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7회> 바람에 맞서는 법 35
9시 뉴스가 끝나자마자 회사로 돌아온 재벌2세는 마침 야근 중이던 홍보이사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하찮아 보이는 유민그룹과 그 아류회사인 HY 훌 푸드에서 5개국 관통 랠리 대회를 주제로 CF 광고를 제작, 방영하는 데에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홍보 이사님, 대회는 우리가 주관하는데 어째서 유민그룹과 HY 훌 푸드에서 광고를 쏘는 걸까요? 뭐 좀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야근을 불사하고 9시 뉴스를 모니터하던 홍보이사는 식겁했다. 평소엔 과묵하기만 하던 오너가 갑자기 회사로 들이닥쳐 이런 걸 물어보다니… 그는 당황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둘러대야만 했다. 아무래도 이번 랠리 대회는 홍보전의 일환인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제 생각엔… 두 회사가 기발한 공생적 판촉활동을 벌이는 중인 것 같습니다.”
“기발한 공생적 판촉?”
“두 회사의 오너가 얼마 전에 이혼한 부부입니다. 그런데 이번 광고를 보자니까… 자기네 회사의 주력제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패션광고로 승부를 내려 한다, 이 말씀이지요. 짐작컨대 두 사람은 위장이혼을 한 것 같습니다.”
“공생은 뭐고, 위장이혼은 또 뭡니까?”
“재벌의 편법적인 재산상속 수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장이혼을 해서 회사 하나를 마누라에게 상속세 없이 넘겨주고, 그 회사로 하여금 패션 업에 진출토록 한 뒤에 유민 회장이 지원광고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확실합니다. 얼마 전에 ‘기업범죄의 쟁점연구’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 데요… 그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원, 세상에… 자고로 공자께서는 ‘아는 것을 안다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 논리대로 본다면 거성그룹의 홍보이사는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홍보이사께서는 유민그룹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유민 회장이야말로 원성이 자자합니다. 맨손으로 거대한 제련업을 일구었지만… 적대적인 기업인수와 합병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요. 남의 회사를 집어삼키는 데에 귀신이고, 합병하는 과정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그런 악덕기업의 자제를 우리 거성그룹 랠리 팀의 드라이버로 발탁한 것에 대해서 불평이 자자한 편입니다.”
홍보이사는 재벌 2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기도 했는데, 이번 기회에 속 시원히 고자질이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유호성 드라이버에 대해서 불만들이 많다고요? 누가?”
“우리 거성 직원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호성 선수가 유민그룹 회장의 아들이기도 한데다가, 워낙 호색한이라는 소문도 있고…”
“그렇지만 우리 거성그룹에서는 권도일 선수도 함께 출전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워낙 유호성 선수에 대해서 말이 많다보니 권도일 선수가 출전한 사실도 모르고들 있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불만들이 많습니까? 어허! 그것 참 문제로군요.”
재벌 2세는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내심으론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참새들이 어찌 봉황의 깊은 뜻을 알까? 거성그룹에서 큰돈을 들여가며 이번 대회를 추진한 속내를 알 리가 없지. 권도일 선수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비밀리에 추진하는 ‘로열골드’의 성능테스트 과정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니… 얼씨구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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