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중목욕탕에서 밤새도록 울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역시 그런 사람과는 사랑을 논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대중목욕탕에서 한 번쯤 밤새워 울고 나야 상대방이 자길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유호성… 이제 너와는 끝장이야. 볼 장 다 봤다고!’ 대책 없이 욕탕 물에 들어앉아 있는 동안 그녀가 한 일이라곤 유호성을 원망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유호성이 말로만 사랑을 떠벌였을 뿐임을 새삼 깨달았다. 만약 그가 털끝만큼이라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다면 빨간 고쟁이만을 걸친 상태라도 무조건 자길 구출하러 왔어야 옳았다. 어떤 수를 써서든 자길 찾아와서… 방울을 덜렁이며 뛰어다니는 한이 있어도 자기에게 고쟁이를 벗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욕탕 문을 두들기는 사람은 고작해야 청소부뿐이었다. “이제 그만 나가줘야 쓰겄소. 고렇게 물속에만 담그고 있으면 워쩔라고… 껍데기 팅팅 불려서 벳게먹을라고라?” 이미 중늙은이 처지를 넘어선 할아버지였지만 그는 차마 여탕 문을 열어젖히지 못하고 유리문 밖에서 애원하고 있었다. 그 청소부야말로 얼른 일을 끝내야 퇴근할 수 있을 터인데, 김지선이 욕탕 안에서 무기 장을 치고 있었으니 열이 솟을 만도 했다. “할아버지! 문 열면 안 돼요. 성추행범으로 고발할 거예요.” 옥신각신, 김지선은 코밑까지 물속에 담근 채 나오질 못했고 청소부는 발끝만 여탕 안으로 들이민 채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청소부가 화를 이기지 못해 씩씩거릴 무렵에 단아한 정장 차림의 아가씨 한 명이 조심스레 목욕탕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팔에는 고급 호텔의 욕실 벽에나 걸려있을 만한 핑크색 목욕가운이 고이 접힌 채로 걸려있었다. “김지선 씨?” 그 아가씨는 여탕 문을 삐긋 열더니 틈새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물론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김지선이 그 아가씨의 팔에 걸린 목욕가운을 본 순간 너무 기뻐서 마구 고함부터 질러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조금만 늦었어도 물고기 될 뻔했어요. 우리 호성 씨가 보낸 사람인가 보죠?” “우리 호성 씨라뇨?” 황급히 탕 속에서 빠져나와 가운을 걸친 뒤에야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웬걸? 그 아가씨의 대답이 아리송했다. 김지선은 한동안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 틈을 놓칠세라 청소부는 커다란 잠자리채처럼 생겨먹은 뜰채로 욕탕 위에 둥둥 떠다니는 때를 건져내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김지선이 물속에 서너 시간 이상을 들어앉아 있었으니 어쩌면 가죽이 벗겨져서 둥둥 떠다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럼 이 가운을 호성 씨가 보낸 게 아니란 말에요?” “네, 그 가운은요… 서울에 있는 거성자동차 비서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급히 구해 온 거예요. 김지선 씨 맞지요?” “거성자동차요? 그럼 댁은?” “거성자동차 목포영업소 직원입니다. 퇴근 후에 본사 연락을 받고 찾아 온 거예요. 야근수당은 챙겨 주려나 모르지만… 자, 다 입으셨으면 저랑 함께 호텔로 가야 합니다.” “호텔? 그럼 우리 호성 씨도 그 호텔에 있나요?” “자꾸 호성 씨를 찾으시는데… 저는 그런 명령 받은 바 없어요.” 그 아가씨는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녀는 단지 도종호 상무의 명령에 따른 것뿐이었는데… 도종호의 배후에 현성애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전혀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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