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박동기 찬 신구의 지적이고 치열한 대화 ‘라스트세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39년 9월 3일, 영국이 독일과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시시각각 런던 상공으로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쉴 새 없이 공습 경보가 울려대던 그날, 여든셋의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마흔 한 살의 C.S. 루이스가 만난다. ‘신은 존재할까’. 무대는 현실에선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을 소환하는 ‘기발한 상상’을 토대로 첨예한 논쟁을 이어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풀어놓는 치열한 지적 대화와 유머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극중 프로이트 대사) 때문이다. 연극 ‘라스트 세션’(대학로 TOM 2관)은 아맨드 니콜라이 교수가 미국 하버드에서 강의한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의 토대가 된 ‘루이스 VS 프로이트
2023.08.04 12:01함께도 혼자도 강했다…음악계 어벤저스 ‘고잉홈 프로젝트’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분 안팎의 짧은 협주곡들이 이어졌다. 이날의 주제는 ‘볼레로 : 더 갈라’. 각각의 곡들은 산뜻하게 나풀거리다가도 난데없는 울적함이 찾아들었고, 감추지 못한 그 감정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더니 이내 명랑하게 일어서 춤을 췄다. 매 협주곡마다 오케스트라 단원 한 명 한 명이 협연자로 나섰다. 굳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선 채 이어진 연주가 유려했다. 자신을 양보한 오케스트라 합주에선 들을 수 없던 화려한 개인기였다. 올해도 ‘고잉홈 프로젝트’가 돌아왔다. 한국을 떠나 14개국 40개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 80여명이 뭉친 악단이다. 한국인 연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원 중 일부는 외국인이다. ‘고잉홈’의 ‘홈’이 집의 개념을 넘어, ‘음악’이자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2023.08.03 11:06“승관아, 우리 꼭 행복하자”…세븐틴, 8년의 증명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마치 손오공이 된 것’처럼 공중에 매달린 우지가 등장하며 공연은 시작됐다. 정상을 향해 “땅을 보고 계속 올랐”고(‘손오공’ 가사 중), 마침내 데뷔 8주년을 맞는 해에 최고 커리어를 새겼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사상 유례 없는 음반 판매량(단일앨범 기준 620여만 장)을 기록한 세븐틴. 그 영광의 순간을 안겨준 ‘손오공’으로, 13개월 만에 서울 콘서트의 막을 올렸다. “다름다림다 구름을 타고 여기저기로”. 민규의 파트에서 첫 가사가 나오자, 1만 7000여명의 캐럿(세븐틴 팬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 목소리로 ‘헤이’ 외쳤다. 캐럿의 함성에 맞춰, 18명의 댄서들과 함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군무가 시작됐다. 짜릿하고 아찔했다.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무대였다. K-팝 그룹이라면 ‘칼군무’는 ‘
2023.07.23 01:27‘가짜 연기’ 싫다던 손석구…그의 연기 시험은 통했을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태평양 전쟁 막바지, 거대한 가쥬마루 나무가 수호신처럼 자리잡은 오키나와. 어릴적 함께 노닐던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 신병이 상관에게 지난 추억 하나를 꺼낸다. “친구 한 명이 신발을 잃어버려 같이 찾아주고 있었어요. (죽은 병사를 바라보며) 그런데 그 모습을 온종일 지켜보던 저 친구가 집에 불러 밥을 줬어요. 정말 착한 친구였어요.” 신병의 이야기를 듣던 상관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중간부터 얘기가 이상해잖아. 이 이야기에서 제일 착한 사람은 신발을 같이 찾아주던 너야.” 신병이 씨익 웃으며 대꾸한다. “그걸 이제 아셨어요? 제가 그 얘기 하고 싶었어요.” 무해한 얼굴을 한 신병은 묘하게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상관이 결국 한 마디 한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나무 위에 단 두 사람만의 군대가 있다. 1945년 4월부터 1
2023.07.18 09:03들어는 봤나? ‘아기공룡 둘리’ 떼창…250의 뽕에 취한 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의 ‘뽕짝’ 리듬이 정체성을 드러내다가도 어느 순간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기이한 장면들이 70분 내내 연출됐다. 찬란한 오색 조명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프로듀서 250(이오공, 본명 이호형). 공연이 절정을 향해갈 때쯤, 난데없이 등장한 서정적인 키보드 선율이 공기를 바꿨다. ‘빙하 타고’로 시작하는 익숙한 소절이 술래잡기 하듯 튀어나오자, 객석에선 이내 함성이 터졌다. 머뭇거리던 관객들은 하나 둘 박수를 쳤고, 이내 떼창으로 둘리의 친구가 됐다.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한 사람의 노스탤지어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했다. “늘 보고픈 엄마를 찾아 헤매기에, 마이콜과 라면만 먹어도 슬프다”는 250의 ‘아기 공룡 둘리’
