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4회> 바람에맞서는 법(3)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동경 120도 10초, 북위 30도 15초, 첸탄강 하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인근에 시후호(西湖)를 품고 있는 작은 고장 항저우(杭州)는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총 365대에 달하는 랠리머신들이 속속 집결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내로라하는 드라이버들은 사실상 아무도 없었지만, 한 물 갔을지언정 그래도 왕년의 경력을 들먹일 수 있는 드라이버만 700여 명, 지원팀을 비롯하여 선수들 사돈의 팔촌까지 합하면 수천 명이 모여들었으니 그야말로 축제의 시작이었다.
엄밀히 분석하자면 그 많은 군중들의 절반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유호성이 지적했듯이 취재에 목적을 둔 보도진이라고는 눈을 뜨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보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들이 스타가 된 것 같습니다. 이걸 보세요. 사람들이 온통 우리들 주위로만 몰려들고 있어요.”
“그러게 말이야. 왜들 이럴까?”
“염병…가만히 보니까 우리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아니야, 우리가 방송사 기자로 보이나봐.”
랠리 CF광고를 기획한 소위 천재 비서와 중국의 넓은 인맥을 과시했던 중국 통 비서, 그리고 매체를 주름잡고 있다던 매체 통 비서… 이렇게 셋은 어깨에 잔뜩 힘을 준채로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유민 회장께서 선거운동 때문에 한국에 잡혀계시길 망정이지 여기 와서 이 썰렁한 꼴을 보셨다면 분명히 노발대발 했을 거야.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크크, 그러게 말입니다. 당분간 우리들 신수가 훤히 트였어요. 그 양반 사모님에게 이혼 당한 뒤로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었다니까요?”
“이 양반이, 말조심해. 미친 사람이 뭐야? 그래도 우리들 목줄을 쥐고 계신 분인데… 미친개라면 또 모를까, 크크크크!”
날씨마저 흐린 까닭일까? 시후호 수면 위에 부옇게 번져있던 물안개가 언뜻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안개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깔린 안개 틈으로 각국의 깃발이나 문장을 프린트한 랠리 카들이 일렬로 도열하는 중이었다.
그 한 중앙, 이른바 주최국 존에는 낯익은 두 대의 랠리 카를 위시해서 태극문양을 장식한 십 여대의 머신이 정렬되어 있었다. 거성그룹에서 성능테스트 내지는 성능 과시를 위해 출전시킨 머신들이었다. 물론 낯익은 두 대의 머신은 권도일의 로열골드와 유호성, 현성애가 몰게 될 1974년 산 치타였다.
황금빛 찬란한 로열골드에 비해 불에 타다 만 것 같은 1974년 산 치타의 겉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유호성은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겉이 검다고 속조차 검을 소냐? 6,000cc에 500마력을 자랑하는 V8 엔진의 위용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운 오리새끼가 나중에 자라고 보니 백조가 되더라는 동화를 그는 이번 대회에서 실현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자, 감독님. 이번에 찍게 될 CF는 단순한 광고 CF가 아니란 거… 너무 잘 알고 계시지요? 이건 말이 광고지 실황중계나 다름없는 내용입니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광고! 이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입니까?”
“나도 그래서 잔뜩 흥분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 광고 팀도 랠리코스를 똑같이 달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도 내겐 영광이고요.”
CF감독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이번 일로 인해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길 원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니 이번 광고만 성공시키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역시 한 물 간 생선이나 다름없는 퇴역감독이었으므로.
어차피 실황중계를 하는 광고이니 예술성을 따질 필요 있나? 약아빠진 비서들은 돈만 챙기고, 한 물 간 CF 감독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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