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그냥 떠나보내기 아쉬운 공연, 지금 놓치면 안되는 공연들의 이야기를 ‘돌려감기’ 합니다. 생생한 라이브 무대에서 놓친 명장면과 공연의 뒷이야기도 함께 담았습니다.

하필 ‘2악장 솔로’에서…‘몰상식 관크’에도 임윤찬은 오염되지 않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첫눈이 찾아온 날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아 소복하게 쌓인 눈길 위로 첫 발자국을 내듯, 흰 건반이 눌렸다. 내려앉은 손가락마다 화려함은 사라졌다. 단정하게, 그리고 묵묵히 제 음정을 찾아가는 음악은 단순함의 미학을 그리며,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2악장. 임윤찬의 피아노 솔로가 시작되던 때였다. 고작 1분 20초가 지나갔을 때였다. 무전기라도 켠 듯 확성한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멀찍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대와 가까운 객석부터 어수선함이 일었다. B구역 6열쯤, 한 중년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장의 출구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것은 여성의 행동이었다. 재빨리 휴대폰을 껐다면 엄청난 불만이 일지는 않았겠지만, 이 여성은 조처를 하지 않은 비매너로 일관했다. 그 덕에 가방 안의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남성의 목소리가 6~22열까지 지나는 동안 모든 관객들에게 가닿았다. 천부적 재능의 피아니스트는 늘 어떤 상황에서
2025.12.06 07:15
이선균 그 후, 돌아온 전혜진 “신이 미웠지만, 어쩔 수 없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때, 라이오스의 나이 너댓살. 테베의 왕은 그가 보는 앞에서 양아버지 리코스(외삼촌)의 팔과 다리를 도끼로 찍어버린다. 소년은 숲에 버려진다. 그는 짐승처럼 숲에서 살아갔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고픔에 미쳐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먹는다. 개미, 달팽이, 애벌레, 구더기… 수많은 벌레를 미친듯이 잡아먹었다. 따뜻한 숨결이 남은 멧돼지의 뱃가죽을 찢어 노란 기름을 퍼먹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내장을 꺼내 먹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 쳤던 소년 라이오스. 그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다.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의 자식을 낳는’ 비극의 주인공. 소년 라이오스는 대체 어떤 원죄를 안았기에, 이토록 끔찍한 생을 살아야 했을까. 배우 전혜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봅니다. 아버지는 입을 열지만 그 입에선 단 한 마디도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국립극단의 ‘안트로
2025.11.23 22:35
그 어디에도 없었던 박세은의 ‘지젤’, 소녀와 영혼 사이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개가 내려앉아 달빛조차 삼켜버린 밤, 죽음 이후의 지젤(박세은)이 자신의 묘비 곁에 선다. 곧게 세운 두 발은 이승의 땅을 밀어내듯 허공을 걷는다. 실낱같은 생을 붙들듯 존재를 드러내다가도, 연기처럼 사라질 듯 나부낀다. 바람에 흩날린 새하얀 튀튀가 접시꽃처럼 피어오르자, 알브레히트(김기완)의 손끝이 지젤의 육신을 간신히 붙든다. 생을 거둔 소녀의 영혼엔 생애 내내 보지 못한 숭고함이 깃들었다. 박세은의 ‘지젤’이 마침내 한국에 당도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수석 무용수)인 그의 승급 무대이기도 했던 바로 그 ‘지젤’이 국립발레단(11월 12~16일)과 만났다. 박세은의 파트너는 예원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오랜 친구인 김기완. 지난해 박세은과 함께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로 호흡을 맞추며 압도적 무대를 보여준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의 친형이다. 올해 들어 발레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 대형 발레단의 ‘지젤’은 유니버설발레
2025.11.17 16:59
