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2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2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어머나, 왜들 이러세요?”
마담과 꽃님이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퍽!’ 소리, 혹은 ‘아이고!’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행히 주먹질은 오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꼭 주먹이 오가야 싸움인가? 둘이 눈을 부라리거나 술병 두어 개가 쓰러져 나뒹구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이게 무슨 추태들입니까?”
역시 재벌2세는 적시에 방 안으로 들어오며 그들의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유호성과 권도일은 예상대로 서로 간에 주먹질만 하지 않았을 뿐, 콧구멍으로 뜨거운 김을 훅훅 내뿜고 있는 중이었다.
“오장님께서도 듣지 않았습니까? 저 놈이 지껄인 소리…”
오장님! 무척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회장보다는 아래지만 사장보다는 높은 재벌2세를 비꼬아 부르던 호칭이었다. 권도일의 입에서 오장님이란 호칭이 새어나왔다는 것은 그 역시 이성을 잃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코-드라이버! 쫄따구가 쫄따구답게 놀아야지요. 어디에서 큰소립니까?”
유호성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재벌2세는 둘 사이에 끼어들어 양 팔로 그들의 가슴팍을 밀며 대답했다.
“랠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싸움질부터 해요? 그러면서 서로 한 팀이라고? 예끼, 이 사람들아! 다시는 한 팀으로 랠리경기에 출전할 생각 마세요. 내일 당장 팀을 둘로 나누라고! 알아 들었습니까?”
재벌2세는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를테면 판결문을 낭독한 셈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권도일은 순간적인 재벌2세의 재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 짜놓았던 작전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펼치다니…
“그럼… 저는 유호성 선수와 다른 팀에서 뛰는 겁니까?”
권도일이 잔뜩 누그러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재벌2세의 판결문을 재차 확인하기. 이를테면 머리 나쁜 유호성이 두 말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과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애초에는 권 전무를 우리 거성의 혼이 담긴 1974년 산 치타에 코-드라이버 자격으로라도 함께 태우려고 했지요. 하지만… 하극상을 벌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힐 수는 없어요. 권 전무는 다른 머신을 타도록 하세요.”
아무리 술에 떡이 되었어도 이런 경우엔 얼핏 제 정신을 차리는 법이다. 잠시 정신줄기를 가다듬은 유호성은 그들의 대화를 찬찬히 새겨듣고 있었다. 들을수록 신나는 말이었다. 가뜩이나 맘에 걸렸던 작자를 다른 머신으로 내쫓겠다는 데 신나지 않을 재간이 있나?
“찬성입니다. 하모! 좋지요… 딸꾹!”
유호성은 바닥에 나뒹구는 술병을 바로세우기 시작했다. 이제 판결은 끝났으니 술이나 계속 마시면서 수청이나 계속 들도록 해야겠다는 심사였다. 재벌2세도 그의 심사를 모를 리 없었다. 드라이빙 실력이 좋으면 뭐하나? 에라 이 잡놈 같으니.
“그럼 유호성 선수는 뜨거운 밤을 보내도록 하세요. 이봐요, 마담. 이분 잘 모셔주세요.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분이니까.”
“네, 잘 모실게요. 일생일대의 호사한 밤을 보내실 수 있도록!”
크흐~ 좋구나. 유호성은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좌우에는 전투준비를 끝낸 미녀들이 앉아있고 앞에는 자기를 팍팍 밀어주는 재벌이 있으니 사내대장부 인생에 더 이상 무얼 바랄까… 하는 심정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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