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0회> 바람 부는 길 48
우리네 겨울반찬 중에서 아마도 으뜸인 것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법성포마을에서 잡히고 건조된 영광굴비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바닷바람을 가득 품은 햇살에 짭조롬하게 말려서 녹차 물에 만 찬밥과 함께 먹는 그 맛은… 살찐 귀신이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했을 것이다.
우리네가 어렸을 때만 해도 굴비가 지금처럼 금값은 아니었다. 따라서 아버지가 멀리 출장이라도 떠나시는 날엔 집 비우는 날짜만큼 굴비를 사와서 광에 걸어놓곤 했다. 그걸 하루에 한 마리씩 구워먹으며 출장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는 1960년대의 전설이 무시로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값이 싸다고 한들 끼니마다 구워먹을 만큼 녹록지는 않았을 터, 식구가 몇 명이건 간에 하루에 한 마리씩 구워먹는 것도 호사로 여겼다. 온 식구가 모여 앉은 저녁밥상에 노릇노릇하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굴비 한 마리가 오르면… 맙소사, 사방에서 형제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 무성할 뿐이었다. 서로서로 눈치만 볼 뿐,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찬란한 몸체에 쇠젓가락을 들이대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땐 그랬다. 밥상 위에 점잖게 누워 있는 굴비와 허기진 우리네가 눈을 마주치고 멀뚱멀뚱 망설이길 한동안,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기도하듯 조심스럽게 그 찬란한 살점을 뜯어 밥숟가락에 올리곤 했다는 말이다.
상황도 다르고 목적도 달랐지만 생선 눈동자와 눈을 마주하며 철학적 상상에 빠져들기는 김지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가 멈추어 서자 그녀는 황태덕장으로 무작정 달려왔던 것인데….
“미치겠어요. 얘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요.”
“얘들이라니? 누구 말이야?”
“얘네들! 황태!”
재킷을 벗으려던 그녀는 줄줄이 엮인 황태의 위용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하긴 그들이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덕장에는… 수백, 수천 마리, 아니 수만 마리의 명태가 자기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명태라 해야 할지 황태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마다 멀거니 그녀만을 쳐다보고 있음엔 분명했다. 오죽하면 ‘동태눈깔’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주변에 한가득! 그 탁하고 멍청한 눈깔이 수만, 수십만 개였으니 어찌 놀라지 않았을까.
“난 또 뭐라고… 동태눈깔 때문에 그렇게 놀란 거야?”
“눈깔 수십만 개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니까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혹시 황태덕장엘 가본 적이 있으신지? 명태를 줄줄이 꿰어 커튼처럼 드리운 큰 방갈로를 떠올리면 그 느낌이 비슷할 것이다. 강원도 할머니들의 키 높이에 맞추었으니 꼭대기가 높을 리 만무했다. 꼭대기로부터 커튼처럼 줄줄이 매달려 늘어진 명태! 명태의 길이가 고작해야 50cm 안팎이었지만 2층으로 되어 있어서 상체와 하체를 어느 정도 가릴 수는 있었다.
“어서 이것 좀 벗어봐. 나도 급하다고.”
“아이, 얘들이 보잖아요.”
“글쎄 죽은 생선이 뭘 본다고 그래?”
전진후는 그녀의 재킷, 그리고 티셔츠를 훌렁 벗겨내었다. 황태덕장에 숨어들긴 했지만 백주대낮 고속도로변이었으므로 마음은 불안했다. 줄줄이 꿰어 늘어진 명태의 길이는 어쩌자고 이리도 짧은지… 위로는 그녀의 젖가슴을 겨우 가릴 정도였다. 그뿐인가? 똑바로 서 있자니 머리가 덕장 위로 삐져나왔고, 바닥에 쪼그려 앉자니 아랫도리가 허공으로 드러났다.
황태덕장은… 구조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지만, 엉거주춤한 상태라 하더라도 마주 서서 상열지사를 벌일 수는 있는… 그런 환상의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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