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 감추어진 승부 (33)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모두 깊이 잠든 줄 알았던 ‘류자샤’ 협곡의 랠리 포스트. 하지만 미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수십 알 집어먹은 20미리그람짜리 비아그라 때문에 지겟작대기를 치료하기 위해 날밤을 패는 유호성과 현성애 외에도 N-Dos 단의 특공 소령, 권도일, 또한 그의 보고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재벌 2세… 놀라울 따름이었다.
수십 년 만에 상봉한 이복형제 도형철과 도종호도 잠을 이루지 못하긴 매일반이었다. 그들은 재벌 2세의 지원을 받아 향후 북한에 어떤 식으로 골프를 활성화 시킬 것인지를 의논하기 위해 커피를 끓여놓고 날밤을 패는 중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원희는… 다시 도진 사랑의 열병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질투심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휴게소 텐트 안에서 꿈에도 그리던 권도일을 만났다. 또한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여자와 서둘러 개인텐트로 향하는 유호성의 옆모습을 스쳐보았던 것이다. 과연 얼마 만에 만난 두 남자였던가!
권도일과는 1년 전, 평양호텔 라운지에서 양아버지 도형철의 소개로 만나지 않았던가. 함께 가스맥주를 마신 뒤에 의기투합, 평양호텔 스위트룸에서 몸 친구를 맺다가 그만 사랑에 빠지지 않았던가.
유호성과는 ‘전 세계 여자 프로꼴푸 겨울대회’때 강유리 선수의 캐디로 참가했던 그를 꼬여낸 과거가 있었다. 그때 마침 5개국 관통 랠리대회 참가신청을 받던 중이라서, 골프 쪽으로 기우는 유호성의 마음을 돌려 랠리 선수로 등록시키라는 임무를 담당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 권도일의 뜻에 따라서.
“유호성이 랠리대회에 참가해야만 내가 그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어요.”
“어떻게요?”
“사막 한가운데서 없애버리는 거지요. 랠리란 워낙 험한 경기라 사고를 당해 선수들이 죽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사고로 위장하자는 거예요.”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요?”
“그래야만 내 아버지의 묵은 한을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날,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평양호텔 스위트룸에서 권도일은 눈시울을 붉히며 도와달라고 했지. 마음이 약해서였을까? 아니면 사랑에 빠져서? 예원희는 그날, 스스로 제 몸을 바쳐 유호성을 꼬여내기로 작심하지 않았나.
이 모든 것이 1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권도일은 1년 만에 만나서도 사업이야기에만 몰두할 뿐, 전혀 사랑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예원희는 그 점이 못내 서운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뿐인가? 그녀의 유혹으로 인하여 목숨을 저당 잡힌 줄도 모르고 랠리 선수로 참가한 유호성이 다른 여자를 부여안은 채 서둘러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하자 공연히 질투가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예원희는 이런 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한 시간쯤 지난 새벽 4시. 이탈리아계 미국인 음악가 ‘척 멘지오니’의 ‘블루겔 혼’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기병대가 인디언을 소탕하기 위해 말 달리는 듯이 용맹한 기상이 묻어나는 나팔소리였다.
구텐 모르겐, 봉 쥬르, 굿 모닝, 나마스테, 니하오마, 알로하, 오하이오, 부댄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아침인사를 하며 랠리 출발선으로 모여들었다. 모두들 긴장된 표정이긴 했지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었는데…
“아이, 정말… 밤새 뒤집어 질 뻔 했네.”
유독 투덜거리며 비실비실 걸어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1974년 산 치타의 드라이버 유호성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빈대떡이 서너 장이나 들러붙어 있는 것처럼 팅팅 부어있었다. 부어오른 자국에는 땀구멍이 숭숭 드러나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구부정하게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넣어 사타구니를 잡고 비실비실 걸어 나왔다. 현성애는 그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나오고 있었는데, 두 손으로는 연신 엉덩이를 긁적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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