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2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7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은 작은 물건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하물며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고 여긴 권도일에게 더 이상 미련을 둘 만한 것이 남아있기나 할까?

“불안하진 않아요. 미련도 남아있지 않고요. 다만 서글플 따름이지요.”

“서글픈 감정 역시 미련이에요. 세상에 대한 미련. 그따위 잡생각에 빠져 있는 한 유호성을 벼랑 아래로 유인하기는 힘들 거예요. 자신이 확실하게 죽으려고 하지 않는 한 남을 죽일 수 없다는 말이지요.”

이왕 불 속에 들어가려면 화약을 지고 들어가라며 다그치는 격이었다. 하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랠리에서의 사고는 자칫 망설이는 순간에 현실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시속 200킬로미터에 근접한 속도로 산길을 달릴 때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는 동안 차는 벼랑으로 구르기 십상이다. 고속으로 달리다가 사고를 당한다면 아무리 운이 좋아도 1급 이상의 장애를 얻게 될 것이다.

운이 좋다는 것은… 살아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에 통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불구로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면, 확실하게 죽어버리는 것이 운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 ‘폴 그린’과 ‘매튜 해리슨’은 운이 나빴지요. 스페인의 드라이버 ‘크리스토발 게레로’ 역시 운이 나빴고요. 그들에 비하면 작년에 모터사이클로 출전했던 프랑스의 신동 ‘파스칼 테리’는 실종된 지 사흘 만에 운이 좋은 상태로 발견되었단 말이에요.”

아, 그렇군. 영국 선수 폴 그린과 매튜 해리슨은 차량전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선수였지…. 크리스토발 게레로 또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니 억세게 운이 나쁘다는 뜻이로군. 그에 비하면 파스칼 테리는 실종된 지 사흘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되었으니 운이 좋은 선수로군.

“몬테카를로 랠리 중에 몇 명이나 운이 좋았지요?”

“스물여섯? 스물일곱?”

“우리들 운은 어떨 것 같아요?”

“스물여덟이나 스물아홉 번째로 운이 좋겠지요.”

이 대답을 끝으로 김지선은 입을 다물었다. 이왕에 죽음을 예감했으니 더 이상 수다를 떨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하늘이 그렇게 뜻을 정한 것일까?”

“……”

권도일은 잠시 고개를 돌려 김지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지그시 감은 눈… 창백하게 드러난 프로필은 너무 아름다웠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초개와도 같이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유민그룹의 황태자 유호성과 잠시나마 사랑을 나누었다고 했나? 그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했던가?

“그렇게도 유호성을 죽이고 싶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물론이지요! 권도일 씨도 마찬가지 심정 아닌가요?”

“나야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은… 그렇게 쉽사리 보낼 수 없지. 문 열어요. 그리고 당장 차에서 내려!”

권도일은 1974년산 치타의 시동을 끄더니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이 메었기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는 마른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메말랐고 갈갈이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서 내리라고!”

고함이 이어지는 순간 우르릉 소리와 함께 머신 한 대가 쏜살같이 옆으로 내달렸다. 알루미늄 차체가 은빛으로 번쩍이는 차… 유호성이 모는 재규어 XKR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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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