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새(玉璽=국새)는 결재 도장이지만 왕조시대 통치의 정통성을 상징했다. 반정세력에겐 권력 찬탈의 필수품이었다. 고려 공민왕 11년 이성계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킬 때 맨 먼저 챙긴 것이 옥새, 금은동인 등 인장류였다. 친일파가 일제에 옥새를 넘기기도 했다.
진시황이 루이14세처럼 왕권신수설(受命於天:수명어천)을 새겨 처음 만든 옥새는 한(漢)의 유방을 거쳐 후한의 광무제까지 순조롭게 전달됐다. 후한 말 환관의 난 때 분실됐던 옥새는 ‘동탁 군부 정권’을 타도한 연합군 장수 손견에게 우연히 발견된다. 손견은 반납하지 않고 왕권을 노리다 같은 연합군 원술 측 장수에게 피살된다. 가까스로 옥새를 챙긴 손견의 아들 손책은 옥새를 원술에게 담보로 맡기고 군사를 얻는다. 원술은 황제가 버젓이 있는데도 옥새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방탕한 생활을 하다 훗날 위 황제가 되는 조조에게 빼앗기고 만다. 3국시대가 정립되자 촉, 오도 각기 옥새를 만들어 ‘3개 옥새 시대’가 된다. 옥새가 다시 하나 되기까지 엄청난 피를 흘려야 했다.
권력욕의 상징이다 보니 이놈 저놈 가지려 대들다 자주 분실된다. 여러 번 새로 만든 조선왕조 옥새는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왕조도 아닌데, 대한민국 건국 때 만든 1대 국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1965~66년 담당부서 바뀔 때 증발됐다고 한다. 그걸 뭐에 쓰려고 했는지….
국민이 주인인 지금 옥새의 실체인 ‘통치’라는 의미는 크지 않다. 국민의 마음에 도장을 찍는 사람이 민주국가 국새 사용자이다. 왕을 뽑는 대선이 아니다.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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