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끝까지, 죽을 때까지 (34)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알을 깨고 나오려면 부리가 상하는 고통을 참고 이겨내야만 한다. 하다못해 나방이가 되려고 해도 고치를 빠져나오는 아픔을 겪어내야만 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제 존재가치를 한 단계 높이려면 상당한 각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지금 몽펠부 산의 정상을 향해 랠리카를 몰아나가는 유호성의 각오가 꼭 그와 같았다.

“죽음을 무릅쓴 고통이란 말이 뭔지… 이제 알만해요.”

“시끄럽다. 애송아! 리어 헛돈다. 기어 2단으로 올려!”

말이 쉽지, 죽음을 무릅쓰기가 그리 쉬울까? 해발 3,500미터에 이르자 ‘쩌르릉, 쩌르릉’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요한 산 속 적막을 뚫고 폭음처럼 내뱉는 재규어 XKR의 배기음이 메아리치는 소리였다.

“고도계가 거의 수직으로 일어섰어요. 이러다가 뒤집히는 거 아닐까?”

“뒤집힌 건 자네 눈알이야. 이제 겨우 고도 23도를 넘어섰다고. 이럴 때 엑셀을 풀면 안 돼! 가차 없이 밟아!”

청춘의 피를 끓게 한다는 재규어 XKR은 앞발을 들고 벌떡 일어선 짐승처럼 포효하며 산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슬립이 일어나 바퀴가 헛돌 때마다 눈의 표면을 덮고 있던 얼음조각들이 바야흐로 산산조각 나곤 했다. 먹이를 찾아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누비던 표범의 모습도 이처럼 외로웠을까? 한쪽 옆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가 구름운하 속에 잠겨 있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망막한 설야뿐이었다.

“왜… 차가 벼랑을 구르지? 하늘이 어째서 빙빙 도는 거야?”

드디어 유호성이 고산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돌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자 전진후는 비아그라 한 알을 꺼내어 유호성의 입에 틀어넣었다. 이 순간에 남의 발기부전을 걱정해줄 까닭이야 있으려고?

“잘근잘근 씹어 삼켜라, 애송아. 비아그라가 고산병 치료에 최고란다. 어서 씹어 삼키고 저 바위 옆에 차 세워!”

유호성의 눈이 슬금슬금 감기기 시작하자 전진후는 드디어 쾌재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당당히 운전석을 넘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코-드라이버에서 당당한 드라이버로의 승격! 무엇보다도 유민 회장이 보는 앞에서 바톤 터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그는 감격하고 있었다.

‘역시 몽펠부의 벽은 높습니다. 유호성 선수는 초죽음 상태로 쓰러졌지만 랠리 완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결국 전진후가 나서기로…’

전진후는 드라이버를 교체해야만 하는 상황을 트위터로 중계방송 하는 중이었다. 팔로워가 유민 회장 혼자뿐이었으니 무전기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는 중계방송이었다. 하지만 그의 평생 물주가 되어 줄 재벌이 보아준다는 자체가 흥분되는 걸 어쩌랴. 전진후는 흥분에 들떠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었다. 아하! 그런데 이건 또 웬 날벼락인지… 몽펠부 산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탓인가? 스마트 폰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껏 트윗을 날릴 때마다 에러처리 되어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이런 된장!”

밤새 생각한 짓이 매 맞을 짓이라고… 목숨 걸고 몽펠부 산을 넘자고 계획한 것의 제 1목적인 트위터 생중계가 어긋나고야 말았으니, 이제 남은 과업은 목숨이나 제대로 보존하는 일이었다. 작년, 그러니까 2011년 1월 22일에 종료된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도 총 121대의 머신 중에서 겨우 66대 만이 완주할 수 있었다. 완주확률 겨우 50%… 둘 중의 하나는 기권하거나 사고로 결승선을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리어가 헛돌잖아, 이미 바퀴가 눈길에 반이나 빠져버렸어. 이걸 어쩌지?”

누군가가 내려서 밀어도 탈출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산악전문차량처럼 견인 쇠줄을 탑재하지도 않았으니 무조건 삽으로 바퀴를 파내어 스터드가 박힌 윈터 타이어로 갈아 끼워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유호성은 이미 눈을 허옇게 뒤집어 뜬 채로 반 기절상태였다. 기절한 놈을 깨워 종주먹을 들이대 보아야 헛수고 아니겠는가. 전진후는 할 수 없이 삽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다른 한 손엔 동영상 촬영을 위한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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