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끝까지, 죽을 때까지(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호성과 전진후, 이른바 유민 그룹을 대표하는 호크아이 팀의 선수들이 이제 막 고통의 SS를 들어섰지만, 거성 그레이스 팀의 마크를 단 권도일, 김지선은 벌써 고통의 SS 한 복판을 달리는 중이었다.
“여자와 함께 랠리경기에 출전한 것이 생전 처음이지요?”
김지선이 물었다. 어쩌면 랠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꺼내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권도일은 한 마디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요. 더구나 레이싱 모델 출신인 미녀와 함께 랠리를 뛰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불안하세요?”
“물론!”
“내가 여자라서?”
내리막길을 달리는 중이었으므로 머신의 무게를 앞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몸을 길게 뒤로 눕히며 그녀가 물었다. 물론 대답을 들으려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권도일의 의중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지금 유호성이 모는 재규어 XKR을 효율적으로 들이 받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는 중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마른 침을 삼키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까.
“내가 여자라서 불안하냐고 묻잖아요?”
“그럴 리가 있나요? 오히려 지선 씨가 나보다 랠리 경험이 더 많은데…”
“그럼… 여자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한가요?”
“……” 김지선의 질문에 놀라 권도일은 울컥 차를 멈춰 세웠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각이었지만 산 속 깊은 곳이라서 길바닥에는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울컥 브레이킹을 한 차는 무려 반 바퀴나 회전을 한 끝에야 멈춰 설 수 있었다.
“여자를 죽이다니,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사실인 걸요, 뭘.”
하긴… 맞는 말이었다. 권도일은 이곳 고통의 SS에서 유호성의 재규어 XKR을 낭떠러지로 몰아붙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슨 수단을 써서든 복수를 해야만 할 것이란 강박! 하지만 후미에 따라붙어 유호성의 차를 들이 받는 행위만은 절대로 금해야 한다. 만약 뒤에서 들이 받았다간 사후 조사를 통해 형사책임을 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으므로. 그렇다면 뒤에서 들이받지 않고도 유호성을 벼랑 아래로 몰아붙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권 도일씨! 재규어의 주행루트를 방해하려는 생각이지요?”
“……”
“만에 하나 실수할까봐, 실수해서… 본인이 죽는 건 상관없지만 나도 덩달아 죽일까봐 불안한 거지요?”
그녀는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주행루트 방해… 산길, 비포장 그레이블에서는 후미에 따라붙는 차량이 자칫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게 된다. 앞 차의 바퀴에서 튕겨나가는 돌, 뿌옇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시야를 방해하여 주행에 치명적인 지장을 주기 때문이었다. 계속 진로를 방해하며 약을 올리다가 언뜻 추월의 빌미를 내어주면… 후미를 따라오던 차량은 순간적으로 앞차를 추월하게 되는 것이다. 시속 8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속도로, 서리가 내려앉은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더구나 뿌연 먼지를 헤치면서…
권도일은 고통의 SS 정점에서 유호성의 재규어를 기다리고 있다가 주행루트를 방해할 생각이었다. 가뜩이나 성질 급한 유호성이 라이벌을 만났으니 어찌 추월하려 들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자칫하다간 본인도 추락할 위험이 많은 방법이었기에 망설이던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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