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영화 음악 콘서트
로비에 다스베이더·합창석엔 티라노
‘듣는 음악’ 클래식이 ‘보는 음악’으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I’m your father.(아임 유어 파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 다스베이더가 나타났다. 튜라스틸로 만든 검은 갑옷을 입고, 상징 같은 검은 헬멧을 쓴 은하 제국의 2인자. 영화 ‘스타워즈:새로운 희망’ 에피소드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강인한 포스와 파괴력의 상징 다스베이더가 새로 찾은 점령지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두려움도 없이 긴 줄을 늘어서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모처럼 예술의전당에 생기가 넘쳐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로 관객과 만났다.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영화음악 작곡가인 존 윌리엄스는 지난 70년간 약 150편의 영화 음악(OST)을 만들어온 OST의 장인이다. ‘E.T’,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슈퍼맨’ 시리즈, ‘죠스’, ‘후크’,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셀 수 없이 많은 작품 속 음악을 만든 그는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상징이자 공식이었다. 조지 루카스는 그에 대해 “감독의 마음 속에 있는 바로 그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했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윌리엄스의 음악”이라고 극찬했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관악기가 시원하게 울리고, 환상적인 현의 선율이 어우러져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을 때 감동이 더 커진다. 베를린필하모닉, 빈필하모닉, LA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연주한 존 윌리엄스 영화 음악이 실황 앨범으로 나왔을 만큼 이미 세계 유수 악단은 그의 음악을 선택했다.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존 윌리엄스의 공연을 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영화 음악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 새로운 관객 확장이 가능하다”며 “특히 영화 음악 콘서트를 열 때 외국인 관객이 많이 유입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콘서트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 관객, 외국인 관객 등이 많아 다른 클래식 공연에 비해 관객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국립심포니에 따르면 이날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공연 내용 역시 기존 클래식 음악 공연과는 달랐다. 보통의 클래식 공연이 객석은 환한 불빛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이날의 콘서트는 마치 영화관처럼 객석 조명을 완전히 낮춘 뒤 시작됐다. 음악에 맞춰 영화를 상징하는 미디어아트를 합창석 벽면을 통해 상영하기 위해서다. 저작권 문제로 영화를 틀지는 못했지만, 각각의 영화마다 음악과 어우러지게 표현한 미디어아트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히 다가왔다.
‘빰빠밤’하며 시원하게 관악기가 울리며 포문을 열자 합창석으로는 ‘슈퍼맨’의 로고가 영상으로 떠오르며 관객을 음악 안으로 끌고 갔다. 앞으로 나올 공연의 예고편 격에 해당하는 역동적인 출발. 공연은 ‘슈퍼맨’을 시작으로 ‘해리포터’ 시리즈, ‘쉰들러 리스트’, ‘후크’,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시리즈, ‘E.T.’ 등으로 이어졌다.
‘슈퍼맨’을 마친 뒤 잠시 무대 뒤로 사라진 지휘자 앤서니 가브리엘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주하기 위해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마법사 가운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등장했다. 지휘자의 변신을 지켜본 객석에서 뜨거운 함성과 박수가 터지자 가브리엘은 파란 불빛을 내뿜는 지휘봉을 빙그르르 돌리며 연주를 시작했다. 현의 선율이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로 이끌었고, 영화를 보면서 듣는 음악도 아님에도 음악은 촘촘한 서사를 쌓아갔다. 가브리엘의 손에 들린 지휘봉은 마치 ‘마술봉’처럼 아름답고 놀라운 영화를 그려갔다.
‘쉰들러 리스트’를 연주할 땐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담긴 수십 장의 사진이 등장해 영상을 가득 메웠다. 애절한 솔로 바이올린의 연주가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따라가자 아픈 역사가 객석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지휘자는 음악이 끝난 이후에도 충분한 시간으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후크’로 분위기를 전환한 뒤, ‘쥬라기 공원’이 시작되자 예술의전당은 6500만 년 전의 거대한 우림이 됐다. 특히 음악이 시작하기 전에 합창석 출입구로 귀여운 티라노 사우르스가 등장, 객석에선 웅성거림이 커졌다.
음악이 시작되자 티라노 사우르스는 합창석의 메인 자리를 꿰찬 뒤 음악에 맞춰 몸을 휘저었다. 그가 음악에 푹 빠질 때 영상은 초목이 우거진 대자연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한참 음악을 들으며 즐기던 티라노 사우르스는 트리케라톱스가 등장하자 무대를 떠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아무나 공룡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며 “거대한 티라노 사우르스 안에는 인형 전문 배우가 들어가 연기했다”고 귀띔했다.
2부는 ‘스타워즈’ 시리즈로 꽉 채워졌다. 우수의 신비로움을 품은 음악이 다채로운 조명과 영상과 어우러졌고, 동화 같은 서사에 관악과 현악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앙상블의 ‘E.T.’가 잠시 ‘어른이’들을 동심으로 데려갔다. 이날의 앙코르는 ‘인디애나 존스’였다.
시원시원한 브라스와 행진곡풍의 교향곡은 존 윌리엄스 음악의 상징이다. 음악만 들어도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고, 영화를 잊어도 음악은 강렬히 남는다. 긴박한 전개, 감정의 기승전결을 담아낸 선율이 이번 콘서트에서도 충분히 묻어났다. ‘듣는 음악’의 대명사였던 클래식 공연이 ‘보고 듣는 음악’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