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2회> 사랑을 위한 의식 10
권도일이 북한을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났다. 60일 밤낮이 시냇물처럼 흘러가고 어느덧 기온이 가끔씩 영하로 떨어지는 11월, 그나마도 중순에 이르렀다.
신의주 백마리에서 판문점 월정리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재면 그 길이가 480㎞에 이르렀다. 하지만 수백 단위조로 나뉘어서 각자 맡은 지역을 포장하다보니 그토록 긴 도로를 새로 넓히고 포장하는 데에 두 달이면 족했던 것이다.
원래 평양골프장은 1987년 김일성 주석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여 조총련 사업가들의 투자로 지어진 골프장이다. 평양의 유수한 만경대학으로부터 불과 30㎞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교육사업 설명을 끝낸 후에 외국손님들을 모셔오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이왕이면 만경대학에서 평양골프장에 이르는 30㎞ 구간도 새로 포장해 주도록 하세요. 그런 연후에 제6사단장을 통해서 혹시 도로 명을 ‘거성로’라고 붙여줄 수 없는지 슬쩍 운을 떼어보세요.”
“잘 알겠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공사를 완수하고도 서비스까지 챙겨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자는 셈이로군요.”
“그렇지요, 일석삼조입니다. 전 세계의 여류 골프선수들이 곧 그 길을 지나갈 텐데 그 도로 중간 중간에 우리 거성그룹의 이름을 새겨놓자는 의도가 더 깊지요. LPGA 시즌이 끝난 상태에서 열리는 기이한 골프대회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취재진이 몰려올 테니 그 상황을 미리 대비하자는 것입니다.”
언젠가 사업진척에 대하여 보고를 받던 자리에서 재벌2세는 이렇게 지시한 적이 있었다. 겉으로는 친절을 베풀면서 내심으로는 실질적인 이득을 챙기자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어쨌든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일종의 서비스까지 포함된 지시내역대로 평양 골프장 리뉴얼작업도 차질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백마 월정 간 480여㎞ 도로포장을 성공리에 끝마친 거성그룹이 36홀짜리 골프장, 기껏 페어웨이 길이로 따지더라도 20㎞에도 못 미치는 골프코스 리뉴얼을 어찌 소홀히 할까. 영하의 겨울에 세계적인 프로선수들을 초빙하여 게임할 것에 대비하여 그린 바닥에 열선을 까는 새로운 방식까지 시범적으로 도입했지만 무리 없이 완수할 수 있었다.
“열선을 깔면 잔디가 겨울 내내 죽지 않습네까?”
“이렇게 하면 파랗게 잔디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서 문제지요.”
“고렇지요? 정착지에만 까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갔지요?”
그들 말로 정착지란 그린을 일컫는다. 물론 열선을 펼치는 공사비는 그린공사만으로도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하지만 평양 골프장 관계자들은 열선을 페어웨이 전역에 깔아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니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하긴 나무 채, 쇠 채로 땅바닥을 후려치는 곳에는 열선을 잘못 깔았다간 감전돼서 지레 죽갔지요? 정착지에서야 빳다로 스리슬쩍 카부에 밀어 넣으면 되니까….”
이런 저런 사연과 함께 재벌2세가 지시한 모든 작업이 끝난 것은 11월 마지막 주, 어느새 아침나절마다 그린 위에 하얗게 성에가 끼던 때… 그나마 가을 분위기를 풍기던 때마저도 그리워지는 혹한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회장님, 드디어 폴라 크리머 선수가 첫 번째로 북한에 입국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거성그룹의 비서실장이 인터넷 뉴스를 보다 말고 즉시 재벌2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북한의 골프대회와 연관된 일이라면 지체하지 말고 즉각 전화로 알리라는 재벌2세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왔군요. 강유리는 언제 북으로 가나요?”
재벌2세가 권도일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