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9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18

칙칙폭폭! 이를테면 객차 세 칸으로 만들어진 기차는 일렬로 늘어선 아가씨들의 가랑이 사이를 벌써 열 바퀴째나 돌고 있었다. 맨 앞 칸과 맨 뒤의 객차는 멀쩡했지만 가운데 끼어 있는 객차는 벌써 비틀대기 시작했다.

“탈선하겠소. 유호성 대감!”

“까딱없어요. 아무렴 까딱… 딸꾹!”

호박 끈으로 장식된 유호성의 갓은 언제 벗겨졌는지 목 밑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갓끈을 단단히 조였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밟혀 찌그러졌을 게 분명했다.

“취했구먼!”

“안 취했대도 그러시네… 딸꾹!”

취했냐고 물어보나마나, 안 취했다는 대답은 들어보나마나… 빈속에 연거푸 독한 양주를 들이부은 까닭이었다. 분위기에 취하고, 양주에 취하고, 드라이버 감투에 취했으니 유호성의 정신이 멀쩡할 리 없었다.

“저기에… 오늘 밤 점령해야 할 고지가 보인다는 말씀… 딸꾹!”

드디어 유호성이 바닥에 벌렁 드러눕고 말았다. 돌아눕는 순간에 빙글 미끄러져 돌아내려 간 호박 끈 갓이 그의 머리통에 눌려 납작 찌그러졌다. 귓구멍으로는 흥겨운 가락이 밀려들어 오고 게슴츠레하게 뜬 눈앞에는 춤추는 붉은 팬티와 검은 망사스타킹, 그리고 하얀 속살이 보일 뿐이었다.

“당신 이름이 뭐야? 꽃님이야? 귀요미야?”

유호성의 안중에 이미 재벌 2세와 권도일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반은 입고 반은 벗은 미녀들뿐이었으니, 다음 수순은 불문가지.

“꽃님이, 귀요미… 어서 수청을 들라! 딸꾹.”

그는 양손으로 두 여인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버벅대기 시작했다.

“상감마마! 저기 술에 취한 대감을 내실로 모셔도 되겠사옵니까?”

언제부터 재벌 2세를 상감마마로 부르기 시작했을까? 아직까지도 대감놀이는 계속되고 있었던 것일까? 눈치 빠른 마담은 눈웃음을 살살 치며 재벌 2세에게 물었다. 이를테면 진도를 높여야겠다는 말인데… 진도를 나아가기에 앞서 주빈에게 의향을 묻고 허락을 받는 솜씨로 보아 화류계의 정상에 머물러 있는 마담임을 실감하게 했다.

“자네 뜻대로 하시게.”

재벌 2세는 아직 정신이 멀쩡했다. 하긴 권도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제 재벌 2세의 의중을 캐물어야만 할 때라는 것을 그는 직감했다.

“어째서 이토록 난잡한 쑈를 하셨습니까? 저로부터 1974년산 치타의 드라이버 자리를 빼앗아서 유호성에게 맡기는 일이 그리도 어렵던가요?”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드라이버 자리를 유호성에게 맡긴 이유는… 권 전무를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그런 논리인가요? 납득할 수 없는?”

권도일은 아직도 섭섭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벌 2세는 진지했다. 그는 고백하듯이 다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권 전무의 성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권 전무가 랠리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죽도록 달리겠지요. 그러면 정말로… 죽습니다. 치타는 낡은 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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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