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바람 부는 길(5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아직 결혼에 이르지 않은 처녀들, 그중에서도 인물 반반하고 몸매 늘씬한 텐 프로(10%)들은 은근히 ‘로드캐스팅’이란 것에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말 그대로 길을 걷다가 덜컥! 누군가의 눈에 들어 텔레비전 단역프로에 얼굴을 선보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그래서인지 KBS나 MBC, SBS 의 수돗물만 마셔도 예뻐진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사실 로드캐스팅 정도는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곤 하는 신데렐라 현상이었다. 적어도 인물, 몸매가 한결 뛰어나고 남의 시선을 오지게 끌 수 있는 주특기를 가진 10프로 중의 10프로는 그런 지난한 과정을 훌렁 뛰어넘어 곧바로 화장품 회사와의 CF 계약이 이루어지길 원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만 10프로 중의 10프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0프로 중의 10프로… 그 중에서도 또 10프로 안에 드는 미인들이라면 까짓 화장품 회사 CF계약 따위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꽃이 피어나면 벌 나비가 저절로 찾아들듯이, 텐 텐 중에서도 텐 프로급 미인이 있는 곳이라면 무성한 사연이 엮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이다.
“정말예요? 싱글메이드 사에서 CF섭외가 들어왔어요?”
“정말이야. 유리가 게릴라레이싱에서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달린 보상이라고.”
“싱글메이드라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골프용품 제조회사?”
“그렇지. 내년까지 타이거 우즈를 협찬하는 회사이기도 해. 아마 우리가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라고 뻐꾸기를 날린 덕분일거야. 타이거 우즈를 협찬하는 싱글메이드 사 입장에서는 둘을 함께 엮어서 손해날 일이 조금도 없거든?”
이 소식을 제일 먼저 배달한 이는 역시 유리의 매니저 백광돌이었다. 그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드디어 강유리와 더불어 세계로 진출할 때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유리야, 싱글메이드가 얼마나 막강한 회사인줄 알아?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아마추어 골퍼들 중 열에 아홉은 그 회사 드라이버로 공을 칠거라고. 그뿐인 줄 알아? 계약 조건이 짱짱하다니까?”
“어떤 조건인데요? 돈은 얼마 준대요?”
“비록 24초짜리 광고지만 전 세계 68개국으로 퍼져나간대요. 이제 유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거야. 하루에도 수백 차례씩 유리의 모습이 전 세계 68개국에서 방영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박 난거라고.”
“계약금은?”
“첫 시즌 방영에 100만 불!”
매니저는 흥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 우선 계약금만 따져보아도 첫 시즌에 100만 불! 이를테면 광고에 데뷔하는 돈으로 12억 원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매일같이 68개국으로 방영된다는 것은 강유리에겐 인생역전의 기회였다. 이몽룡이 뜨면 방자도 함께 뜨는 법. 강유리가 세계적인 골프모델로 명성을 날리면 매니저 백광돌의 인생길에도 역시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셈이었다. “그럼 두 번째 시즌부터는 얼마를 준대요?”
“그야 유리가 하기 나름이지.”
강유리는 와락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 그녀의 눈앞에는 아버지 강준호와 함께 헤쳐 온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탐욕스런 유민 회장의 M&A에 말려들어 사업장을 말아먹고 오로지 본전이라도 뽑자는 일념으로 유민 회장에게 접근하지 않았던가. 그 틈에 유민 회장의 부인인 신희영과 얽히게 되고 그의 아들 유호성이 끼어들면서부터 보상의 길은 점점 요원해지던 중이었다.
“일단… 아빠와 신희영 회장님께 먼저 이 소식을 전해야겠어요.”
서러웠던 나날 위에 12억 원의 돈다발을 오버랩 시키며 그녀는 전화기부터 꺼내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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