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일 조성진과 넬손스의 만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내한
조화로움과 여유, 미소 돋보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따뜻하고 고운 목관 뒤로 겨울바람처럼 시린 피아노 소리가 이어지고, 깊고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선율들이 퍼즐을 맞춘 것처럼 제자리에 안착했다. 마주하는 눈빛에선 서로를 향한 신뢰, 다년간 쌓아온 믿음 속에서 피어난 여유가 묻어났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마에스트로 안드리스 넬손스와 명실상부 최고의 ‘클래식 스타’ 조성진의 만남이었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이끄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대구콘서트하우스(17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12년 만의 내한이었다.
서울과 대구에서 이어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조성진의 협연에선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었다.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 수시로 협연했던 280년 역사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는 너무도 잘 맞는 선택이었다. 이 곡은 슈만이 아내 클라라를 위해 쓴 곡이기도 하다.
피아노의 중요한 타건으로 시작하는 이 곡에서 조성진은 빈틈없이 매끄럽게, 그리고 선명한 소리로 연주의 문을 열었다. 넬손스와 조성진의 인연이 깊다. 2020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시작으로 2022년 보스턴 심포니에 이어 게반트하우스까지 수차례 음악으로 교류했다. 두 사람의 관계성을 알지 못하더라도 조성진은 이날의 무대에서 유달리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자유 의지로 풀어내도 오케스트라와 마에스트로가 섬세하게 매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연은 녹화 중계가 예정된 탓에 평소보다 더 많은 마이크 장비가 들어갔지만, 그것이 소리를 크게 방해하진 않았다. 조성진의 맑고 여린 음색들이 이어지면 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가장 돋보이게 하려는듯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연주가 날개를 달면, 오케스트라는 낮고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청아한 피아노를 감싸며 탄탄히 구조를 잡아줬다. 피아노의 감정 변화가 두드러지게 다가온 것은 슈만이 이 곡을 본래 환상곡을 의도하고 만들었다는 점을 염두한 해석인 것으로 느껴졌다. 작정하고 시작한 1악장의 카덴차는 음량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이어지며 기교가 살아났다. 피아노의 트릴에 오케스트라가 입혀지며, 음악은 점차 가속 패달을 밟다 화려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무척이나 아찔한 순간이었다.
2악장에 접어들며 목가적인 낭만성이 유유히 흘렀다. 꿈속을 거니는 듯 사뿐사뿐 시작한 피아노는 하나의 악장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줬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하다가도, 이내 성숙해지고, 인생의 성취를 관조하는 듯한 삶의 장면 장면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를 통해 들려왔다. 풍성한 현악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선율의 미학은 2악장의 명장면이었다.
쉼 없이 시작하는 3악장은 긍정을 향해 비상하는 소나타 형식이다. 피아노를 통해 제1주제가 반복되고 1, 2악장을 통해 응축했던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풀어냈다. 조성진은 단 하나의 음표도 놓치지 않고, 온몸으로 음악을 받아냈다. 마침내 다른 차원에 진입해 피아노가 고군분투를 펼치면 그 위로 오케스트라가 더해져 장대한 끝을 향해 달려간다. 아쉬운 절박감에 환희가 더해진 신비한 음악은 관객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이날의 협연에선 때때로 피아노 소리가 불분명하게 들리거나 리듬의 표현이 선명하지 않기도 했지만, 예민하고 섬세하게 이어진 감정들을 침범하진 않았다. 연주 내내 몇 번이나 눈을 맞추며 미소를 띄운 조성진과 넬손스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조성진은 11월 국내 오케스트라 대전의 ‘단골 협연자’였다. 한국 관객들에겐 불과 사흘 간격으로 세계적인 두 악단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자리였다. 앞서 지난 12일엔 베를린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들려줬고, 이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슈만까지 이어졌다.
키릴 페트렌코가 완벽하게 통제해 빈틈없는 합을 보여준 베를린 필과의 협연에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치고받는 대화의 향연이 눈부셨다. 아름다운 소리의 조율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고, 해마다 진화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오늘을 만날 수 있었다. 넬손스가 이끄는 게반트하우스와의 연주에선 조화로움과 여유가 빛났다. 깊고 푸른 오케스트라의 바다에 홀로 선 단정한 조각배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아냈고, 오케스트라는 그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내며 존재감을 발했다.
넬손스와 만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서울 공연의 첫날(11월 15일)엔 멘델스존 교향곡 3번, 둘째 날(11월 16일)엔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들려줬다. 두 교향곡을 통해 넬손스와 악단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가 일류인 이유를 여실히 보여줬다. 한 편의 장대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펙타클하면서도 섬세한 디테일이 악장마다 살아있고, 지구상의 모든 감정을 음표 하나 하나에 불어넣어 음악으로 구현했다. 애호가가 아닌 대중에겐 이른바 베를린 필, 빌 필 등의 빅2 악단보다는 이름값이 떨어졌으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는 ‘음악의 우주’를 무대 위에서 그려내는 악단이었다. 특히 웅장한 금관과 유려한 목관의 정제된 음색이 독보적이었다. 커튼콜마다 두 팔 벌려 악단을 격려하고, 관객을 바라보는 넬손스의 자신감이 마땅히 이해되는 명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