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3회> 총칼 없는 전쟁 (2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강 프로 님!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하시려는 거예요?”

역시 신희영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잠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이내 마음을 추스르더니 조목조목 따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미련한 짓을 한다고요?”

“아무렴, 미련하기 짝이 없지요. 규제와 틀에 묶여 사는 허깨비보다는 그 바로 옆에서 끗발 날리는 실권자로 남는 게 더 좋다는 걸 왜 모르세요? 우리 역사를 훑어봐도 고종 임금보다는 고종을 앞에 내세운 대원군이 훨씬 더 끗발을 날렸잖아요?”

“통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군요. 고종은 뭐고 대원군은 또 뭐야?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는 왜 하실까?” “에이그, 내 말은… 강 프로님이 공연히 임원자리 하나 차고앉아서 밤낮으로 시달리는 것 보다는 회장 기둥서방 대접 받으면서 먹고 노는 게 훨씬 낫다는 말이에요.”

“회장 기둥서방? 그럼 신 여사께서는 회장님이 되고… 나는 기둥서방 노릇이나 하면서 놀고 먹으라는 말씀?”

강준호는 전화통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생각해보니 썩 기분 나쁜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입에서 ‘기둥서방’이란 단어가 술술 흘러나왔다는 사실부터가 매우 고무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요. 내친 김에 터놓고 말해볼까요? 강 프로님이 우리 회사에 임원으로 들어앉으면 당장 무슨 일부터 할 수 있을까요? 식품학 박사들 틈에 끼어서 연구를 하실래요? 아니면 영어를 우리말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무역을 하실래요? 그것도 아니면 광고, 마케팅 도사들 틈에서 기업홍보를 맡으실래요?”

이를테면… 네가 아는 게 쥐뿔이나 있어? 라는 뜻과 같았다. 아는 게 쥐뿔도 없으면서 회사 임원자리에 앉아있는 것부터가 웃긴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강준호도 그 점이 염려스럽긴 했다. 요즘 젊은 녀석들은 어찌 그리도 똑똑한지 도통 말상대조차도 하기 어려웠다. 스펙을 적으라고 하면 족히 A4용지를 가득 채울 만큼 줄줄 써나가곤 했는데… 출신 대학 이름부터 꼬부랑글씨로 시작되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할 따름이었다.

“그야… 골프 단을 창설해서 골프 선수들을 발굴, 육성하고, 에… 또… 뭐냐? 세계적인 골프대회에 참가해서 상금을 타오고…”

“거 봐요. 강 프로님이 할 수 있는 일은 골프 치는 것 밖에 또 있냐고요. 그러니 명색이 식품회사에서 주력업무의 전문가들을 모두 제쳐놓고 골프선수를 임원에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럼 됐어요. 강 프로님에겐 별도의 사무실을 내어드리고 별도로 푸짐한 월급을 드릴게요. 공석에 나서지만 말아달라고요.”

신희영은 확실하게 제 뜻을 밝히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똑똑하고 냉정한 경영자의 자질을 갖춘 셈이었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공연히 나서서 설치지 말고 국으로 주는 떡이나 받아먹을 것! 이것이 그녀의 핵심 요지였다.

“그 대신…”

신희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내친 김에 단단히 못을 박아놓자는 의도였다.

“그런 호사라도 누리려면 나를 적극적으로 밀어서 회장 자리에 앉혀놓으란 말이에요. 내가 회장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그나마 국물도 없다고요. 알겠어요?”

회장 기둥서방도 ‘능력 있는 남자’의 범주에 드는 것일까? 강준호는 두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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