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8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13
“저놈, 권도일…. 우릴 유혹하는 게 분명해. 아니면 생판 랠리에 처음 나선 생초보거나 둘 중 하나야. 그렇지 않고는 해발 2346미터에 달하는 그랑베이몽 산에서 저런 쇼를 할 이유가 없어.”
역시… 전진후는 만만치 않았다. 큰 명성은 얻지 못했어도 산전수전 겪어낸 코-드라이버로서의 이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는 왼쪽 팔을 길게 뻗어 자못 흥분에 들뜬 유호성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손 치우세요. 드라이버 눈을 가리는 법이 어딨어?”
“평정심을 찾으란 뜻이야. 저따위 생쇼는 아예 보질 말라고.”
“저놈이 놀리는 꼴을 계속 뒤따라가면서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저놈이 달리는 건 전략을 쓰자는 것이고, 자네가 따라서 달리는 건… 한마디로 지랄 발작일세.”
“뭐요? 지랄 발작?”
“아, 미안! 히스테리라고 해두지. 이 시점에서는 히스테리를 부릴 하등의 이유가 없어.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는 스피드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거든?”
“하지만 랠리 자체가 열정 아닙니까? 열정이란 다른 말로 젊은이의 깡다구 아니겠습니까? 깡으로! 악으로!”
“닥치고 브레이크나 밟아! 이 닭대가리야!”
“뭐요? 닭대가리?”
“지금 치킨게임이나 하자고 덤비는 놈이 닭대가리 아니면 뭐야?”
쿠쿵, 파악, 끼이익! 머신의 하부가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재규어 XKR의 리어가 반 바퀴나 돌아간 채로 슬라이딩을 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서는 필경 차축이 부러졌거나 하다못해 타이어에 파스라도 난 듯했다.
“지금 경주를 하자는 거요? 뭐요?”
머신의 슬라이딩으로 인해 옆으로 밀린 흙더미에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 차창을 통해 드러난 눈앞의 정경은 맙소사! 사각으로 언뜻 내려다보이는 것만으로는 바닥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지 않은가.
“저걸 보라고. 우리가 머신을 세우니까 1974년 치타도 멈춰섰잖아. 저놈이 전진하던 차의 방향을 보란 말이야.”
“아! 그렇군요. 도로를 따라 내려온 게 아니네. 차머리가 낭떠러지를 향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놈이 정말로 치킨게임을 하자는 거였군.”
유호성의 몸에는 갑자기 소름이 돋아오르고 있었다. 자욱한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1974년산 치타 역시 급제동을 한 모양이었다.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낭떠러지에서 50cm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 치타는 겨우 멈춰서 있었다.
“저 차의 앞바퀴를 보라고. 이미 한계점까지 좌로 방향을 튼 상태야. 하지만 자넨 핸들을 12시 방향으로 놓은 채 달리고 있었어. 자욱한 먼지 속에서 벼랑으로 달리다가 날개 부러진 치킨이 될 뻔했다고.”
“그랬군요. 차체에 불이라도 붙었다면… 영락없이 통닭이 될 뻔했군.”
유호성의 눈에는 그제야 굽이진 차로와 길을 따라 이어진 나무, 그리고 랠리용 교통표지 사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제야 제정신이 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공연히 치킨게임을 벌이다니, 저놈이 미쳤나? … 미쳤군.”
후진시켜 차체를 바로잡고 내려다보니 벼랑 아래로 얼어붙은 론 강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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