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회> 바람 부는 길 31

초저녁, 아직 길바닥에 어둠이 들어차기도 전에 유민 회장은 회사를 나섰다. 미리 계획한 대로 그녀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따지고 보면 양은혜와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다. 하지만 이미 진실게임을 통과했다고 여기니 그녀의 눈빛에서는 그 어떤 내숭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 막연하게나마 신비로움이나 해맑은 느낌에 젖어들곤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숭이 사라졌다는 것은 육체적 욕망을 감추지 않겠노라고 선언한 것과도 같았다.

“자, 갑시다. 당신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어요.”

“싫어요. 이제 겨우 인사를 텄을 뿐인데 어떻게 선물을 받아요?”

“괜찮아요. 처음이면 어떻고 백번 만났으면 어때요?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게지요. 사람 만나면서 체면차리고 절차를 따지는 복잡한 과정은 딱 질색입니다. 시계나 반지를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시계를 고르신다면 까르띠에 혹은 롤렉스 이상, 반지를 택하신다면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으로 말입니다.”

“왜 저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시려는 거예요?”

“그야… 함께 자고 싶어서 그런 거지요. 남자란 다 그렇습니다.”

유민 회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질러 놓고 나니 별것도 아니었다. 무려 800억원을 챙길 수 있는 여자 앞에서 욕망을 마음속 깊이 감추고 음습하게 접근하며 치근덕대는 것이 오히려 가증스러울 것이라 여겨졌다.

“좋아요.”

용감하게 대시하면 통하는 것인가. 양은혜가 눈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순순히 반응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계가 좋아요? 아니면 반지가 좋아요?”

“반지.”

마치 흥정이라도 하듯 이렇게 주고받은 뒤에 그들은 곧장 백화점 귀금속부로 찾아 들어갔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명품 브랜드 제품들이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그곳…카레라 이 카레라, 아틀란티스 컬렉션, 스테판 웹스터 등의 반지에는 작은 보석들이 깨알처럼 들러붙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마제리트와 지오를랑 반지에는 엄지손톱만큼이나 한 보석이 박힌 채 찬연히 광채를 뿜어내곤 했다.

“레이스나 아르누보 스타일의 장식은 싫어요. 블랙 다이아든 화이트 다이아든 링의 색과 단순하게 대비되는 반지로 하나 사주세요.”

“그럽시다.”

그녀는 주저 없이 1캐럿 반지를 골랐고 유민 회장은 찍소리 못하고 그 값을 지불했다. 그런 후에… 당분간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려 2천8백만원이라니… 머릿속에 지푸라기가 그득 담긴 것처럼 부석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청구서 폭탄에 맞아 정신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쩌랴, 이제부터는 그녀가 가자는 대로 비틀비틀! 비루먹은 개처럼 끌려 다닐 수밖에.

“아니, 무슨 짓이야! 뭐 하자는 거요?”

그렇게 얼마를 따라 걸었을까? 유민 회장은 정신이 번쩍 들고야 말았다. 이미 그들은 한강다리 한가운데를 걷던 중이었는데, 그녀가 잠시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좀 전에 구입한 2천8백만원짜리 반지를 강물로 버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로 살짝 반지를 잡아서는 난간 밖으로 팔을 길게 뻗은 채 말했다.

“나를 진정으로 원하세요? 크게 대답해 보세요. 만약 진정으로 나를 원한다면 이 반지를 강물 속으로 던져 버릴래요. 진정이 아니라면 이 반지는 도로 가져가세요.”

이건 무슨 날벼락인가…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이나 장난은 아닌 것 같았다. 진정으로 원하면 반지를 버려…? 자칫하다간 2천8백만원이 강물로 쓸려 들어갈 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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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