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일 서울월드컴경기장 콘서트
양일간 10만 관객 만나 성공적 마무리
음악외길 걸어온 모범생 가수의 새로운 꿈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어허야 내가 내가 간다, 그리운 내 님 곁으로,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구슬프고 애처롭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리듬을 쏙 뺐지만, 영웅시대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이내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라며 수백 번 불러본듯 완벽한 음정으로 떼창을 들려준다. 만족한 듯한 임영웅의 미소에 팬들의 함성은 더 커졌다. 올초 유튜브 영상에서 전국투어를 통해 “영웅시대와 더 친해졌다”고 했던 임영웅의 이야기처럼 ‘완벽한 호흡’이 팬과 가수에게서 나왔다.
가수 임영웅이 상암벌에 입성했다. 임영웅은 25~26일 이틀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주경기장에서 2024 임영웅 콘서트 ‘아임 히어로-더 스타디움(IM HERO - THE STADIUM)’을 열고 10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임영웅은 지난 2020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TV조선) 시즌1에서 우승한 이후 명실상부 공연계 황태자로 떠올랐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팬데믹 이후 공연계 절대 강자는 임영웅으로 정리됐다”며 “임영웅은 대한민국 최고 스타들만 설 수 있는 잠실 주경기장의 4회 공연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가진 스타”라고 했다.
실제로 임영웅의 공연은 매번 티켓 오픈을 할 때마다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전쟁’이다. 그의 콘서트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1분 만에 350만 트래픽이 몰리며 서버 마비를 보이기도 했고, 공연 티켓을 구하려는 암표상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이틀간의 공연 역시 대란을 방불케 했다. 공연장 인근엔 일찌감치 교통 경찰이 배치됐고,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주차장은 물론 일대 모든 유료 주차장은 순식간에 만차를 기록했다. 26일 공연에선 인근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대기 위해 기본 30~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임영웅은 ‘미스터 트롯’에서 우승한 직후엔 TV 출연도 잦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엔 음악 활동에 집중하며 전국 투어 공연을 통해 팬들과 음악으로 소통해왔다. 이번 상암벌 콘서트는 그간 임영웅이 공연을 통해 쌓아온 탄탄한 라이브 실력과 충성도 높은 팬덤이 결집한 결정체였다.
‘무지개’와 ‘런던 보이’로 공연의 문을 연 임영웅은 “어제 무대에 섰는데 너무 울컥했다. 오늘은 더 신나게 뛰어놀도록 하겠다”며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임영웅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도 있었다. 그는 공연의 첫 관문은 “앞뒤좌우 관객과 인사하는 것”이라며 “같이 와도, 따로 와도 옆에 있다 보면 인연이 돼 사돈이 된 분들도 있다”며 관객들의 화합을 도모했다.
다인원 그룹도 아닌 솔로가수가 5만석에 달하는 스타디움을 꽉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암벌에서 임영웅은 7인조 라이브 밴드의 꽉 채워진 사운드, 4명의 현악주자들이 빚어내는 유려한 선율, 풍성한 브라스(3인), 다채로운 소리를 겹겹이 쌓아올려준 4명의 코러스와 함께 더해 흠 잡을데 없는 음향을 들려줬다. 158명에 달하는 안무팀도 드넓은 상암 구장을 꽉 채워준 일등공신이었다.
무대는 객석을 따라 4면을 빙 둘러 세워졌고, 잔디 보호를 위해 무대 위에 방수천을 씌운 뒤 중앙 무대를 배치했다. 중앙 무대는 국내 최초로 시도된 ‘실시간 조립식 무대’였다.
소속사 물고기뮤직 관계자는 “중앙 무대는 설치한 뒤 첫날 공연을 마치고 철거했다가 둘째 날 공연을 위해 다시 설치했다”며 “잔디 보호를 위해 이러한 시도를 해봤다”고 귀띔했다.
임영웅의 팬들은 차분하지만 열정적이었고, 적재적소에서 공연에 참여했다. 다른 가수의 팬덤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면 5만 관객은 임영웅이 노래를 부를 땐 대체로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었다. 떼창으로 하나가 될 때도 많았지만, 팬들은 발라드곡 ‘이젠 나만 믿어요’나 ‘연애편지’와 같은 히트곡에선 응원봉을 좌우로 흔들며 그의 노래를 충분히 감상했다.
다채로운 무대 장치도 많았다. ‘이젠 나만 믿어요’를 부를 땐 사랑이 꽃을 피우는 거대한 나무가 등장했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에선 리프트 위에 올라선 임영웅 뒤로 하얀 달이 떠올라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중앙 무대에서 ‘모래 알갱이’를 부를 땐 거대한 잔디 위로 하얀 구름 같기도 하고 포말 같기도 한 흰 물결이 일렁였다. ‘우리들의 블루스’를 부를 땐 두 명의 남녀 무용수가 상암 구장 한가운데서 비를 맞으며 춤을 췄다. 음악 속 감정을 풀어내며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아비앙토(A bientot)’는 왕이 행차할 때 등장하는 대취타 버전으로 편곡해 한복에 선글래스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거대한 열기구도 떠올랐다. 임영웅은 열기구에 올라 ‘사랑은 늘 도망가’를 부르며 팬들에게 다가섰다. 비도 오고 바람도 제법 불어 꽤나 흔들리는 열기구 안에서도 임영웅은 흔들림 없는 라이브를 선보였고, 팬들은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화답했다.
