하며 행복하고 좋은 추억도 많았다. 그만큼 아프고 슬픈 일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멤버들과 ‘엘프’가 함께 울고, 걱정하고, 기도해 줘서 20년 동안 활동해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22~2
2025.08.25 01:41
담배 문 심청·‘노답’ 심봉사·탐욕 덩어리 뺑덕…막장 ‘심청’의 등장 [고승희의 리와인드]
#떡밥 1. 파도소리가 휘몰아치는 극장. 대형 스크린에서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심청은 누구인가요?” 2025년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 10명 중 7명의 답변이 같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효녀’”. 고전의 고정관념에 갇힌 답변이 나올 때마다 영상에선 안과 광고가 등장한다. ‘뻘소리’나 다름없다는 듯한 짓궂은 일갈이다. (판소리 시어터 ‘심청’ 본공연 전 영상) #떡밥 2. 새하얗게 분칠한 얼굴, 시커먼 눈두덩이. 망령이 된 70명의 소녀가 뛰어든다. 웃음 같은 비명이, 비명 같은 절규가 작은 몸을 타고 극장 안을 휘감는다. 마음껏 웃지 못했고, 마음껏 아프지도 못한 채 삶을 갈취당한 소녀들이다. (판소리 시어터 ‘심청’ 공연 직전 퍼포먼스) 무대는 공연 시작 전부터 ‘대형 떡밥’을 던진다. 어수선한 객석에서 누군가는 집중하고 누군가는 흘려보낼 이 장면은 판소리 시어터 ‘심청’이 펼쳐낼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서막과 같다. 제작기간
2025.08.19 14:48
‘제2의 임윤찬’ 김세현, 클래식계 ‘새로운 스타’ 등장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세이 미야케의 플리츠 상하의를 입은 ‘소년 피아니스트’는 긴장한 기색도 없이 걸어 나왔다. 600석을 꽉 채운 관객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검은 손수건으로 건반을 쓱쓱 닦아내더니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시작했다. 첫 음부터 남달랐다. 어린 피아니스트의 패기와 강력한 힘, 음악 안에서 한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개성이 연주 내내 넘실댔다. 피아노 위에서 마음껏 노니는 천진함과 대성한 피아니스트들에게서 포착됐던 광기, 나이를 의심케 하는 성숙한 감정과 그와는 반대로 나이를 역행하는 개구진 순수성이 한데 버무려져 피아니스트 김세현의 오늘을 들려줬다. 지난 8일 2025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열린 리사이틀에서다. “피아니스트가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면 2000명의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주를 선보일 수 있겠지만, 자신을 버리고 음악을 섬기는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는다면 한 명 한 명의 청중을 변화하게 만드는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겐 후
2025.08.11 14:05
“내가 왕자다”…한 차원 높은 ‘백조의 호수’
이제 막 성인이 된 왕자의 성인식. 무대 한쪽에서 ‘콩쿠르 왕자’ 다닐 심킨(38)이 등장하자 옅은 탄성이 객석에 묻어났다. 걸음걸이부터 자태가 달랐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회전, 하늘을 날아오를 때 곧게 뻗은 다리와 무대가 완벽한 수평을 이룬다. 단 5초면 충분했다. 그 시간은 심킨이 객석을 사로잡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춤은 순식간에 보이는 예술이나, 발레 무용수에게 1분은 무엇 하나 보여주기 힘든 시간이다. 무용수들은 “걸어 나오는 데에만 5분이 걸리고 감정을 다듬어 다음 동작과 연결하기까지 10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동작 하나를 제대로 선보이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 그는 차원이 다른 ‘어나더 레벨’의 경지에 있었다. 러시아계 독일인인 심킨이 한국에서 첫 전막 발레 무대에 섰다. 예술의전당과 공동 제작한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백조의 호수’를 통해서다.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의 상징이다. 1877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작곡가 표토
2025.07.24 11:26
다닐 심킨의 ‘내가 왕자다’…어나더 레벨 ‘백조의 호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제 막 성인이 된 왕자의 성인식. 무대 한쪽에서 ‘콩쿠르 왕자’ 다닐 심킨(38)이 등장하자 옅은 탄성이 객석에 묻어났다. 걸음걸이부터 자태가 달랐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회전, 하늘을 날아오를 때 곧게 뻗은 다리와 무대가 완벽한 수평을 이룬다. 단 5초면 충분했다. 다닐 심킨이 객석을 사로잡는 데에 필요한 시간. 춤은 순식간에 보이는 예술이나, 발레 무용수에게 1분은 무엇 하나 보여주기 힘든 시간이다. 무용수들은 “걸어 나오는 데에만 5분이 걸리고 감정을 다듬어 다음 동작과 연결하기까지 10분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동작 하나를 제대로 선보이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 그는 차원이 다른 ‘어나더 레벨’의 경지에 있었다. 러시아 출신 독일인 다닐 심킨이 한국에서 첫 전막 발레 무대에 섰다. 예술의전당과 공동 제작한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백조의 호수’를 통해서다.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의 상징이다. 1877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
2025.07.23 11:10
손민수·임윤찬 ‘사제간 무언의 대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거리 약 1~1.5m. 두 대의 피아노는 건반을 마주한 채 무대에 섰다. 피아노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시선엔 늘 서로가 있었다. 스승의 시선은 내내 제자를 향했고, 제자는 스승과 눈을 맞추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사이로 8년, 2920일, 7만 80시간의 음악이 흘렀다. 두 개의 우주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클래식계에서 가장 화제인 ‘사제 듀오’가 왔다.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2022년)을 한 이후 국내 음악계의 변곡점이 된 피아니스트 임윤찬(21)과 그를 길러낸 스승 손민수(49). 지난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0 손민수 & 임윤찬’ 리사이틀에선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도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의 줄임말)에 뛰어들게 만든 사제 듀오의 위상이 증명됐다. 이날의 연주는 스승과 제자가 공유한 긴 시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시간의 역사는
2025.07.18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