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일 고척돔 월드투어 마침표
34개국 돌고 온 ‘여왕들의 귀환’
이틀간 3만 5000명 만난 블랙핑크
재계약 언급 없었던 마지막 콘서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자, 오늘 밤이야. 난 독을 품은 꽃” (‘핑크 베놈’ 중)
‘여왕의 귀환’이었다. ‘K-팝 성지’로 불리는 케이스포 돔(KSPO DOME)에서 시작, 전 세계 34개국을 돌고 돌아온 블랙핑크는 마치 ‘오늘’을 기다린 것처럼 본때를 보여줬다. 밀도 높은 소울을 채워넣은 로제의 목소리가 “오늘 밤이야”(‘핑크 베놈’ 중)를 외치자, 마침내 블랙핑크의 밤이 시작됐다.
그룹 블랙핑크가 16~17일 양일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본 핑크(BORN PINK)’ 월드투어의 마침표를 찍었다. 블랙핑크는 지난해 10월 서울을 시작으로 북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 등 34개 도시에서 66회에 달하는 걸그룹 사상 최대 규모의 투어를 통해 180만 관객과 만났다. 이날의 서울 공연은 월드투어를 통해 쌓은 블랙핑크 투어와 완결판이었다.
이틀간 진행된 공연은 일찌감치 인산인해를 이뤘다. 공연 시작 시간이 여섯 시가 임박했는데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팬들은 공연장으로 입장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블링크들은 공연장 앞에 모여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콘서트를 즐기는 모습이었다”며 “블랙핑크 MD도 공연 시작 전에 빠른 속도로 품절을 기록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공연 현장엔 전 세계 팬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이미 월드투어를 마친 앙코르 공연임에도 블랙핑크의 이날 공연엔 중국, 대만, 태국, 필리핀, 일본, 영국 등 전 세계 팬들이 총출동한 박람회를 방불케 했다. 현장에서 만난 중국팬 유이(24) 씨는 “작년 서울 콘서트엔 코로나19 여파로 올 수가 없었는데 이번엔 입출국이 자유로워져 일찌감치 비행기 표와 공연 티켓을 구해 서울로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블랙핑크의 앙코르 콘서트는 ‘최전성기’에 오른 세계 최고의 걸그룹 블랙핑크의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일 년간 월드투어에 전념하면서도 블랙핑크 네 멤버들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수는 솔로 활동과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의 출연으로 팬들과 소통했고, 배우 안보현과의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제니는 HBO 드라마 ‘디 아이돌’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고, 숱한 열애설에 시달렸지만 묵묵부답으로 자신의 활동을 이어갔다. 리사와 로제 역시 몇 번의 열애설이 따라왔다. 데뷔 8년차에 접어든 블랙핑크의 2023년은 네 멤버에게 변화의 시기였고, 지난 시간의 성취들이 폭발한 때였으며, 더 멀리 나아가야 할 갈림길 앞에 놓인 시기였다. 재계약 시즌이 한참을 지나왔으나 아직도 도장을 찍지 않은 네 멤버의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8년의 역사가 쌓인 블랙핑크의 앙코르 콘서트는 화려했다. K-걸그룹 최초로 ‘고척돔’에 입성했다는 상징적 의미,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 폭발적인 라이브와 퍼포먼스는 단연 인상적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네 멤버들의 무대 장악력과 자신감이었다.
명실상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걸그룹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블랙핑크는 매순간 블랙핑크였다. 매초 매분 빠르게 달라지고, 세대가 달라지는 K-팝 업계에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증명했다. 한 순간도 당당하게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핑크 베놈’으로 시작한 콘서트는 ‘히트곡 퍼레이드’의 연속이었다. 이날 공연에선 굳이 긴 말도 필요치 않았다. 뮤지컬 무대를 꾸미듯 끊임없이 음악이 흐르는 도중 멤버 소개를 하고, 떼창을 유도했다. ‘하우 유 라이크 댓’, ‘프리티 새비지’, ‘킥 잇’ 등 내리 네 곡을 부른 뒤에야 “이 에너지로 끝까지 달려보자”(지수)는 멘트와 인사를 짧게 건넨 뒤 곧이어 멤버들의 솔로 무대로 이어졌다.
