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12 쿠데타를 거쳐 1980년에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의 부정축재자 처단, 기존 정치인 대다수의 정치활동 금지조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에는 남김이 없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공수부대 ‘화려한휴가’ 진압작전의 발포명령자로 추정되는 자의 “싹 쓸어버려!”라는 발언은 ‘싹쓸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광주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싹쓸이’는 메뚜기떼가 싹 훑고 지나간 휑한 논을 바라보는 심정 처럼 냉소적인 어휘로 국민들사이에 쓰여졌다.

좋은패를 멋대로 가져가는 ‘전두환식 고스톱’이 나올 정도로 ‘오야(주인)맘대로’라는 말도 신군부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시민들사이에 널리 회자됐다.

1983년 초 MBC 드라마 거부실록 등장한 “민나 도로보데쓰(모두 도둑)”라는 일본말도 시민들사이에 크게 회자됐다.무역상으로서 독립운동과 청소년교육으로 명망을 떨친 백산 안희제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당시 5공 신군부세력의 ‘도적질’(5공청산 및 역사바로세우기 과정에서 비자금 뇌물 이권개입 혐의 48명 구속, 내란 혐의 수십명 구속, 수천억~수조원 뇌물착복, 이권개입 등이 드러났다)과 맞물려 큰 공감을 얻었다.

9시 ‘땡’한면 ‘전’두환의 얼굴 부터 나온다는 땡전뉴스가 회자되었다. ‘정권의 개’가 된 방송사가 두고두고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요즘도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앞으로 방송사들이 어떻게 환골탈태를 해 나갈지 주목된다. 현재로선 ‘권력의 개와 인간의 중간쯤인 것 같다’는 평가가 대세이다. 1983년 IPU(국제의원연맹)총회 등 국제행사 의식해 4대문 안에서 보신탕 금지조치가 내려지자 삼계탕의 불티나게 팔렸다. 이때 나온말이 “개 대신 닭”이다. ‘꿩대신 닭’을 대체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유층에서 감행하던 ‘몰래바이트’는 서민들의 박탈감을 키웠다. 이런 와중에 신군부에 대한 저항의식은 ‘민중’이라는 단어를 널리 확산시켰다. 민중민주주의, 민중과지식인 등은 1980년대 초반 캠퍼스를 장악했다.

1984년 학원자율화조치로 캠퍼스내 경찰차가 철수하자 예상외의 상황에 “웬일이니?”라는 말과, 코메디프로에서 김형곤이 내뱉던 “잘 돼야할텐데..“라는 말이 일상용어처럼 퍼져나갔다.

1980년대엔 매년 73만~75만명으로 대입 응시생이 사상최고를 경신하면서 교훈처럼 나온말 ‘3당4락(3시간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 뭔가 깔끔하지 못할 때 쓰는 ‘찝찝하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육사동기인 전두환의 실정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호소했던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 등이 유행어 반열에 올랐다. 노태우가 믿어달라고 호소하기 직전 시위대학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해 경찰청(당시 치안본부)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면서 축소은폐 발표를 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탁 ~하니 ~했다”는 공권력을 비웃는 유행어가 됐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 와중에서 내뱉은 ’유전무죄, 유전무죄‘는 세기의 명언으로 자리잡았다. 그해 장세동은 5공비리혐의로 청문회에 올라 “내가 입을 열면 모두 다친다”고 말해 국민 너도나도 이를 패러디하기에 바빴다.

’개미군단‘이라는 증시용어는 1989년 4월1일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 돌파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주식 대중화의 상징이었다. 전두환이 잘 해서가 아니라, 저금리 · 저환율 · 저유가의 3저를 바탕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던것이 증시 활성화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개미군단은 ‘막대한 수의 약자’라는 의미로 일상에 자주 활용됐다.

고 최진실을 일약 스타반열에 올린 CF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 고두심의 ‘잘났어 정말‘(KBS2 TV 드라마 사랑의굴레)은 남성을 쥐락펴락하는 여풍당당의 서막이었다.

1989년 4월1일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 돌파...개미군단.,.1980년대 증시의 특징은 본격적인 주식의 대중화이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