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세·근세 유행어는
중세~근세에도 유행어는 있었지만, 정확한 문장이나 단어를 고증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기술에 관급 문헌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유행어를 담을 만한 민초의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유행어의 배경에는 평양감사 자리가 그만큼 ‘물 좋은’ 자리라는 뜻이 숨어있다. 평양은 가장 활발한 대외무역을 펼치던 의주ㆍ평양 상인을 통제하던 곳으로 숱한 뇌물을 챙길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이 쓰는 ‘얼레리 꼴레리’는 조선후기 세도정치 무렵에 생겨난 유행어다. 각종 세도가의 부패로 인해 세제가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어린 나이에 벼슬길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얼레리는 ‘어린 나리’를 뜻한다. 철없는 벼슬아치에게 얼레리라고 놀렸고, 꼴레리는 박자를 맞추기 위해 의미없이 붙인 말이다.
조선후기에는 개혁개방이 시대정신이었다. 1890년대 최대 유행어는 개화꾼, 얼개화꾼, 개화주머니 등 ‘개화~’를 접두어로 하는 말이 많았다. 복주머니처럼 차고 다니다, 바지 일체형으로 붙은 주머니가 개화주머니였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 줄임말로 ‘개주머니’라고 부른다. 아울러 병인ㆍ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양~’을 접두어로 쓴 말도 많았다. 양말, 양단, 양옥 등이 이때 나왔다.
몽고족에 복속당한 고려말엔 서글픈 유행어가 있었다. 정부가 원나라로 여인을 보내놓고 갖은 고생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환향’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은 아직도 파렴치한 행위로 지탄받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은 속어를 기피했기 때문에 주로 하층민이 사용했고 그들의 유행어 중에는 ‘성(性)’적인 것이 많았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엿 먹어라’에 나오는 ‘엿’은 음식이 아니라 여인의 신체 부위를 뜻한다. 특히 편모슬하에서 자란아이를 비하하는 호래자식은 짐승의 성행위를 묘사한 데서 유래된 말로 절대 써서는 안된다.
일제시대엔 1920년대 지식인 여성의 당당함과 세련된 패션, 사교적 마인드를 갖춘 ‘신여성’이라는 용어가 크게 회자됐다. 신식교육을 받은 남성을 지칭하는 ‘인테리’ ‘하이카라’는 서민 사이에선 멋을 조금만 내도 붙여주었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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