네 명의 멤버 모두 솔로 싱글을 통해 매번 한국 솔로 여가수의 기록들을 세워왔기에 이날 공연에선 보여줄 것도 많았다. 그룹 내 솔로 첫 주자였던 제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솔로’와 ‘유 앤 미’ 무대를 보여줬다. 지난해 케이스포 돔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던 ‘유 앤 미’는 공연장 규모에 맞춰 스케일이 커졌다. 실루엣 댄스는 여전히 압권이었다. 제니의 아름다운 춤선을 살린 동화 같은 춤선을 보여주다가 실루엣이 꺼지면, 여성 댄서들과의 군무로 제니의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월드투어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솔로 앨범을 내지 않아 커버곡을 선보였던 지수는 그 사이 발표해 큰 인기를 얻은 ‘올 아이즈 온 미’와 ‘꽃’ 무대를 선보여 뜨거운 함성을 느꼈다. 로제는 돌출 무대 위로 올라 블랙핑크 메인 보컬의 저력을 보여주는 ‘곤’과 ‘온 더 그라운드’를, 리사는 밴드 사운드에 맞춘 ‘머니’를 통해 메인 래퍼이자 댄서의 기량을 최대치로 보여줬다.
지난 8년 동안 내놓은 모든 곡이 익숙했다. 설사 블랙핑크의 팬이 아니라도 적어도 두세 번은 들어봤을 곡들로 공연은 채워졌다. ‘타이파 걸(TYPA GIRL)’에선 새하얗고 풍성한 깃털이 달린 부채로 비너스의 탄생을 알리는 듯한 무대 연출을 보여줬고, ‘셧 다운’에선 한층 날카로워진 바이올린 선율과 어우러진 폭발적인 힙합 사운드로 고척돔을 달궜다.
무대가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멤버들의 감정도 벅차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로제는 “오늘은 울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듯 몇 번이나 말했고, 제니는 “끝을 향해갈 때마다 뭉클해지고 있다”며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인 만큼 모두가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의 마지막 곡은 ‘포에버 영’이었다. “떠나지마 저스트 스테이, 지금 이 시간을 멈춘 채”라는 가사처럼 마지막과 영원을 약속했다. 대미를 장식하고 무대 뒤로 블랙핑크는 사라졌지만, 블링크들의 외침은 계속 됐다.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게 우리가 함께 할게”라는 슬로건을 들고 앙코르를 외치자, 댄스 챌린지가 시작됐고 충분히 열기가 더해진 뒤 블랙핑크 이동식 무대에 올라 고척돔을 한 바퀴 돌며 ‘스테이’를 불렀다. 멤버들은 가방에 챙겨온 굿즈를 던져주며 블링크와 더 가까이에서 소통했다. 앙코르 무대를 통해 ‘붐바야’, ‘예 예 예’가 이어지고, 공연을 마치며 멤버들은 블링크와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지수는 “일 년 전 서울에서 시작해, 일 년 후 피날레 콘서트를 마무리할 수 있어 행복했고, 좋은 추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블링크에게 고맙다”며 “아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많은 블링크들이 힘을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로제는 “첫 해외 콘서트에서 제니 언니가 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몇 년이 지날 동안 월드투어를 두 번 돌고 마지막 소감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며 “마지막이지만 영원히 이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리사는 블링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휴대폰에 적어와 전했다. 그는 “우리 만난지 2596일 됐다. 이번 투어는 블링크와 함께 했기에 정말 다양하고 대단한 공연장에서 무대를 할 수 있었다”며 “블링크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블링크 너무 사랑한다. 나의 20대를 빛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니는 “말이 일 년이지, 저희에겐 다사다난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렸기에 이렇게 월드투어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며 “저희가 올해로 7주년을 맞이했는데, 멋지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국에서 많은 블링크를 만나지 못한 것도 있어 피날레는 한국에서 하고 싶었다. 언제나 멋있는 블랙핑크가 되겠다”고 했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마지막처럼’이었다. 2시 10분여를 꽉 채운 블랙핑크의 공연은 마지막까지 뜨거웠다. 다만, 블링크가 가장 기다리는 ‘재계약’ 소식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이날 공연장에서 만난 한국인 블링크 박미효(22) 씨는 “블랙핑크가 데뷔했을 때부터 팬이었는데 이번 공연을 놓치면 완전체 콘서트를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어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중학교 때부터 팬이 돼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항상 함께 해온 아티스트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외모, 노래, 퍼포먼스 모두 세계 최고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오래 보고 싶은데 사실 어떻게 될지 몰라 마음이 계속 뭉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