노래를 마친 뒤 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안전하게 잘 만들어졌는데도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길 만큼 쉽지 않았다”고 말해 또 한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팬들이 ‘임영웅’을 연호하면, 임영웅은 ‘영웅시대’를 외치며 화답했다. 콘서트 현장에서 임영웅은 이전 TV 속 모습보다 더 모범생 막내아들 같은 모습으로 팬들과 만났다. 영웅시대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하고 또 걱정했고, 노래를 마치고 멘트를 할 때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건네고자 했다. 고령의 팬들을 향한 배려였다. 임영웅은 물론 공연장 곳곳에 자리한 안전요원 역시 어르신 관객을 업고 자리로 안내한 것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공연장에서 만난 한 70대 팬 김후경(77) 씨는 “‘미스터트롯’을 보며 임영웅의 노래에 큰 위로를 받고, 매일매일 살아있는 것이 감동이라는 기분이 들었다”며 “건실하고 바른 삶에서 묻어나는 감동적인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여 영웅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공연에서 임영웅은 자신의 정체성을 ‘트로트 가수’가 아닌 ‘가수’로 분명히 정의했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기에 대중은 그를 트로트 가수로 인식할 수 있으나 이날 공연에선 트로트를 비롯해 발라드, 댄스, EDM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임영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저도 이제 제법 트로트 곡이 많이 쌓였다. 트로트 곡만 모아 콘서트를 열어보자는 생각도 했다”는 이야기도 건넸다.
어머니와 함께 공연장에 왔다는 박혜진(44) 씨는 “‘미스터 트롯’ 이미지로 인해 트로트 가수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공연을 보러 오기 전 음악 몇 곡을 들어보니 트로트 장르에 가둘 가수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개인적으로는 ‘이젠 나만 믿어요’와 EDM 장르인 ‘두 오어 다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공연 시작 1시간 50분을 지나며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임영웅은 무대 중앙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열창했다. ‘미스터 트롯’에서 불렀던 이 곡을 다시 부르는 임영웅은 클라이맥스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들려주며 현장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남행열차’까지 이어진 댄스 트로트 메들리였다.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거대한 인형 ‘영웅이’ 2명이 등장해 팬들과 호흡했다.
웃음 터지는 명장면도 몇 번이나 나왔다. 중앙에 설치한 무대에서 ‘온기’를 부르기에 앞서 뮤직비디오가 상암 구장에서 방영되자 공연장은 거대한 야외 영화관이 됐다. 단편영화 형식의 이 뮤직비디오에선 임영웅이 ‘시월이’를 애타게 찾는 장면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영웅시대는 ‘네’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임영웅은 “제 인생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3일을 밤새가며 찍었다”며 “휴가를 가서 시나리오를 혼자 썼다. 물론 감독님이 내용을 싹 바꾸셨지만 재미있는 도전이었다. 풀버전은 30분 길이인데 각종 OTT에서 보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깜짝 발표를 하기도 했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서울의 달’, ‘인생찬가’에 이르기까지 총 30곡을 부르는 동안 임영웅은 게스트도 없이 장장 3시간이 넘는 무대를 이끌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임영웅의 상암벌 공연은 가수 임영웅의 저력과 진가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흠 잡을 데 없는 라이브 실력과 견고한 팬덤은 공연형 가수 임영웅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했다. 임영웅 역시 “이곳이 우리의 종착역이 아닌 시작”이라고 했다.
임영웅의 공연에선 무엇보다 팬들을 향한 배려가 빛났다. 그는 평소 공연 때는 관객들을 위해 방석을 준비했으나, 상암벌의 둘째날 공연에선 비가 오는 탓에 우비 5만 벌을 선물했다. 임영웅 팬클럽의 상징색인 하늘색 우의를 입고 객석에 앉은 관객들로 인해 이날의 공연은 더 특별해졌다. 하늘색 우산을 쓴 안무팀까지 상암은 온통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공연을 마치며 임영웅은 팬들을 향한 애틋하고 진솔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건넸다.
“제가 유일하게 빛나는 순간은 여러분 앞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데뷔 후 2849일 만에 이 스타디움에 선 것은 제 힘이 아닌 여러분의 힘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곁을 변치않고 지켜준 여러분, 여전히 작은 점에 불과한 저를 큰 우주로 만들어준 여러분. 여러분 덕분에 저는 안주하지 않고 더 큰 꿈을 찾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영웅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