2023.07.16 19:37“촬영 금지”라던 어셔도 자포자기…조성진, ‘영웅’ 마치자 일제히…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심장이 쫄깃해졌다. 아찔하고 짜릿했다. 쇼팽의 폴로네이즈 6번 ‘영웅’이 흐르는 7분간 음표마다 심장이 반응했다. 웅장한 교향악단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힘을 실은 연주에 조성진은 수도 없이 몸을 들썩였다. ‘영웅’은 거침없이 진군했다. 용맹한 기상엔 희망이 도사렸다. 선율은 대중음악 최신 트렌드인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을 이식한 것처럼 달려나갔다. 그 때마다 더 정확하게 안착하는 터치들이 쾌감을 불러왔고, 쿵 하고 내딛는 발구름은 음악이 됐다. 7분이 지나자, 1445명의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세 번째 앙코르 곡이었다. 이날 공연은 커튼콜 때에도 모든 촬영을 금지했다. 콘서트홀의 어셔들은 행여라도 켜지는 휴대폰 카메라를 통제하느라 분주했다. ‘영웅’을 마친 이후엔 자포자기였다. 1층부터 3층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오래 참았다는 듯 휴대
2023.07.10 22:33‘희차르트’ 김희재, 가사 전달력은 강점·감정 전달은 숙제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숨 막히는 두려움 이 운명의 무게, 질문에는 침묵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구나”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중) 1막의 엔딩을 장식하는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천재 음악가’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 놓인 모차르트의 고뇌가 폭발한다. 갈등하고 갈망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숨 막히는 운명’을 토로하는 극적인 장면.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의 ‘대담한 도전’이었다. ‘희차르트’(김희재+모차르트를 합쳐부르는 말)는 무난히 한 회 한 회를 넘기고 있다. 베테랑 배우와 K-팝 스타들이 주역으로 이름을 올렸던 뮤지컬 ‘모차르트!’(8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가 막을 올렸다.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을 통해
2023.07.10 00:48“폭우보다 시원한 무대”…조성진 리사이틀, ‘낭만’과 ‘비장’의 기묘한 하모니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쾅, 쾅, 쾅.’ 천둥처럼 쏟아져 내린 난폭한 음표에 온 무게가 실렸다. 건반으로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앞에서 그는 이전엔 본 적 없던 ‘실험적 음악가’였다. ‘건반 위의 음유시인’은 낭만적인 아르페지오를 내려놓고, 난해하고 복잡다단한 현대음악을 풀어냈다. 비스듬히 서있는 어깨는 맹렬한 기세로 건반 위에 다이빙하며 심연의 어둠을 끌어왔다. 구바이둘리나의 ‘샤콘’은 이날의 백미였다. 눈앞을 가리는 폭우에도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2500명의 관객으로 가득찼다. 2년 만의 전국 리사이틀로 돌아온 조성진의 무대가 시작된 첫 날이기 때문이다. 콘서트홀 주차장은 이미 공연 시작 30여분 전부터 만차를 기록했고, 프로그램북 1800부는 공연 전 다 팔려나갔다.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지켜온 ‘클래식계의
2023.07.05 09:19이승윤, 이 땅의 모든 ‘무명’을 위한 위로…‘너와 나의 나침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리가 비틀스도 아니고, 여기서 역사에 기록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럴 거면 우리가 역사책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공동저자십니다. 그 역사책의 주인공은 너, 너, 너, 너, 너, 너, 고!”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드럼은 ‘쾅쾅쾅’ 울렸고, 전자 기타는 난폭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 때마다 올림픽홀을 가득 메운 3500명의 관객은 일제히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미 객석에선 첫 곡부터 스탠딩이 시작됐다. 공연장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은 위험하다며 관객들을 자리에 앉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란하고 아찔했다. “세상에 없던 말”(야생마 가사 중)이었고, “시대의 판도를 가로지를 명마가 될 거”라는 이유있는 자신감과 함께 무대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레이저와 포효하는 기타 소리에 날선 보컬, 오른손을 들고 환호를 끌어내는 몸짓까지, 새로운
2023.07.02 19:30“크레이지”…안내견도 숨죽인 임윤찬이라는 우주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비극의 정서는 짙지 않았다. 다만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음울과 불안을 품은 현의 공격에 왼발로 박자를 맞추고, 양발을 번갈아 까딱까딱 하던 임윤찬의 등판. 청아한 비애를 품은 첫 음 이후 음악은 유유히 슬픔의 강을 타고 흘렀다. 음표 하나 하나가 모여 만들어내는 음악은 마디 마디가 저마다의 스토리였다. 조를 바꾸며 반복되는 같은 주제에선 시시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27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24번과 함께 단 두 곡뿐인 단조곡인 ‘피아노 협주곡 20번’. 임윤찬의 연주에 모차르트의 깊은 한숨과 슬픔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지난 1년 사이 대한민국 최고의 클래식 스타로 떠오른 임윤찬이 돌아왔다. 28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서다.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타이틀’을 안은 이후 1년이 지났
2023.06.29 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