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7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12

유호성의 코-드라이버인 전진후가 내비게이터로서의 역할은 애초부터 포기한 채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만 골몰하고 있었으니 재규어 XKR은 어찌 보면 영화소품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유호성 역시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라이벌인 1974년산 치타가 45도에 이르는 벼랑길을 곤두박질쳐 내려오는 상황을 알아차릴 재간이 없었다.

“어랍쇼? 저 똥차가 언제 우릴 앞질렀지? 저거 치타 맞지요?”

“그렇군, 불에 구워지다 만 꼴이 치타가 분명하군.”

“거 보십쇼, 영화 그만 찍고 긴장 좀 합시다. 저런 고물 차에도 추월을 당하다니 망신살이 뻗치겠습니다.”

유호성이 짜증을 부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4,200cc에 달하는 슈퍼차저 엔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청춘의 피를 끓게 하는 재규어 XKR의 본때를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역력히 드러났던 것이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전진후도 조수석에 등을 밀착시킨 채 사지에 힘을 주어 무게를 분산시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차는 내리받이로 달리고 있었지만 서스펜션이 착 가라앉고 리어에 힘이 담기는 느낌이었다.

한편, 가까스로 재규어를 앞지른 권도일은 간혹 유호성이 빈틈을 노려 치고 들어오려 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길을 막아서는… 이른바 진로 방해공작을 펴기 시작했다. 백미러 가득 유호성의 머신이 들어오면 급히 힐앤 토!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재빨리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하는 수법으로 상대방의 신경을 거슬리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저 인간이 우릴 놀리고 있어요. 시속 30킬로미터도 안 되는 저속으로 기다가 갑자기 내리 쏘곤 해요. 너 이놈, 어디 두고 보자.”

비포장 그레이블, 더구나 차량 한 대만이 겨우 달릴 수 있는 외길에서는 후미 탈출이 필수사항이었다. 느리게 기던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앞차 후미에서 튀어 오르는 돌이 유리창을 때리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따라서 유호성은 권도일의 앞으로 껴들기 위해 차로를 이탈하는 모험도 서슴지 않았다.

“드디어 유호성이 이성을 잃기 시작했어. 조금만 더 약을 올리면 제 발로 저승길을 향해 달리겠군.”

“맞아요. 저 정도면 발작수준이에요. 이제 때가 된 것 같군요. 치킨게임 할 장소를 물색해 보세요. 유호성을 저승으로 보내든지 혹은 같이 죽든지… 결과는 하늘이 알아서 선택해주겠지요.”

코-드라이버 김지선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내비게이터로서의 직분을 발휘하자면 이런 순간일수록 냉정하게 정신을 가다듬고 속도와 주행모드를 계산해 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권도일은 온전한 드라이버이길 포기한 사람 아니던가. 오로지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는 중이었고, 이제 막 그런 기회를 잡게 되었으니…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치킨게임? ‘이유 없는 반항’에서 열연을 펼치던 ‘제임스 딘’ 처럼?”

벼랑을 향해 총알처럼 내쏘다가 낭떠러지에 임박해서 급제동을 거는 놀이… 누구 배짱이 더 좋은지를 가리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여 벌이는 사나이들의 놀이… 1960년대 미국 청소년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유 없는 반항’에서 당시 주목을 받던 미남 배우 ‘제임스 딘’은 낭떠러지를 향해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차를 몰지 않았던가.

“자, 달려요, 도일 씨!”

그녀의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장차 급가속을 하기 위해 멀찌감치부터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던 권도일이 힐앤 토! 순간적으로 엑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을 느낌으로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라이닝과 브레이크 패드로부터 쏟아져 나오던 마찰불꽃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을 테지… 파라락! 소리와 함께 뒷바퀴로부터 흙먼지가 튀어나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지선 씨! 뒤로 누워!”

겉은 낡았어도 6,000cc V8엔진, 500마력의 강력한 힘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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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