‘클래식 스타’ 메켈레 보려면 ‘합창석이 명당’…RCO는 적응 중?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휘계의 슈퍼스타 클라우스 메켈레, 세계 3대 최정상 악단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2023) 키릴 게르스타인…. 누구를 먼저 언급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조합이 있다. 나이, 인지도, 영향력 무엇 하나 누가 우위를 점한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쟁쟁한 이름들이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과 만난 이들은 클래식 관객들이 오래 기다린 ‘꿀조합’이다. 이미 예술의전당에 들어서자마자 열기는 확인됐다. 공연 30분 전부터 로비는 북적이기 시작했고, 애호가는 물론 ‘클알못’을 자처하는 관객들도 세계 3대 악단(베를린필, 빈필, RCO) 중 내한 첫 타자의 등판을 반겼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무대를 사로잡은 젊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몇 차례 한국을 찾았지만, RCO와 함께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그는 2027년부터 RCO의 상임 지휘자로 악단
2025.11.08 00:38
‘명장의 손맛’은 달랐다…‘가을 대전’ 승자로 남을 체코필·비치코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다라디라다라단’ 8분의 6박자, 7개의 음표가 플루트의 맑은 목소리를 타고 나오자마자, 8분 쉼표가 하나 등장한다. 쉬는 둥 마는 둥 숨을 고른 뒤 스타카토로 현을 퉁기는 소리. 눈앞으로 슈마타 어딘가에 자리한 작은 두 개의 샘이 그려진다. 원시림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그곳에서 떨어진 물방울로부터 시작된 거대한 강 ‘블타바’. 곧이어 퍼스트 플루트가 반복되는 음표에도 팔색조 배우를 보듯 다른 색채를 겹겹이 쌓는다. 시작과 동시에 관객은 안달이 난다. 순식간에 지나간 두 마디와 함께 그 유명한 선율이 등장할 때를 기다린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2곡 ‘블타바’. 세묜 비치코프가 지휘하는 체코필하모닉의 ‘나의 조국’. 체코의 독립기념일(10월 28일)에 한국에서 이 곡이 울려 퍼졌다. 명장의 손맛은 달랐다. 무엇을 상상했든, 얼마나 기대했든 그 이상이었다. 올가을 본격적인 닻을 올린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내한 ‘빅 매치’가 시작됐다. 지휘자 정명훈이 이끈 라
2025.11.04 23:00
‘압도적 듀오의 발견’ 이지윤·문지영, 무대 장치 떨어져도 브람스 정주행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빠르면서도 우아하고, 사랑스럽게’ 연주해야 할 1악장. 문제적(?) 세 음표부터 관객은 알아차렸다.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 마이스터징거에 나오는 첫 마디와 닮아있는 피아노의 오프닝에서다. 문지영의 고아하고 단정한 소리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시작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은 그의 연주에 “여덟 마디를 듣자마자 반해버렸다”고 했다. 피아노의 네 마디 후 한 번, 다시 네 마디의 피아노 연주 후 다시 양념처럼 바이올린이 등장하자 두 사람이 끌어갈 대화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압도적 듀오의 등장이자 발견이다.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을지라도, 나란히 적힌 두 사람의 이름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힘들다.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길을 연마해 온 두 사람이었기에 기대치는 높았다. 언뜻 불(이지윤)과 물(문지영)처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음악은 대비와 배려의 미학, 그 안에서
2025.11.03 15:52
제대로 칼 갈았다…아이브는 진화 중 “더 큰 데서 만나자”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다이브, 우리 내일 없잖아. 오늘 목 아끼면 혼난다! ” (리즈) 칼을 갈 대로 갈았다. 날이 바짝 선 ‘Z세대 아이콘’ 아이브는 바로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내리 다섯 곡을 쏟아냈다. 2년 만에 열리는 두 번째 월드투어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브를 보여주겠다’며 지난 시간 착실히 성장해온 ‘오늘의 아이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리즈의 한 마디는 팬덤 다이브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나, 마치 다이브는물론 아이브 멤버들의 다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이브(IVE)의 다섯 멤버가 지난 달 31일부터 2일까지 사흘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두 번째 월드투어 ‘쇼 왓 아이 엠’(SHOW WHAT I AM)을 통해 2만 8000명의 다이브와 만나며 월드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투어는 2023년 첫 월드투어 ‘쇼 왓 아이 해브(SHOW WHAT I HAVE)’에 이어 2년 만. 시작부터 화려한 축포가 터졌다. 아이브는 최근 발매한 앨범 ‘아이브 시
