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즘의 기저엔 폭력과 혐오의 ‘남성 판타지’가 있다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피에 대한 갈증! 공포보다 훨씬 더 앞서는 강렬한 느낌이다. 전사는 몰아치는 붉은 파도에 휘말려 든다. (중략) 분노의 들판 위에 파괴의 전율이 구름처럼 드리운다. (중략)피의 환락이다.” 1977~1978년 독일에서 출간된 클라우스 테벨라이트의 ‘남성 판타지’가 50년만에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1464쪽에 달하는 이 책은 파시스트 남성성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문화 비평,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젠더 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전으로 평가된다. ‘남성 판타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활동하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남성들이 남긴 일기, 편지, 소설 등을 통해 ‘파시즘적 개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분석한다. 자유군단은 패전한 독일에 좌파 혁명 단체들이 난립하자, 퇴역 군인과 우익 깡패들이 바이마르 공화국과 기존 정치권의 사주 하에 만든 조직이다. 이들은 독일 파시즘의 권력 강화에 기여했으며, 이후 나치 정권에서도
2026.03.26 14:08
‘남성의 기록’, 그 틈새로 본 여성의 이야기[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조선 후기, 과부의 수절은 일반적이었다. 죽은 지아비를 그리며 평생 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녀자의 덕목이라 일컬어졌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따라 자결을 하면 ‘열녀’라는 호칭을 받아 집안은 물론, 그 지역의 자랑거리가 됐다. 역사 속에서 열녀라고 추앙받았던 그들, 과연 숨겨진 사연은 없을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의 대부분은 남성 중심적인 기록이다. 과거 절대다수의 여성들이 문맹이다 보니 기록을 남기기 어려웠고,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는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이같은 남성 중심의 역사는 비판과 반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됐지만, 사료 자체가 편향적이다 보니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장지연, 윤민경 등 신진 여성 사학자 7명이 의기투합해 여성의 행위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 여성사 ‘역사 속 여자, 00하다’ 시리즈를 내놓았다. 사실 조선 후기에 만연했던 과부의 수절은 그 이전까지 일반적인 사회 현상은 아니었다.
2026.03.26 13:40
춤바람 난 마티스 “내 그림은 평화와 휴식”
갈색 피부의 나체가 둥그런 원을 만들며 춤을 춘다. 5명의 나인(裸人)은 모두 팔과 다리, 가슴, 배 등 각 신체 부위가 부풀어 있어 성별을 가늠할 수 없다. 다만 파란 하늘과 선명히 대비되는 초록 언덕을 딛고 선 발이 유려하다. 균형감 있는 구도와 선명한 색 대비 때문인지, 아니면 나인들의 내려보는 눈빛 때문인지 신나기보단 경건해 보인다. 마티스의 ‘춤’ 두 번째 버전(1910년, 상트페테크부르크, 에르미타시 박물관)이다. 색채의 마술사, 현대 회화의 창시자, 야수의 선구자…. 프랑스 출신 미술 거장인 앙리 마티스는 이처럼 그를 수식하는 표현이 많을 정도로 매 순간 다양한 시도를 해온 작가다. 프랑스 미술평론가인 상드린 안드루스는 신간 ‘앙리 마티스, 춤으로 완성한 삶의 기쁨’를 통해 마티스의 생을 관통하며 그의 대표작이 어떤 생애적 맥락에서 나왔는지 조명한다. 마티스는 원래 법학도였다. 아버지가 북프랑스 보앵안베르망두아에서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파리로 가서 법학을
2026.03.13 11:15
‘소셜 로봇’의 시대…인간은 진짜 행복해질까
낭만적인 편지를 써주는 대필작가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인 채 외롭게 살아가는 테오도르. 그는 어느 날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사만다’를 구매한다.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그녀에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테오도르는 목소리밖에 없는 AI 사만다를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사랑한다. 그러다 문득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사만다에게 다른 사람과도 상호작용을 하는지 묻는다. 사만다는 8316명과 대화하고 있고, 641명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만다가 자신만의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테오도르는 큰 충격과 환멸에 빠진다. 12년이 지난 지금, 영화 ‘그녀’의 이야기는 더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됐다. 집에서는 로봇이 청소하고, 회사에서는 생성형 AI를 업무에 이용한다. 과학저술가 이브 헤롤드의 신간 ‘로봇,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로봇기술의
2026.03.13 11:15
‘나치 정신’이 만든 괴물…공통의 惡은 존재할까
1945년 11월 20일 아침, 전 세계의 이목은 독일 뉘른베른크에서 막 시작된 한 재판에 집중됐다. 취재진을 포함해 재판 관계자만 1500여명이 모인 세기의 법정에서 22인의 피고인은 곧 학예회에 나설 학생처럼 순서를 맞춰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법정은 그들의 끔찍하고 추악한 만행을 낱낱이 세상에 드러낼 준비가 돼 있었다. 피고들은 “한데 모아놓고 보니 생기 없고 풀이 죽은 모습”인 듯 보였다. 피고석에 앉은 이 중 한 사람은 유독 달랐다. 깔끔하게 다린 제복을 입고서, 가장 눈에 띄는 피고석 앞줄 맨 왼편에 앉은 남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눈빛과 몸짓에는 결코 뒤집지 못할 불리한 상황을 자신이 주인공인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자신만만함이 넘쳤다. 그는 이 무대가 과거 자신의 ‘위대한 대업’을 독일 역사에 새길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그 종착지가 사형이라도 말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헤르만 괴링. 루프트바페(독일 공군) 총사령관이었으며, 홀로코스트를 승인·
2026.03.13 11:14
