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가왕 조용필, ‘친구여’에 울고 ‘위탄 케미’에 웃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친구여’ 중) 백 마디 말이 무용했다. 꾹꾹 눌러 담은 짙은 그리움이 마디마디 실려 왔다. 관객들은 금세 직감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 짙은 선글라스로 숨긴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60년 지기인 고(故) 안성기를 소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성악처럼 단단한 발성을 감정의 지렛대 삼아 뱉어낸 가왕을 향해, 객석 곳곳에선 “울지 마세요”라는 응원이 터져 나왔다. 가왕과 밴드 ‘위대한 탄생’의 리더 최희선, 베이스 이태윤이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나선 이 무대는 이른바 ‘떼창 섹션’이다. ‘허공’, ‘추억 속의 재회’ 같은 발라드 명곡들에 관객의 목소리가 하나 되는 시간. 하지만 서울 공연 첫날의 ‘친구여’는 이전과는 달랐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고인의 발인일이었다. 올해로 데뷔 58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2025~26 투어가 11일 서울 공연을
2026.01.12 08:27
또 ‘인생캐’ 만났다…‘관객 조련사’ 된 ‘비틀준수’ 김준수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딱 세 번만 부르면 그대로 ‘홀릭’이다. 그러더니 대뜸 “넌 세 번을 보라”며 최고 아이돌 시절엔 꿈도 못 꿨던 팬 소통을 시작한다. ‘비틀준수’(비틀쥬스+김준수를 합친 말)는 명실상부 ‘조련사’였다. 다름 아닌 ‘관객 조련사’. 코미디의 기본은 반복, 여기에 ‘한 명’만 타깃 삼아 잊혀질 때쯤 치고 빠지면 주도권은 금세 ‘비틀준수’의 것이 된다. 1열 우측 객석을 향해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니, 18만원짜리 OP(Orchestra Pit)석이 삽시간에 동이 날 수밖에 없다. 뮤지컬 ‘비틀쥬스’(3월 22일까지·LG아트센터)가 돌아왔다. ‘천군만마’를 얻었다. 한국 뮤지컬계 톱스타 김준수와 함께다. 이름만 올리면 전석 전회차 매진을 기록하는 흥행 보증수표. 그는 지난해 ‘알라딘’에 이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비틀쥬스’를 통해 ‘신상’ 캐릭터에 연이어 도전하고 있다. ‘알라딘’이 몸풀기였다면, ‘비틀쥬스’는 캐릭터 확장
2026.01.06 17:40
‘고독의 끝’에서 마주한 ‘내일’… 바리톤 박주성, ‘나’를 노래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제 또 하루가 지나갔구나. 사랑스러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모든 것이 다시 한번 마음속을 스쳐 지나간다.’ (슈베르트 ‘고독한 사람’ 중) 담담한 독백으로 음악은 시작됐다. 고독을 응시하고 찬미하는 읊조림은 겨울밤의 시린 귀를 녹이는 따스한 낭독이었다. 충만한 고요의 여운을 안은 것도 잠시. 아름다운 음성은 이내 낯빛을 바꿨다. 사랑, 이별, 욕망, 분노, 그리고 신앙…. 삶의 장면마다 스민 희로애락의 서사가 과장 없이도 애절하고, 담백하면서도 장엄했다. 지난 6일, ‘M 아티스트’로 1년을 보낸 바리톤 박주성(32)과 관객의 마지막 대화였다. 세 번째 무대를 앞두고 박주성의 고심은 깊었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가 예술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던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솔리스트답게, 지난 4월 첫 독주회에서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짙은 인상을 남겼다. 상주 음악가로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2025.12.16 15:31
‘19금 쿨한 언니’ 도자 캣에 20대女가 열광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 걘 악마야. 나쁜 기집애고 반항아지, (중략) 난 내가 할 말을 했을 뿐이야. 차라리 난 그냥 유명해질래. (Mm, she the devil. She a bad lil‘ bitch, she a rebel(중략)I said what I said. I’d rather be famous instead.)” (2023년 ‘페인트 더 타운 레드’ 중) 20대 젠지(Z세대, 1995년 이후 출생) 여성들의 대동단결이었다. 무대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희번덕거리며 마이크를 물어버리고, 꼭두각시 인형 같은 표정을 짓더니 뒤돌아 운동으로 단련된 엉덩이를 흔들며 육감을 발산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 따위는 벗어던지고 ‘빌런’을 자처하는 자기 주도형 팝스타. 달콤한 멜로디에 맞춰 플러팅을 던지며 관계를 이끌고, 스스럼없이 욕망을 드러낸다. 쿨하고 솔직한 ‘센 언니’ 도자 캣은 키치와 클래식을 오가는 관능적 무대로 한국의 20대 여성팬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세계적인
2025.12.14 13:53
하필 ‘2악장 솔로’에서…‘몰상식 관크’에도 임윤찬은 오염되지 않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첫눈이 찾아온 날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아 소복하게 쌓인 눈길 위로 첫 발자국을 내듯, 흰 건반이 눌렸다. 내려앉은 손가락마다 화려함은 사라졌다. 단정하게, 그리고 묵묵히 제 음정을 찾아가는 음악은 단순함의 미학을 그리며,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2악장. 임윤찬의 피아노 솔로가 시작되던 때였다. 고작 1분 20초가 지나갔을 때였다. 무전기라도 켠 듯 확성한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멀찍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대와 가까운 객석부터 어수선함이 일었다. B구역 6열쯤, 한 중년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장의 출구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것은 여성의 행동이었다. 재빨리 휴대폰을 껐다면 엄청난 불만이 일지는 않았겠지만, 이 여성은 조처를 하지 않은 비매너로 일관했다. 그 덕에 가방 안의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남성의 목소리가 6~22열까지 지나는 동안 모든 관객들에게 가닿았다. 천부적 재능의 피아니스트는 늘 어떤 상황에서
2025.12.06 07:15
