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40대가 취업난, 스펙경쟁, 어학연수 등 고난의 길로 접어든 1990년대 들어 배낭족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1990년에는 유행어가 봇물처럼 나왔다. 최고를 뜻하는 CF카피 ‘따봉’, 코메디프로그램에서 등장한 ‘뻥이야’, ‘영양가 없는 소리’, ‘됐네 이사람아’, 그리고 변진섭이 부른 ‘희망사항’ 등이 쏟아졌다.

1992년 대선당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조장할 때 나왔던 ‘우리가 남이가’ 역시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주면서 시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됐다.

1992년 김영삼 후보는 짙은 경상도 음색으로 ‘갱제를 살리자’고 강조했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이건희 삼성회장은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보자’며 기업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1993년 ‘오렌지족’, ‘야타족’이 등장해 바람둥이의 상징인 ‘롱다리’가 인기를 모았다. 30대까지 차를 끌고 로데오거리나 홍대입구에 출현해 처녀들을 꼬신다는 ‘어여타’족도 등장했으며, 롱다리의 반대발로 ‘장롱다리’가 회자되기도 했다.

민정-민주-공화계 3당 합당 이후 김영삼의 민주계가 득세하면서 민정계에 대한 축출압박이 가속화되던 와중에 1994년 민정계의 박준규 국회의장이 ‘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삶는다)이라는 말을 남긴채 정치권을 떠났다.

민간항공기 추락,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김영삼은 “우째 이런일이...”라는 한탄을 내뱉었다.

믿었던 문민정부의 성적표가 허망해지면서 1990년대 중반에는 ‘썰렁’개그, 최불암의 허무개그 등이 새로운 유머의 장르로 개척되면서 숱한 패러디를 양산했다. 1991년 봉숭아학당의 맹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전국인이 그 흉내를 한번쯤은 내보는 바보가 되기도 했다. 정치권의 헛똑똑이 바보 보다, 진짜 바보가 더욱 사랑스러웠던 모양이다.

에로동영상 대중화의 시작을 알린 ‘젖소부인 바람났네’라는 영화가 1996년 등장하자 ‘만두부인 속보이네’, ‘꽈배기부인 몸풀렸네’, ‘연필부인 흑심품었네’ 등 유사 비디오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 사이의 패러디가 빵 터진 것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명작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극장 상영을 마치면 ‘은행나무 침대방’이 에로물로 등장하는 식의 ‘유사품 동영상 시리즈 출시’붐이 일기도 했다.

IMF구제금융기가 시작된 1998년에는 ‘방 빼’, ‘책상 빼’라는 주인집아저씨와 사장님의 말이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방 빼서 술 퍼먹자’라는 말은 농담이라도 기분이 나빴다.

실직과 관련된 사오정(사십대와 오십대는 정년퇴임할 나이이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은 백수다), 삼팔선(38세가 되면 퇴출 걱정), 오륙도(50-60대까지 회사다니면 도둑놈), 조기(조기퇴직), 명태(명예퇴직), 황태(황당퇴직), 알밴명태(퇴직금 두둑한 명퇴자), 생태(회사의 퇴직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한직으로 밀려나서도 끝까지 버티는 사람) 등도 우울한 유행어였다. PC통신이 활발히 보급된 1990년대 중반에는 최초의 통신용 축약언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녀셔여’(안녕하세요), ‘어솨여’(어서오세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달픈 와중에도 가수 이정현 히트곡 ‘바꿔’는 1999년 최고의 유행어로 자리매김했고, CF에 등장한 ‘내꿈 꿔’와 이에 대한 최민수 버전 “잘 자라 니 꿈은 내가 꾼다”라는 말,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ㅋㅋㅋ’ 등의 명랑 언어는 민초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줬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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