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끝까지, 죽을 때까지 (36)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후진으로 시속 60km !
후진상태로 경사도 20도가 넘는 산길을 달리는 모습은 실로 장엄했다. 후진 기어를 넣었으니 평상으로 친다면 1단 기어로 달리는 셈이었다. 그런데 시속 60km를 주파한다는 것은 엔진에 심한 무리가 가해지거나 아니면 드라이버가 미쳤거나 둘 중의 하나임에 분명했다.
“미쳤어요? 심장이 터지겠어. 그만! 그만 세워요.”
1974년 산 치타가 후진속도의 한계치를 오버하고부터 김지선은 이미 초죽음 상태였다. 어찌나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는지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아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어쩌면 눈도 벌겋게 충혈 되어 있겠지… 이 모든 것이 불과 5분 사이였다. 하지만 천 길 낭떠러지 길을 달리는 동안의 5분이란… 심장이 멈추기엔 너무도 충분한 시간임에 분명했다.
“조금만 더 달리면 유호성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걸?”
“글쎄 스톱하라고요. 엔진이 과열된 게 보이지도 않아? 게다가 여기부터는 브로우 지역이란 말예요, 미쳤냐고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브로우(brow)란 랠리 지도를 뜻하는 페이스 노트를 작성할 때에 노면의 기복이 너무 심해코스 앞의 상황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어쨌든 지금 권도일이 달리는 지역은 노트에 표기할 수도 없을 만큼 험한 길이니 평소에도 복불복의 심정으로 선택하는 코스일 것이다. 하물며 그런 길을 후진으로 달리고 있으니…
“이게 정말 미친 것일까? 입술은 마르고 혀는 갈라지고, 눈은 충혈 되고… 천 길 낭떠러지가 지름길로 여겨지기도 하는 이 상태가 정말 미친 것일까? 지선 씨! 내가 왜 이렇게 미쳐가는 거지?”
엔진 온도측정계에 빨간 램프가 들어온 것을 확인 한 뒤에야 권도일은 급히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혼절하듯 김지선의 무릎 위로 엎어지고야 말았다. 차가 울컥 멈춰 섰고, 1974년 산 치타의 보닛 틈으로는 희뿌연 수증기가 무럭무럭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자, 이리 와요. 억세게 운도 없는 오빠!”
김지선은 몸을 돌려 앉으며 천천히 팔을 돌려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잠시 권도일과 눈이 마주치는가 싶었다. 아마도 권도일은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뚝한 그의 콧등 위로 분명히 맑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므로.
“참 끝내주더군요. 우리 도일 씨! 우리 도일 오빠.”
그녀는 잠시 전, 성난 물소처럼 뒤로 내달리던 권도일의 파이팅을 떠올렸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더니 그 말을 실천하려 했던 것일까? 남들은 공포에 질려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어쩌면 그리도 손쉽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해나갈 수 있는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사랑은 항상 이런 식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안 되지, 이런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면 안 되지…
“이젠 어떡하지요? 엔진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지선은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권도일이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누르고 있었다. 어느새 헬멧을 벗었는지 땀에 젖은 얼굴이 뽀얗게 드러났는데 젖은 머리칼 틈으로도 허연 김이 피어오르던 중이었다.
“어차피 엔진에 무리가 갔으니 제1 스테이지에서 유호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어. 오늘은 포기하자. 하지만 원통함을 주체할 수 없군.”
자동차 실내에 습기가 차오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차창 밖의 산길이 유난히 추워보였기 때문일까? 실내에는 돌연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안온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김지선은 조용히 두 손으로 권도일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권도일은 드라이빙 글러브를 벗어던지더니 맨손으로 그녀의 가슴께를 더듬기 시작했다. 잠시 부들부들 떨리는 듯 하던 그의 손이 서서히 그녀의 드라이빙 수트를 헤치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젖가슴에 서늘한 촉감이 느껴져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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