이선균 그 후, 돌아온 전혜진 “신이 미웠지만, 어쩔 수 없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때, 라이오스의 나이 너댓살. 테베의 왕은 그가 보는 앞에서 양아버지 리코스(외삼촌)의 팔과 다리를 도끼로 찍어버린다. 소년은 숲에 버려진다. 그는 짐승처럼 숲에서 살아갔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고픔에 미쳐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먹는다. 개미, 달팽이, 애벌레, 구더기… 수많은 벌레를 미친듯이 잡아먹었다. 따뜻한 숨결이 남은 멧돼지의 뱃가죽을 찢어 노란 기름을 퍼먹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내장을 꺼내 먹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 쳤던 소년 라이오스. 그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다.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의 자식을 낳는’ 비극의 주인공. 소년 라이오스는 대체 어떤 원죄를 안았기에, 이토록 끔찍한 생을 살아야 했을까. 배우 전혜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봅니다. 아버지는 입을 열지만 그 입에선 단 한 마디도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국립극단의 ‘안트로
2025.11.23 22:35
그 어디에도 없었던 박세은의 ‘지젤’, 소녀와 영혼 사이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개가 내려앉아 달빛조차 삼켜버린 밤, 죽음 이후의 지젤(박세은)이 자신의 묘비 곁에 선다. 곧게 세운 두 발은 이승의 땅을 밀어내듯 허공을 걷는다. 실낱같은 생을 붙들듯 존재를 드러내다가도, 연기처럼 사라질 듯 나부낀다. 바람에 흩날린 새하얀 튀튀가 접시꽃처럼 피어오르자, 알브레히트(김기완)의 손끝이 지젤의 육신을 간신히 붙든다. 생을 거둔 소녀의 영혼엔 생애 내내 보지 못한 숭고함이 깃들었다. 박세은의 ‘지젤’이 마침내 한국에 당도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수석 무용수)인 그의 승급 무대이기도 했던 바로 그 ‘지젤’이 국립발레단(11월 12~16일)과 만났다. 박세은의 파트너는 예원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오랜 친구인 김기완. 지난해 박세은과 함께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로 호흡을 맞추며 압도적 무대를 보여준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의 친형이다. 올해 들어 발레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 대형 발레단의 ‘지젤’은 유니버설발레
2025.11.17 16:59
‘클래식 스타’ 메켈레 보려면 ‘합창석이 명당’…RCO는 적응 중?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휘계의 슈퍼스타 클라우스 메켈레, 세계 3대 최정상 악단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2023) 키릴 게르스타인…. 누구를 먼저 언급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조합이 있다. 나이, 인지도, 영향력 무엇 하나 누가 우위를 점한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쟁쟁한 이름들이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 이들은 클래식 관객들이 오래 기다린 ‘꿀조합’이다. 이미 예술의전당에 들어서자마자 열기는 확인됐다. 공연 30분 전부터 로비는 북적이기 시작했고, 애호가는 물론 ‘클알못’을 자처하는 관객들도 세계 3대 악단(베를린필, 빈필, RCO) 중 내한 첫 타자의 등판을 반겼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무대를 사로잡은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몇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RCO와 함께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그는 2027년부터 RCO의 상임 지휘자로 악단
2025.11.08 00:38
‘명장의 손맛’은 달랐다…‘가을 대전’ 승자로 남을 체코필·비치코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다라디라다라단’ 8분의 6박자, 7개의 음표가 플루트의 맑은 목소리를 타고 나오자마자, 8분 쉼표가 하나 등장한다. 쉬는 둥 마는 둥 숨을 고른 뒤 스타카토로 현을 퉁기는 소리. 눈앞으로 슈마타 어딘가에 자리한 작은 두 개의 샘이 그려진다. 원시림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그곳에서 떨어진 물방울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강 ‘블타바’. 곧이어 퍼스트 플루트가 반복되는 음표에도 팔색조 배우를 보듯 다른 색채를 겹겹이 쌓는다. 시작과 동시에 관객은 안달이 난다. 순식간에 지나간 두 마디와 함께 그 유명한 선율이 등장할 때를 기다린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2곡 ‘블타바’. 세묜 비치코프가 지휘하는 체코필하모닉의 ‘나의 조국’. 체코의 독립기념일(10월 28일)에 한국에서 이 곡이 울려 퍼졌다. 명장의 손맛은 달랐다. 무엇을 상상했든, 얼마나 기대했든 그 이상이었다. 올가을 본격적인 닻을 올린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내한 ‘빅 매치’가 시작됐다. 지휘자 정명훈이 이끈 라
2025.11.04 23:00
‘압도적 듀오의 발견’ 이지윤·문지영, 무대 장치 떨어져도 브람스 정주행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빠르면서도 우아하고, 사랑스럽게’ 연주해야 할 1악장. 문제적(?) 세 음표부터 관객은 알아차렸다.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 마이스터징거에 나오는 첫 마디와 닮아있는 피아노의 오프닝에서다. 문지영의 고아하고 단정한 소리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시작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은 그의 연주에 “여덟 마디를 듣자마자 반해버렸다”고 했다. 피아노의 네 마디 후 한 번, 다시 네 마디의 피아노 연주 후 다시 양념처럼 바이올린이 등장하자 두 사람이 끌어갈 대화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압도적 듀오의 등장이자 발견이다.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을지라도, 나란히 적힌 두 사람의 이름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힘들다.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길을 연마해 온 두 사람이었기에 기대치는 높았다. 언뜻 불(이지윤)과 물(문지영)처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음악은 대비와 배려의 미학, 그 안에서
2025.11.03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