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8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33
발랑스를 출발해서 대략 100㎞쯤이나 달렸을까? 길이 좁아지고 경사가 급격히 심해진 것으로 보아 그랑베이몽 산의 8부 능선쯤을 관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산은 정상이 해발 2,346m에 달하는 고산이었다. 산세로 보나 수목들이 나지막이 자라난 형상으로 보나 마치 백두산자락을 치솟고 있는 기분이었다.
“백두산 정상이 2,744m지요? 그랑베이몽이 백두산이라면 지금 우리가 달리는 곳은 개마고원쯤 되겠네요.”
유호성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팀의 권도일과 한바탕 치킨게임을 벌이고 난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입을 연 셈이었다. 하지만 전진후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각을 다투는 랠리경기에서 코-드라이버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있다니… 아무리 실전경험에 능한 백전노장이라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높이를 실감할 수 없단 말입니다. 눈앞으로 구릉이 말떼처럼 늘어서 있어요. 꼭 말 타고 달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랬다. 어느새 구름보다도 높이 올라왔는지… 구름을 뚫고나온 산등성이들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 산등성이들은 저마다 명암을 달리하여 멀리는 검은색으로부터 가까이는 군청색, 아주 근접해서는 눈발이 성성한 진회색으로 둥둥 떠다니곤 했다.
“지금 우리가 제 코스로 달리는 거 맞나요?”
“운전이나 열심히 하세요. 이 애송이 양반아. 옆에서 떠드는 내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면 해발 2100m야. 알겠어?”
“아, 그렇군요. 선배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작게 들리네요. 더 높이 올라가면 어떻게 되지요?”
“어지럽기 시작하고, 신 침이 고이면 해발 2700m!”
“그다음엔?”
“자네 입으로 똥물이 쏟나져 나오면 해발 3000m! 알았으면 잔말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세요, 애송이!”
사실 이곳이 분기점이었다. 지금 전진후는 지그시 눈을 감고 어느 쪽 길을 택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방향을 좌로 틀면 몽펠부 산을 정점으로 하는 펠부 고원을 가로질러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려 네 시간이나 단축할 수 있지만 해발 4103미터에 이르는 몽펠부 산의 눈길을 관통해야만 한다. 눈길을 헤쳐 가는 것도 문제지만 어쩌면 애송이 선수 유호성은 고산증세로 인해 토하거나 오줌을 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코피를 흘리며 아예 운전석 뒷자리에 누워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핸들을 우로 돌려 구릉이 낮은 드롬 지역을 통과한다면 비록 꼴찌를 할망정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플로방스 지역으로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에그강 상류를 가로질러야 하지만 산악지방의 추운 바람에 그 강 표면은 얼어있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애송이 유호성 선수도 컨디션을 제대로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드라이빙을 이어갈 수 있겠지. 자, 이제 어떻게 할까… 화투를 길게 치려면 우로 돌아가야 하고, 대번에 승부를 내려면 좌로 돌아야만 할 것이다.
“자네 어드벤처 레이스 좋아하나?”
“어드벤처? 좋지요. 영화를 봐도 그런 영화가 재미있잖아요? 미션 임파서블이나 레이더스, 007….”
“좋아, 그럼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구경하는 거야!”
유호성은 겁도 없이 전진후가 제시한 펠부 고원 진입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누구던가? 성취하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든다고 했던 선수는… 그는 어금니를 꽉 다문 채 기어를 저단으로 옮기고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이왕 선수로 나섰으니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들 근성 아니겠는가.
하지만 전진후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조만간 흥미롭게 전개될 다큐멘터리 촬영을 예견하며 조심스레 카메라 렌즈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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