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이성적 혹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항상 맞고, 나의 신념은 늘 옳은 방향을 향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에 나와 다른 생각이나 가치관은 모두 비합리적이며, 심지어 망상이라고 단정짓기도 한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필리프 슈테르처는 그의 신간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 우리가 진실이라 생각하는 모든 사실들은 일종의 ‘착각’이며, 이에 따라 ‘인식적 비합리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최근 가짜 뉴스나 음모론 등이 범람하는 것도 이같은 인식적 비합리성 때문이라는 것.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의 뇌 기능이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즉 정상적 사고와 망상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합리성의 착각’에 시달리는 이유는 뇌의 기능적 측면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뇌는 깜깜한 뼛속 방에서 감각 기관이 보내는 신경 자극을 수신해 세계의 상을 만들어낸다. 즉 현실 자체를 인식하기 보다 ‘현실과 부합하는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만약 감각 데이터가 뇌가 만든 가설적 세계 모델에서 벗어나면 오류 신호를 통해 수정되기도 하는데, 이를 신경과학계에선 ‘예측처리 이론’이라고 부른다.
예측 기계로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서 현실과 부합하는 부분은 바로 생존과 번식과 관련된 사항이다. 예컨대 남성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여성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큰 것은 남성의 경우 자신을 적극 어필해야 번식의 기회가 많아지고, 여성은 양육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남성의 아이를 임신하는 실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다 보니 비합리성이 다르게 발현됐다는 설명이다.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고슴도치 엄마’적 사고 역시 후손을 잘 돌보게 만들려는 일종의 긍정적 환상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자신이 합리적이라는 확신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복잡성을 줄이고 결정을 수월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흑백논리나 양극화, 이분법적 사고 등과 같은 폐해도 가져온다. 저자는 자신의 확신이 확실한 팩트가 아닌, 원칙적으로 가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다른 관점에서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중요한 전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제정신이라는 착각/필리프 슈테르처 지음·유영미 옮김/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