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건국 무렵은 나라를 반으로 나눈 외세에 대한 비판과 정치과잉의 시기였다.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말자’라는 말은 저자거리 아이들의 속요가 될 정도로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이는 60여년 패러디 되면서 최근 “영일대군에 속지말고 은평대군 믿지마라”라는 비(非) 친이계 정치권들의 합창으로 발전됐다.
건국직후엔 시민들 사이에서도 맘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일본문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이면 ‘친일파’, 민족주의적 색채가 조금만 있으면 ‘빨갱이’, 매부리코이거나 이승만식 미국합리주의를 칭송하면 ‘코쟁이’로 불렀다.
갑자기 새로운 여자를 만나거나, 바람기를 보이면 ‘벼락첩이냐’라고 말했다. 벼락첩은 본국에 처자식이 있는 일본인이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여성과 새장가를 갔다가 해방후 본국으로 도주하고 그때 홀로된 여인들을 일부 기득권층이 첩으로 삼을 경우를 말한다.
이념과잉시대 좌우가 극한 분열상을 보이자 이승만대통령이 내뱉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널리 회자됐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1950년 6.25 전쟁당시 남몰래 서울을 빠져나간 뒤 온 국민을 상대로 자신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서울 사수’ 방송을 내보내 망신을 당했다.
6.25전쟁이 끝나자 ‘양공주’, ‘롱타임’, ‘숏타임’ 등 미군기지를 둘러싼 얘기들이 자주권을 잃은 국민의 한탄처럼 흘러다녔다. 집안을 먹여살리려 공장에 다니던 소녀가장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도 이같은 사회기류에 희생양이 됐다. 사실 인천의 성냥공장은 1917년 인천 동구 금곡동 지역 대지 2천여평에 세워진 것으로, 국내 성냥 소비량의 2/3가량 보급했다. 500여명의 직공들은 돈을 모아 집안살림에 보태거나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유황냄새에 찌든 공장 안에서 성냥개비와 씨름하며 청춘을 보냈다. 구로공단 수출역군의 선배들이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한데, 극소수 부유층의 문란한 행태는 여러 개의 유행어를 양산했다. 1955년 한국판 카사노바 댄스교사 박인수가 부유층 등 수십명 여성 농락한뒤 재판정에서 “대부분 순순히 몸을 제공했고, 아다라시는 미용사 한명 뿐”이라고 발언하면서 ‘아다라시(처녀)’가 인구에 회자됐고, 이듬해 영화 ‘자유부인’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귀부인들의 꽃미남 미팅, 또는 고관대작의 젊은여성 만남을 주선하던 ‘마담뚜’라는 신조어는 필부필부의 맞선이나 대학가 소개팅 주선자에게도 붙여였다.
1956년 대통령선거때 신익히-장면 정부통령 입후보자가 이승만 정권에 도전하면서 내세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서민과 지식인들 사이에 시대정신으로 등장했고, ‘구악’이라 지탄받던 이승만 진영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로 응수했다. ‘갈아보자’ vs. ‘구관명관’은 서민들의 일상사를 둘러싼 논쟁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1957년 대통령 이들을 사칭하면서 각급기관장들을 농락했던 사기꾼 강병성의 법정진술은 ‘사바사바’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일약 유행어 반열에 올렸다. 그는 “내가 ‘아버님(이승만)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고 했더니 온갖 아첨을 하더라. 자유당 정권의 부패상을 시험해 보는 것도 내 범행 동기의 하나였다.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사바사바’해서 할수 있는게 오늘의 세태가 아니냐”고 말해, 죄를 짓고도 박수를 받았다.
‘아부정치’에 대한 풍자도 유행어가됐다. 영화배우 유지태의 할아버지인 유옥우 의원은 1956년 국회발언을 통해 “이승만대통령이 광나루에서 특별선박을 내어 낚시질을 할 때 방귀를 뀌자,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익흥 내무장관인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아부질 잘하는 그런사람이 대통령을 보필을 하고 장관노릇을 한다고 하면 대한민국 명의가 서겠느냐”고 꼬집었다. 유 전 장관은 10년뒤 방귀사건을 부인했지만, 국회속기록엔 아직 남아있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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