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4회> 사랑을 위한 의식 2
미꾸라지를 개구리가 물고, 개구리를 뱀이 삼키고… 그 뱀을 낚아채야 개구리와 미꾸라지도 함께 얻을 수 있는 법. 권도일의 예견은 날카로웠다. 그는 강유리 선수를 끌어들이기만 하면 유호성은 물론, 청춘의 피를 끓게 한다는 그의 랠리카 재규어 XKR도 더불어 낚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침 신희영의 상태가 풍비박산에 이르기 직전 상태였으므로 강유리 선수를 끌어들이기에는 너무도 적절한 호기였다. 돈 떨어지면 신발도 떨어진다고… 신희영은 유민그룹으로부터 쫓겨나자 당장 끼닛거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빈대붙어 살아 온 강유리의 꼴이 오죽할까.
“세계일주 해외 원정 훈련을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하와이, 프랑스를 거쳐서 남아공에까지 다녀오셨더군요. 당분간 국내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시는 모양이지요?”
“아, 네… 연락을 주신 거성그룹의….”
권도일은 재벌 2세의 밀사가 돼 곧바로 강유리를 찾아갔다. 그녀는 권도일을 생소하게 여겼지만 권도일은 그 언젠가… 베트남 내해에 머물던 크루즈선에서부터 그녀를 보아 익히 알고 있었다. 짧은 치마에 빨간 힐을 신은 도발적인 차림으로 뱃전에서 뭇 남자를 홀리던 미모의 여인. 은빛 웨지로 골프공을 반짝 띄워 30미터 전방에 놓인 잠자리채 안에 어김없이 집어넣던 골프의 달인.
“스포츠 마케팅 분야를 책임지는 전무입니다.”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젊은 직장인들이 빼곡히 들어찬 커피숍이었다. 강유리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물었지만 권도일은 빙긋 웃기만 할 뿐, 이름을 대지 않았다. 단지 스포츠 마케팅을 책임지는 전무라고 했을 뿐이었다.
“강유리 선수라면 곧 LPGA 경기에 존재를 드러낼 것이라 믿는 팬이라고만 여겨주십시오.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날부터 강 선수를 모시고 싶었습니다.”
“아, 네….”
강유리는 더 이상 질문할 수도,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나 다를 바 없었다. 명령권자로서의 아우라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거성그룹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담당하는 전무의 위용에 그녀는 내심 복종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심 ‘이제야말로 배를 갈아탈 때’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거성그룹에서는 강유리 선수를 VIP로 모시고자 합니다. 우선 세계 각지에 팬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북한에서 주최하는 골프대회에 강 선수를 출전시킬 예정입니다. 북한에서 열리는 골프대회라면 단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엄연히 유민그룹과 선수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거든요? 그 계약을 파기하려면… 제법 많은 배상을 해야 할 텐데요?”
거짓말! 그녀는 손발이 바짝 오그라들 정도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한 허세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줄을 대고 있는 신희영이 언제 재벌 축에나 들었던가? 예정대로 유민 회장과 이혼하게 될 경우 작은 계열사 하나쯤 물려받을 것이란 기대감 외에 다른 실체는 없지 않았던가.
“까짓 거. 수천억을 배상한다 해도 우리 거성그룹의 의지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5위 안에 드는 자동차 회사로서의 비전을 걸고 강유리 선수를 모시려는 것이지요. 그 정도 문제라면 당장에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 고마워라. 하지만 또 하나… 타이거 우즈와 맺은 계약은 어쩌지요? 비록 구두계약이긴 하지만 신문 방송에 쫘악 퍼졌던 사건인데….”
또 거짓말! 그녀는 내친김에 몸값을 올리기 위해 안달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적어도 거성그룹이라면 그녀의 실체를 잘 알고 있을 법도 한데… 권 전무는 그녀의 요구 조건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