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말론, 첫 내한공연

3만 관객과 함께 밤의 열기

노래 끝날 때마다 한국어 인사

“누구도 아닌 당신의 삶을 사세요”

블랙핑크 입고, 태극기 걸리고…예의바른 ‘유교 보이’ 포스트 말론 [고승희의 리와인드]
포스트 말론 첫 내한 공연 [사진=고승희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 초대해줘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K-팝 걸그룹 블랙핑크의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포스트 말론(28·오스틴 리처드 포스트)은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온몸을 타투로 뒤덮은 ‘유교보이’의 90도 인사와 귀여운 발음의 한국어 인사에 3만 관객은 마음을 완전히 홀려 버렸다.

‘시대의 아이콘’ 포스트 말론이 마침내 한국에 왔다. 지난 2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테스 제1전시장엔 3만 인파가 몰려들어 금세기 최고의 팝스타 중 한 명인 그를 반겼다.

이날 일산 일대는 포스트 말론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로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겪었다. 공연 한 시간 전부터 킨텍스로 향하는 전 1.2㎞부터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성인 인증’을 해야 하는 공연이어서 관객들의 입장도 지연됐다.

오후 7시 15분이 넘어서야 관객들이 입장을 마치자, 2층 객석에서 내려다 보는 스탠딩 석은 장관을 이뤘다. 3만 명 관객 중 무려 2만 명을 스탠딩으로 수용한 공연장은 그야말로 대형 록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오후 7시 18분. 마침내 공연 시작을 알리며 불이 꺼지자, 관객들은 “오스틴”을 연호하며 포스트 말론을 맞았다. 이미 공연 직전 몸풀기를 마친 관객들은 첫 곡인 ‘베터 나우(Better Now)’부터 떼창으로 화답했다. 당초 공연은 70분으로 예정돼있었으나, 이날의 공연은 100분 가량 진행됐다.

올해 5월 발매한 정규 5집 ‘오스틴’(Austin)의 발매를 기념한 월드투어의 일환으로 열린 이번 공연에서 그는 힙팝, 록, 메탈, 알앤비, 팝을 넘나드는 ‘장르의 달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공연 내내 포스트 말론의 ‘온도차’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테이크 왓 유 원트’(Take What You Want), ‘록스타’(Rockstar)에선 욕설로 뒤덮인 가사에 분노를 채워 ‘록 스피릿’을 발산했고, ‘필링 위트니’에서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 곡에선 관객들이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는 이벤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말론은 2015년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무료 음원 공개 사이트에 올린 ‘화이트 아이버슨’(White Iverson)을 올리며 세계 최정상 팝스타로 발돋움했다. 그의 이야기는 ‘청춘의 장면들’이었다. 무수히 겪은 어린날의 방황과 상처, 화려한 성공 이면에 담긴 진솔한 고백이 전 세계 팬들의 마음에 가 닿았다. 최근엔 약혼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은 생활의 변화는 음악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포용하고 아낌없이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마음이 한 음 한 음에 묻어났다.

그는 “올해 난 스물 여덟 살이 됐다. 10년 전이었던 열여덟, 열아홉 살에 쓴 노래가 있다”며 “요즘 내 모든 순간은 나의 아이를 위해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삶의 모든 순간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모든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자”고 말하며 ‘투 영’(Too Young)을 들려줬다.

블랙핑크 입고, 태극기 걸리고…예의바른 ‘유교 보이’ 포스트 말론 [고승희의 리와인드]
포스트 말론 첫 내한 공연 [사진=고승희 기자]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관객과의 호흡이었다. 말론은 “한국에 도착해 공항에서 팬을 만나 함께 노래하기로 약속했다”며 “그녀의 이름은 ‘은지’다. 은지가 기타를 칠 거다”라고 했다.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듯 은지를 연호했고, 놀라운 기타 실력의 ‘은지’ 씨는 말론과 함께 ‘스테이’(Stay)를 부르며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팬은 특히 한국의 전통 아이템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갓을 말론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말론은 직접 갓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지극한 팬 사랑을 보여줬다.

공연의 열기가 상당했다. 그간 숨어있던 포스트 말론의 팬이 모두 집결한듯, 공연 내내 떼창이 이어졌다. 록스타처럼 포효하고, 발라더처럼 감미롭고, 힙합퍼처럼 거칠었던 말론은 공연 내내 흔들림이 없었다. 변화무쌍하게 장르를 변주하면서도 감탄을 자아내는 라이브 실력은 단연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말론의 진솔하고 따뜻한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난 공연이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면서도, 최고의 자리에서도 겸손함과 예의를 잃지 않았다.

한국을 찾으며 한국 팬을 위해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한 그는 공연 내내 “감사합니다”와 한국식 하트를 만들었고, “맥주 좀 주세요, 제발”, “소리질러” 등을 한국말로 전하며 팬들을 웃음 짓게 했다. 모든 공연을 마친 뒤 앙코르가 이어질 땐, 무대 한가운데 태극기가 걸렸다. 자신을 찾아온 한국팬과 처음 방문한 나라에 대한 선물이기도 했다. 100분 가량 이어진 공연이었지만, 팬들과 말론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조만간 또 만났으면 좋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말론의 공연은 큰 울림을 남겼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며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세요. 스스로를 세상에 끊임없이 표현하세요. 이 세상에 당신 자신만큼 멋진 사람은 없어요. 멈추지 말고 당신의 삶을, 당신의 꿈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