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5회> 모든 길은 하나로! 34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코카콜라를 판다고요? 북한에서요?”
“북한, 북한…그렇게 부르지 마시라요. 우리 공화국 정식 명칭을 쓰면 얼마나 좋습네까? 하여간 남반부 거성그룹에서 12차로 고속관광도로를 깔아주겠다는 협약서를 끌어내야만 합네다.”
어제까지는 협상을 가장한 회유였다면 오늘은 협박을 내세운 강요와 다름없었다. 어쨌든 목표는 신의주 백마리에서 판문군 월정리에 이르는 구간을 본새 있게 포장하겠다는 것인데…그걸 권도일 혼자서 결정할 사안은 아니었다.
“회장님과 통화부터 해야 합니다. 회장님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만약 협약서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권도일 선생은 우리 공화국의 교화소에서 사상교육 좀 단단히 받아야 할테니 그리 아시기 바랍네다.”
제6사단장은 이렇게 한 번 더 으름장을 놓은 후에 아침상을 차리도록 했다. 아마 새벽부터 특별한 아침상을 주문한 모양이었다. 식탁 맞은편에는 제6사단장과 도형철이 앉아있었고 이쪽으로는 권도일 혼자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식탁 위에 음식이 놓이기 시작할 즈음에 제6사단장이 손뼉을 치자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 접대원이 대뜸 권도일의 옆자리로 나와 앉았다. 그녀는 식전 음식으로 차려진 잣죽을 한 술 떠서 권도일에게 권했다. 서툰 솜씨로 보아 전문적인 접대원일 것이라 여겨지지는 않았다.
“손님께 기쁨을 드리는 식사법입네다. 매춘과는 격이 다른 응대이니 거북하게 여기지 마세요. 편히 잡수시기 바랍네다.”
“전 아직 잠옷차림에…세수도 하지 못했습니다만.”
“일단 식사부터 하십시다. 앞으로 수년간 형제처럼 지낼 사인데 그까짓 복장이야 아무런들 무슨 상관입네까? 안 그렇소? 도형철 동무. 나는 겉치레보다 사람의 본심을 추구한단 말이외다. 허허!”
“그럼요, 사단장 동무 말씀이 지당합네다.”
어차피 북한 당국에서 권도일의 입국을 승인한 것은 장차 개최될 5개국 관통 랠리대회 때 각국 선수들이 랠리카를 몰고 북한 영토를 달리는 것을 미리 승인한 것과 같았다. 그런 와중에 제6사단장은 잔꾀를 부려 제 공을 추가하고 한껏 부풀려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을 부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권도일은 사단장의 수완이 결코 얄팍하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어떤 남자든 대업을 추구하다가 낙마하는 이유 중 외간여자와 얽힌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아내 이외의 여자와 애정문제로 비화하게 되면 인생 끝장!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회장님께 잘 말씀드려서 신작로 포장사업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사단장님께서는 완공 목표를 언제로 잡고 계십니까?”
“그건 당에서 정할 문제지만…향후 5년 뒤 연말로 알고 있습네다.”
그렇군. 각본은 이미 잘 짜여 있었고 제6사단장은 각본대로 연기를 벌이는 중이었다. 오히려 순수한 쪽은 도형철이었다. 그는 각본에도 없는 골프사업에 거성그룹이 투자해주길 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깊게 드리워진 베일을 걷고 당 상부의 내막을 살펴보자면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 위원장은 돌멩이 한 개를 던져 독수리 두 마리를 잡으려는 계획이었다.
장차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에서 북한 영내를 랠리 카가 통과하도록 해준다면…북한이 사용할 3년치 원유를 제공하겠다는 아랍 N-Dos단의 조건을 이미 받아들인 것, 그것도 모르고 랠리 카의 북한 통과를 신신당부하는 거성그룹을 살살 구슬려서 화끈하게 서해안고속도로를 깔아보자는 것. 이것이 바로 두 마리 독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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