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다시 쓰기
“빵 대신 케이크”, “다이아몬드 사기”
혁명 완성 위한 가짜뉴스 희생양?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란하고 방탕한 추악한 창녀, 마녀를 감시해!”
가장 높은 곳에서 순식간에 추락했다. 고작 10대의 나이에 프랑스의 왕비가 돼 단두대로 향한 때는 서른 여덟 살. 처참한 굶주림으로 가난이 들끓던 프랑스의 ‘눈엣가시’로 ‘최악의 평판’을 달고 다닌다. 세상은 그를 힐난하며 가장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뮤지컬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최초의 ‘가짜 뉴스’ 희생양으로 그리며 ‘진짜 정의’를 묻는다. 10주년 그랜드 피날레 시즌을 맞은 만큼 이 버전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 지난 3개월의 여정을 이어온 ‘마리 앙투아네트’는 선거철과 맞물려 막을 올리며 한국 정치 풍자 뮤지컬로 불리기도 했다. 올초 김경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기 직전의 시대상과 함께 그 시절 국왕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의 삶을 그린다. 백성들의 굶주림은 나 몰라라 하는 ‘사치의 아이콘’이자 ‘타락의 원흉’이었다. 뮤지컬은 적극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다시 쓰기’를 시작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막내딸로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는 열네 살에 합스부르크와 프랑스 왕궁의 동맹을 위해 프랑스의 왕태자비가 됐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프랑스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여성이 된 그는 자유로운 합스부르크 공주 시절과 달리 엄격하고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왕실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모든 시선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해 있었다. 넘버 ‘그녈 봐’엔 마리 앙투아네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앙투아네트의 신분과 위치, 그를 바라보는 시민들과의 격차를 보여주기 위해 뮤지컬은 무대를 상하 구조로 만들었다. 왕과 왕비, 귀족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무대를 비스듬한 각도로 경사를 줘 객석보다 높은 곳에 배치했다. 신분의 격차는 절묘하게 그려졌으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엔 경멸과 질시가 가득 찼다.
“황태잘 안겨주고 꿈에 젖은 왕비님, 헛된 꿈 여전히 우리 눈엔, 모자란 외국 여자네(중략) 그녀는 원해 저 잘생긴 백작을, 아름답고 순진해, 창피하고 더러워, 왕비는 무시당해 마땅하지” (‘그녈봐’ 중)
마리 앙투아네트는 선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힐난의 대상이었다. 외국인으로 프랑스의 국모가 된 그는 순진하고 어린 10대였다. ‘아무 것도 몰라’ 세상을 맑고 밝게 바라보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탓에 백성들의 가난과 굶주림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앙투아네트에겐 끊임없이 소문과 가짜 뉴스가 따라다녔다. 스웨덴 명문 가문 출신으로 유럽 사교계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은 악셀 폰 페르젠 백작과의 풍문, 굶주린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빵 대신 케익’ 발언은 사실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의 한 구절이나, 이를 앙투아네트가 한 것으로 ‘선전’됐다. 이 한 마디로 인해 앙투아네트는 굶주린 백성은 외면하고, 자신만의 성에서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왕비가 됐다.
뮤지컬의 ‘가짜뉴스’ 바로잡기는 곳곳에서 시작된다. 극에서도 굶주리는 백성들을 돌아보라는 마그리드 아르노의 외침에 귀족들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 정작 앙투아네트는 없었다.
뮤지컬은 정의를 향하는 혁명도 온전히 정당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시민들의 분노를 발판 삼아 돈, 권력 등 각자의 욕망과 커져가는 증오를 숨긴 세력들이 조직을 이끌고 음모를 꾸민다.
누군가에겐 혁명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최고의 도구였다. 왕좌를 탐하는 오를레앙 공작은 ‘거리의 시인’ 자크 에베르를 통해 시민을 선동한다. 왕비를 비방하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신문에 싣는다. 페르젠과의 염문을 담은 ‘오스트리아 암캐’라는 시가 프랑스 시민들의 대중가요가 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낙원을 꿈꾸게 해. 내가 원하는 그대로 이용할 수 있게. 분노, 증오, 저주, 피 냄새를 맡게 해. 이게 바로 세상을 지배하는 법”이라는 것이 그들의 발상이다.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오르게 된 결정적 혐의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 목걸이는 루이 15세(루이 16세의 조부)가 정부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다. 뮤지컬에선 보석상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이 목걸이를 팔기 위해 혁명군과 모략을 꾸민 것을 보여준다. 뮤지컬에서도 실제 역사에서도 앙투아네트는 목걸이를 사지 않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퍼진 가짜뉴스로 시민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역사에서도 앙투아네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앙투아네트에게 덧씌워진 가장 가혹한 죄악은 자신의 어린 아들을 겁탈했다는 근친상간 혐의였다. 역사에서 재판 내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앙투아네트는 근친상간 혐의 고발자인 에베르에게 유일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묻고자 한다”며 잠 못 이루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안아주는 것이 근친상간이냐고 반문한다. 역사가 막스 갈로는 이 혐의를 제
기한 혁명 정부로 인해 재판정이 수치와 부끄러움에 휩싸였다고 적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멈추질 않았다. 지독한 가난, 빵 한 조각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지켜본 이들에게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는 자신들을 “지옥으로 처박은 몰락한 왕실”이다. 뮤지컬 내내 흐르는 한국의 ‘민중가요’ 스타일의 넘버 ‘더는 참지 않아’에선 이들의 분노와 투쟁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담겼다.
“저 여잔 우리 왕비 아냐, 우리를 장난감처럼 다루고 싫증나면 잔인하게 버리지, (중략) 더는 울지 않아, 함께 일어나 싸워야 해.” (‘더는 참지 않아’ 중)
마리 앙투아네트는 철없는 왕비였다. 뮤지컬은 ‘가짜뉴스’를 바로잡아 그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내나 한 나라의 왕비는 백성들의 삶을 알고자 하지 않았던 죄로 자격을 잃었다. 페르젠이 부르는 넘버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이 등장하기 직전의 장면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현실 감각을 보여준다. 세상의 비난에 눈을 감고 비난의 원인을 보려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동화’에 갇혀 행복을 꿈꾸는 국모의 모습이다.
앙투아네트는 국고 낭비, 반역, 국가 안보 음모죄로 사형이 선고됐다. 루이 16세의 처형을 지켜보고 앙투아네트 역시 감옥으로 이송됐다. 처형 하루 전 앙투아네트는 하룻밤 새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고 말했다. 극심한 공포와 충격, 슬픔으로 머리색이 옅어지는 현상을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당시 앙투아네트는 사형 전 남긴 글을 통해 “부끄러워할 것 없다. 나는 죄를 지어 죽은데 아니니까”라고 적었다. 다만 젊은 날의 유흥과 소비, 바렌 사건은 그의 명백한 잘못으로 기록돼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앙투아네트를 ‘지은 잘못에 비해 너무도 크고 무거운 벌을 받은 사람’으로 기술한다.
뮤지컬도 앙투아네트의 잘잘못을 가리기 보단 현대 사회를 휘감고 있는 가짜 뉴스와 군중 심리, 정치적 선동을 질타하는 데에 집중한다. 자칫 현실 정치와 맞물려 미화와 옹호 논란이 일수도 있는 부분이나, 메시지는 명확하다. 오를레앙의 넘버에 그것이 잘 담겨있다.
“그래 이건 혁명이지, 왕비를 공격해, 내뜻대로 군중들을 선동하라, 그러면 나의 세상, 양심 따윈 버려, 그건 패배자의 것, 나는 승리를 원하지, 난 최고니까.”(‘나는 최고니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