2025.11.02 23:00
진 콘서트에 BTS 총출동…컴백 전 예고편 “멋진 모습으로 돌아올 것”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숨이 차도록 달려, 해가 뜰 때까지 사랑할 거야” (진 ‘러닝 와일드’ 중) 이날도 달렸다. 숨이 차오르는지도 모른채 끝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무대에서 내려와 인천문학경기장 트랙을 내달리며 노래하는 그 순간, 이게 바로 방탄소년단(BTS)의 맏형이라는 점이 어김없이 증명됐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함께 해준 팬들을 향한 애틋한 진심이 150분 내내 묻어났다. 방탄소년단 진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인천 미추홀구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앙코르 투어 ‘런석진(‘#RUNSEOKJIN_EP.TOUR_ENCORE)’를 열었다. 이번 공연은 지난 6월 고양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유럽 등 총 10개 도시 투어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진은 앞서 일본 교세라 돔 오사카 공연을 최상단 8층과 시야제한석까지 매진시켰고,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 입성한 최초의 한국 솔로 가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미국 애너하임 혼다
2025.11.02 20:38
창작 오페라 ‘화전가’, 한국형 오페라 가능성 보여줬지만…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너는 가고 없는데 봄은 다시 여기에, 너는 오지 않는데 꽃은 다시 피었네.” (‘화전가’ 중) 봄날은 기어코 다시 온다. 1950년 한국전쟁을 앞둔 어느 4월. “봄바람이, 보리피리 불며 가는” 그 좋은 날, 경북 안동의 어느 양반집은 모처럼 북적인다. 어머니 김 씨의 환갑을 앞두고 역사가 휘몰아치던 날들의 기억이 스민 고향 집으로 세 딸 금실이, 박실이, 봉아가 돌아온다. 청상과부가 돼 친정에 머무는 고모 권 씨, 두 며느리 장림댁과 영주댁, 행랑어멈 독고할매와 수양딸 홍다리댁까지…. 아홉 명의 여성이 독립운동과 이념의 대립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집을 비운 남자들을 대신해 가장이 됐던 시대가 무대로 옮겨졌다. 환란의 그림자가 한 발 한 발 다가와도 여인들은 모처럼의 좋은 날을 노래한다. “생이여, 달콤한 생이여, 눈처럼 하얗게 흘러내리게. 옥처럼 빛나며 여기 오시게.” 연극 ‘화전가’에 음악을 입힌 오페라 ‘화전가’다. 배삼식 작가의 ‘화전가’는 코로나1
2025.10.27 15:33
하나의 곡, 두 가지 느낌…‘세련된’ 손열음·런던필 vs ‘강렬한’ 선우예권·홍콩필 [고승희의 리와인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같은 음악이지만, 다르다. 손열음과 런던필하모닉, 선우예권과 홍콩필하모닉은 같은 차이콥스키 음악으로 관객들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이들이 선택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가을마다 반복되는 단골 레퍼토리다. 이 곡은 1874년 거장은 아니었으나, 차이콥스키가 제법 명성을 쌓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서른넷의 차이콥스키는 기존 협주곡의 형식에서 벗어난 파격미를 담은 악보를 완성한다. 당대엔 “뭘 모르는 비전공자”의 음악이라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차이콥스키를 아꼈던 피아니스트이자 모스크바 음악원 초대 원장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조차 “이 곡은 전혀 가치가 없고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정도. 차이콥스키는 루빈스타인에게 모멸감을 느낀 후, 독일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곡을 헌정했는데, 이 사건은 그에게 완전히 전화위복이 됐다. 가을만 되면 이 곡이 소환돼 클래식 애호가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2025.10.24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