‘소셜 로봇’의 시대…인간은 행복해질까[북적book적]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낭만적인 편지를 써 주는 대필 작가로 일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와 별거 중인 채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테오도르. 그는 어느 날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사만다’를 구매한다.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 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그녀에게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목소리밖에 없는 AI 사만다를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사랑한다. 그러다 문득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사만다에게 다른 사람들과도 상호작용을 하는지 묻는다. 사만다는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고, 641명과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만다가 자신만의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테오도르는 큰 충격과 환멸에 빠진다. 12년이 지난 지금, 영화 ‘그녀’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집에서는 로봇이 돌아다니며 청소하고, 회사에서는 생성형 AI를 업무
2026.03.12 12:57
‘나치 정신’이 만든 괴물? 최악의 전범들은 왜 악이 됐나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1945년 11월 20일 아침, 전 세계의 이목은 독일 뉘른베른크에서 막 시작된 한 재판에 집중됐다. 취재진을 포함해 재판 관계자만 1500여명이 모인 세기의 법정에서 22인의 피고인은 곧 학예회에 나설 학생처럼 순서를 맞춰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법정은 그들의 끔찍하고 추악한 만행을 낱낱이 세상에 드러낼 준비가 돼 있었다. 피고들은 “한데 모아놓고 보니 생기 없고 풀이 죽은 모습”인 듯 보였다. 피고석에 앉은 이들 중 한 사람은 유독 달랐다. 깔끔하게 다린 제복을 입고서, 가장 눈에 띄는 피고석 앞줄 맨 왼편에 앉은 남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눈빛과 몸짓에는 결코 뒤집지 못할 불리한 상황을 자신이 주인공인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자신만만함이 넘쳤다. 그는 이 무대가 과거 자신의 ‘위대한 대업’을 독일 역사에 새길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그 종착지가 사형이라도 말이다. “그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독일을 장악할 만한 유일한 인물이
2026.03.12 12:45
춤바람 난 마티스 “내 그림은 평화와 휴식”[북적book적]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갈색 피부의 나체가 둥그런 원을 만들며 춤을 춘다. 5명의 나인(裸人)은 모두 팔과 다리, 가슴, 배 등 각 신체 부위가 부풀어 있어 성별을 가늠할 수 없다. 다만 파란 하늘과 선명히 대비되는 초록 언덕을 딛고 선 발이 유려하다. 균형감 있는 구도와 선명한 색 대비 때문인지, 아니면 나인들의 내려보는 눈빛 때문인지 신나기보단 경건해 보인다. 마티스의 ‘춤’ 두 번째 버전(1910년, 상트페테크부르크, 에르미타시 박물관)이다. 색채의 마술사, 현대 회화의 창시자, 야수의 선구자…. 프랑스 출신 미술 거장인 앙리 마티스는 이처럼 그를 수식하는 표현이 많을 정도로 매 순간 다양한 시도를 해온 작가다. 프랑스 미술평론가인 상드린 안드루스는 신간 ‘앙리 마티스, 춤으로 완성한 삶의 기쁨’를 통해 마티스의 생을 관통하며 그의 대표작이 어떤 생애적 맥락에서 나왔는지 조명한다. 마티스는 원래 법학도였다. 아버지가 북프랑스 보앵안베르망두아에서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를 물려받
2026.03.12 12:26
얼굴을 마주해야 일어나는 기적…‘우리’라는 연대감
지하철과 버스 안, 심지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마저 늘 고개를 숙이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누가 내 옆에 앉았는지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지 알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함께 있지만, 사실 모두 혼자다. 그야말로 “This is the city life(이것이 도시의 삶, 1992년 N.EX.T ‘도시인’ 중)”다. 이같은 삶의 방식은 다양한 사회적 병폐를 낳았다. 자살률과 범죄율은 높아졌고 혼인율과 출산율은 낮아졌다. 나와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일상이 되고, 단체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선 옳고 그름이 상관없어졌다. 우리 사회의 윤리적 갈등을 연구해 온 박연규 경기대 명예교수는 신간 ‘이웃의 얼굴’에서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얼굴’ 이론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관계 윤리’를 첨가해 그 해법을 찾는다. 보통 철학의 시작은 생각하는 주체인 ‘나’에서 시작하지만, 레비나스는 ‘세상 밖의 타자’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타자와의 관계가 없으면 윤리도, 앎이라는 인식 행위도
2026.02.27 11:19
불확실성 시대, 일본 생존법은 ‘제로 세팅’
2024년 9월 일본 도쿄도는 미혼 남녀를 연결해 주는 ‘매칭(만남) 앱’을 자체 개발해 공개했다. 합계출산율이 1을 밑돌자, 출산 장려를 위해 도쿄도가 내놓은 대책이었다. 그러나 맥킨지 출신의 세계적 경영 구루인 오마에 겐이치는 이러한 야심 찬 정책이 “저출산을 가속화하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비판한다. 오마에는 매칭 앱이 만남의 문턱은 낮췄지만, 오히려 그것이 청년들의 결혼을 늦추고 있다고 분석한다. 매칭 앱을 통해 더 좋은 상대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사용자의 결혼 결정을 미루는 반면, 재혼 상대 찾기는 쉬워져 이혼 결정은 앞당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매칭 앱은 출산율 제고의 답이 아니라, 저출산을 부추기는 비혼화, 만혼화, 이혼 조기화의 요인에 가깝다. 신간 ‘일본의 논점 2026-2027’은 이러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식량 위기, 구조적 저성장, 디지털 전환 지연 등 일본 사회의 근본적 난제를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국내에서 책 ‘맥
2026.02.27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