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도심의 흉물’이던 건물
자산가 모여사는 초고가 주택으로
주변 공급 어려워, 집값 더 오를 듯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조금만 걸으면 궁궐을 내려다보며 살 수 있는 집이 등장한다. 왕의 초상화를 모시던 선원전과 덕수궁, 경희궁이 가까이 자리한 서울 종로구의 고급 주거단지 ‘덕수궁 디팰리스’다.
국내 자산가들은 주로 강남과 용산 등에 터를 잡지만, 일부 재계·금융권 인사들은 희소한 입지를 찾아 덕수궁 주변에 정착했다. ‘궁궐뷰’라는 독특한 조망과 서울 도심 업무지구에 가까운 입지가 고소득자의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년 가까이 표류한 도심 개발…‘유령건물’에서 초고가 주택으로
덕수궁 디팰리스는 상가를 함께 갖춘 주상복합이다. 지상 2~8층에는 170호실의 오피스텔, 9~18층은 58가구의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는 118~234㎡(이하 전용면적)의 대형 평형 위주로 구성됐다.
현재는 종로구 서울 도심(CBD)을 대표하는 초고가 주택이 됐지만, 덕수궁 디팰리스의 시작은 지금의 고급 주거단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건물은 1993년 ‘문화타워’로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시행사 ‘거삼’이 새문안로를 따라 지정된 신문로 2구역 중 제8지구를 재개발하겠다며 토지소유자를 모집했다. 2년 뒤 기산과 화남건설이 시공을 맡아 착공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시행사 대표가 분양금을 다른 지구 개발 사업과 개인 용도로 전용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그로부터 6년 후, 건물의 이름이 또 바꼈다. 주변에 덕수궁과 경희궁이 있고 사업 부지가 서궐 영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킹덤타워’가 새로운 이름이 됐다. 당시 분양시장에서는 풍수지리 마케팅이 일시적으로 유행했는데 이 킹덤타워는 조선시대 왕궁터 인근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왕이 태어나는 용맥’, ‘백두대간의 정기’와 같은 문구를 통해 홍보됐다. 하지만 이 사업도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후 2002년 이번에는 ‘한진 베르시움’이라는 이름으로 새 사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업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인허가권자였던 종로구청이 건물 높이가 설계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분양 중단 명령을 내렸다. 이를 무시한 시행사가 분양을 강행했고, 결국 모르고 분양 받은 이들이 피해를 봤다. 공정률 78%에서 멈춘 이 건물은 그렇게 십수년 간 도시의 흉물이 됐다.
사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홍콩계 투자회사 퀸스타운리미티드가 서울중앙지아법원 파산부로부터 해당 건물을 매입했고 기존 사업계획을 고급 주거시설 중심으로 재편했다. 결국 27년의 횡보 끝에 이 건물은 덕수궁 디팰리스라는 이름으로 2020년 입주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퀸스타운리미티드가 해당 건물에 주목한 이유는 ‘탁월한 입지’였다고 한다. 서울 도심과 가까워 출퇴근이 편하고, 거기에 덕수궁과 경희궁 인근이라는 입지를 활용해 초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본래 70가구였던 사업 계획을 58가구로 줄이고, 평수는 넓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커뮤니티도 호텔식…58가구만을 위한 고급 주거시설
덕수궁 디팰리스는 아파트 가구 수가 적은 만큼 입주민 간 접촉이 상대적으로 적고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고액 자산가들에게 적합한 상품으로 설계됐다. 특히 건물 뒷편으로 가면 ‘드랍오프존’이 마련돼 있어 거주자가 차에서 내린 뒤 노출되지 않고 즉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최고급 수준의 컨시어지 및 커뮤니티도 운영되고 있다. 청소와 세탁 서비스, 로비 리셉션 데스크 등 호텔급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피트니스와 수영장, 지엑스(GX)룸, 골프라운지, 스파, 마사지&테라피룸, 와인저장고 등 고급 어메니티 시설도 누릴 수 있다.
루프톱 가든과 가든라운지, 디(D)라운지, 컨퍼런스룸, 다목적실 등 입주민끼리 교류할 수 있는 시설도 갖췄다. 첨단 시스템으로는 음식물 쓰레기 자동이송설비와 공기청정형전열환기 시스템 등이 있다.
광화문·시청 업무지구 가까워…금융인들이 모인 이유
덕수궁 디팰리스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조망이다. 단지 인근에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던 선원전이 자리하고 있다. 근처에는 ‘고종의 길’이라 불리는 옛길과 조선저축은행중역사택, 미국대사관저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동공원과 옛 러시아공사관도 펼쳐져 있다. 아파트 고층에서는 덕수궁과 선원전뿐 아니라 일부 세대에서 경희궁과 인왕산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지구 접근성도 이 아파트의 중요한 장점이다. 덕수궁 디팰리스가 위치한 신문로는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 중심지인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 인접해 있다. 주요 관공서와 대기업 본사, 금융회사 등이 밀집한 도심 업무지구와 가깝다. CBD에서 일하는 고소득 전문직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소유자 명단에서도 이 같은 특징이 드러난다. 분양 당시에는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등이 입주한 것으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다. 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현재는 원종규 코리안리재보험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해 신얼 상상인증권 투자전략팀장, 당효성 MBK파트너스 전무 등 금융·증권·사모펀드 업계 인사들이 이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의 소유권 변동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2019년 이 아파트를 34억5000만원에 분양받았다. 이후 2022년 차녀 정선이 씨와 사위 백종현 씨에게 소유권을 넘겼다. 정선이 씨와 백종현 씨는 지난 2014년 결혼한 사이로, 정 이사장은 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지 약 3년 만에 딸 부부에게 증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격은 분양가에서 두 배 뛰어…명품 학군도 ‘눈길’
2019년 당시 분양가와 현재 거래가격을 단순 비교하면 가격은 두 배 이상 뛰었다. 덕수궁 디팰리스의 분양가는 평당 최대 5500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두 배인 ‘평당 1억원’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에는 182㎡가 74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해당 최고가 거래의 주인공은 한빛그룹 오너 3세인 1992년생 이호웅 총괄사장으로, 이 사장은 덕수궁 디팰리스만 총 두 채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남동이나 청담동도 아닌 종로구 신문로의 덕수궁 디팰리스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부촌과 달리 이 일대는 추가적인 주택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주변에 궁궐 등 문화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어 고층 주거시설이 들어서기 매우 까다롭다.
특히 평일 낮에는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지만 저녁과 주말에는 상대적으로 한산해지는 것도 이번 주택의 큰 장점이다. 업무시설과 상업시설이 밀집한 도심에서 생활하면서도 주거공간에서는 외부의 번잡함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자산가들의 수요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학군도 덕수궁 디팰리스의 주거 가치를 뒷받침하는 요소다. 단지에서 가까운 서울덕수초등학교는 1912년 개교한 공립 초등학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근처에는 2009년 자율형 사립학교로 지정되는 등 높은 입학 경쟁률을 보이는 이화여자고등학교 등이 위치해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덕수궁 디팰리스의 특징은 세종대로, 종로 등 업무지구에 ‘도보 출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동시에 큰 도로에서 안 쪽으로 한 블록 들어오면 매우 조용한 주거단지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축물 내외부는 매우 고급스러운데, 입지는 전통적인 희소 가치가 있는 부동산 자산”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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