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을 코앞에 둔 정치권은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재벌 개혁만 하면 다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적 분배 구조에 대해 사회 구석구석 돋보기를 들이대고, 경제권력의 지원을 받아왔던 정치권이 그들의 방종을 여태껏 방관했던 점을 반성하는 모습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국민 분노가 극에 달하자 이제와서 말만 요란하게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특히 항간의 ▷2007년 불법 경선자금, 대선자금 의혹 ▷대선,총선 이후의 당선축하금 수수의혹 ▷잦은 금융권 전산시스템이 검은돈 흐름의 은폐기도와 관련돼 있다는 소문 등에 대해 정치권 스스로 알아보고 정화하려는 노력과 의지는 전무하다. 이때문에 재벌개혁 움직임이 자칫 ‘정치 보다 약한, 애먼 경제 권력 때리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의 성찬은 재탕 투성이이거나, 늘 강조해 놓고도 실행은 하지 않던 것들이다. 새누리당은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부당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및 중소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을 총선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민주화’라는 문구를 정강정책에 추가했으며, 노무현 정권 때 완성하지 못한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도 추진중이다. 국민이 전주(錢主)인 국민연금 확보 지분에 대한 의결권 부여도 검토중이다.

민주통합당 역시 재벌개혁(경제민주화), 부자증세, 복지확대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자회사로부터 받는 주식배당금에 과세하는 재벌세 도입,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 재벌규제를 강화하고 일괄 관리하는 기업집단법 제정 등을 추진중이다.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금지는 새누리당과 겹친다.

통합진보당은 아예 10대 대규모기업집단의 계열사 처분 즉 ‘재벌 해체’를 천명했다. 진보당은 최근 10대 재벌을 겨냥한 ‘맞춤형 재벌개혁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금융 계열사를 아예 분리하고, 대규모기업집단(재벌)내 계열사간 출자총액한도를 25%로 강화하며, 사업 연관성 없는 계열사 출자금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복안을 밝혔다. 새누리당,민주당처럼 순환출자 금지도 못박았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엔 “잘 하나 보자”라는 냉소적 반응이 더 많다. 정치권력의 연명은 경제권력의 지원사격없이 불가능했던 풍토에서 역대 재벌개혁은 늘 용두사미였다.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 세풍(국세청을 활용한 정치자금 모금)사건, 2003년 여야 불법대선자금 수사 등을 거치면서, 국민들 사이에선 정치-경제 권력 간 유착 때문에 ‘경제 민주화’ 추진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냉소’가 확산됐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도입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국내 산업 보호차원에서 폐지됐다가 2001년 4월 다시 부활됐다. 출자한도를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했고, 투명성 확보, 괴리도(그룹 지배율과 지분율 간의 차이) 감소를 위한 지주회사제도 등을 도입해 재벌에 권고했다. 하지만 부당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및 특수관계인 주식 저가 매도, 3세가 주도하는 신규계열사의 지배력 강화 등을 통한 변칙 상속, 순환 출자는 그 이후에도 근절되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권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금융의 산업지배를 약화시키기 위한 금산분리를 추진했지만, 계열사 출자한도를 40%로,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기준도 자본금 총액 2조원에서 10조원으로 완화해 김영삼 정부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한 술 더 떠, 각종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했다. 정부지원과 국민 소비를 통해 재벌이 많이 벌면, 그렇게 커진 ‘국부(國富)’가 서민까지 골고루 퍼지는 ‘낙수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현 정권 권력자들은 앵무새처럼 말했지만, 분배구조의 왜곡, 일자리 창출 부진, 양극화 심화 등의 결과만 낳고 말았다.

각 정당이 양극화의 원흉으로 재벌을 지목했지만, 전체적으로 ‘경제 민주화’ 복안은 허점 투성이이다. 금융자본의 ‘제멋대로’ 예대마진 및 수수료 부과 등에 의한 초과수익과 높은 문턱에 대해서는 별로 지적하지 않았다. 최근 추진되는 파생상품 거래때 세금 물리는 것은 ‘개혁’의 범주에 넣기도 민망스럽다.

정치권은 또 ‘생산성 둔화’, ‘기업가 정신 상실’, ‘투자의지 위축’ 등 재벌들의 저항 논리과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는 이유있는 항변을 이겨낼 만한 정책 대안이나 반박논리도 내놓지 않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경제민주화 공약이 과연 실효성 있는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 과도한 욕심은 오히려 개혁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경제계 일각의 비자금 저수지는 정치자금의 주된 수입원이다. 말 뿐인 개혁으로 정치권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도 제기된다. 항간에 제기되고 있는 2007~2008년 불법 경선자금, 불법 대선자금, 당선축하금, 정파 별 총선 지원금 등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돈 많은 사람들의 자금을 받아 정치활동에 쓰던 정치권이 최근 의혹에 대해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거나, 현재적 비리 의혹 청산 작업에 대한 강력한 다짐을 하는 모습이 빠져 있는 것이다. 현 권력층과 정치권의 재벌개혁 의지를 가늠해 볼 전제조건들인데도 말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3000달러가 되지 못하는 국민 75%가 양극화에 시름하면서 분노를 키워가고 있는 가운데, 현재적 정경유착의혹의 진상규명의지, 철저한 정치권의 자성, ‘경제민주화’에 대한 현실적 안목과 실행 의지 등은 앞으로 총선, 대선 두차례의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함영훈 선임기자> /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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