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9회> 총칼 없는 전쟁 (2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이건 움직이는 범죄현장이로군. 꼼짝 마! 손들고 이리 나와!”

뒤쫓아 온 경찰관 한 명이 다짜고짜 유호성을 치타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 한 명은 습관처럼 ‘미란다 원칙’을 술술 외우기 시작했다. 외우는 속도가 너무 빨라 얼핏 들으면 염불을 외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 중얼중얼, 당신이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 $#@$%, 당신은 변호사의 도움을… 중얼중얼 #@%$ $%#~ 알겠습니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묵비권이 어쩌고 어째요?”

“시끄러워, 이 양반아. 당신은 체포됐어.”

경찰관들이 하도 다그치는 통에 유호성은 입만 쩌억 벌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긴 강유리의 꼬락서니를 보면 그들이 유호성을 범죄자로 몰아세울 만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젊은 여자를 성폭행 한 뒤 납치하려는 것처럼 보일 만도 했다는 것이다. 여자의 옷을 벗긴 채 두 손을 엮어 만세 부르는 것처럼 롤 바에 묶어놓고, 엑스 자 형태로 벨트를 조이고, 앞을 볼 수 없도록 검게 썬팅 한 헬멧을 뒤집어 씌워놓았으니…

얼떨결에 유호성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분위기가 어째 이상하게 돌아가는가 싶었지만 딱히 변명하기에도 궁색했다.

네 명의 경찰관들은 그러나… 유호성의 경우와는 달리 강유리 앞에서는 뒤통수만 득득 긁고 있을 뿐이었다. 알몸인 채로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으니 손 댈 수도 없었다. 아무런 옷이라도 벗어서 걸쳐줘야 했건만, 계급장이 달린 경찰 정복을 대뜸 벗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시선을 조금이라도 아래로 향하면… 이크! 이걸 어쩌나! 볼록한 아랫배 밑으로 차마 보기도 민망한 오아시스가 드러나 있었으니…

경찰관들이 뒤통수를 긁으며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동안 재빠르게 현장을 수습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현성애였다. 그녀는 벌써 유호성을 상대로 두 번째나 수호천사 노릇을 자처하는 중이었다.

언제던가… 목포 선착장에서 배 타고 한참이나 나간 곳에 둥둥 떠 있는 소위 ‘사랑의 무인도’에서 유호성과 김지선이 아담과 이브 놀이를 하던 날, 이미 유호성의 알몸을 충분히 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날, 술통 뚜껑으로 지겟작대기만 겨우 가린 유호성과, 엉덩이를 드러내고 모래바닥에 납작 엎드린 김지선이 얼마나 측은해 보였던지… 비록 미라처럼 붕대로 친친 감긴 했어도 그들의 알몸이 더 이상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를 썼던 일이 기억에 삼삼했다.

그녀는 입고 있던 스프링코트를 벗어서 일단 강유리의 알몸부터 가려주었다. 묶인 두 손을 풀어주고 헬멧도 벗겨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나설 수 없는 범죄현장 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묶여있는 여자의 정체는 몰라도 길거리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남자가 유호성이라는 사실에 문득 화가 치미는 걸 어쩌랴. “세상에, 이게 무슨 꼴이에요?”

현성애는 눈을 흘기며 구둣발로 유호성의 허벅지를 냅다 걷어찼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그녀를 알아 본 것일까… 유호성은 너무 놀란 나머지 억! 하는 소리를 토해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일 씨, 언제까지 보고만 계실 거예요? 어서 회장님께 전화하세요. 더 이상 일이 커지지 않게 손부터 써야 하잖아요?”

현성애가 이렇게 다그칠 때까지… 권도일은 강유리의 알몸에 넋이 빠져 있었다. 누구일까? 저 여자는. 두 손을 하늘로 향한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만으로도 그녀는 8등신 일품 몸매의 소유자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놀라서 인지, 흐느끼는 것인지… 시차를 두고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며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젖가슴의 형태는… 더 이상 형용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저 그곳에 코 박고 죽으라고 해도 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도! 일! 씨!”

고함을 질러도 소용없었다. 경찰관들 역시 그 모양 그대로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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