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으로 분류된 22개국에 대해 초고성능 인공지능(AI) 모델의 접근을 차단한다고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국은 우방·기타·적대국으로 분류해 한국을 포함한 우방 18개국은 기존처럼 제한없이 AI모델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이날 “AI와 관련한 국가 안보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미국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무기화 등 악용 가능성이 있는 AI 기술이 중국과 같은 적대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이번 조치는 AI 반도체 수출 제한을 넘어 챗GPT 같은 폐쇄형 초고성능 AI 모델을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하드웨어 뿐 아니라 초고성능 AI 모델 자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여기고 있음을 뜻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에 엔비디아 A100, H100 등 고성능 AI 반도체 수출을 금지해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GPU 접근을 차단했는데, 이번에는 AI 소프트웨어와 연구 데이터 접근까지 막았다. 그만큼 AI 모델이 대량살상 무기 설계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급속 발전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적대국 뿐 아니라 기타국에도 제한 조치가 새로 추가된 점도 눈에 띈다. AI 반도체 수출과 데이터센터 구축시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는데 반도체 수출시 반도체의 ‘총연산력’에 상한을 둔 것이다. 가령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인 H100을 기준으로 ‘2년간 32만개’에 해당하는 연산력이 상한이다. 반도체 개수가 늘어나 ‘총연산력’이 커질수록 AI의 성능이 좋아지는 만큼 믿음이 가지 않는 국가들에 반도체 개수를 제한한 것이다. AI 반도체가 제3국을 우회해 중국 등지에 들어가는 것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우리로선 AI 기술을 제한없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고 AI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산업 발전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배제로 대중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동맹국 압박을 서슴치 않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중 균형잡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미중 패권 전쟁, 공급망 재편 속에서 AI 반도체 기술 규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미중 틈에서 유리한 것만 찾다간 오래 못간다. 미국이 자국 기술의 독점적 지위를 더 강화해 나갈 경우 미국 기술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한계도 인식해야 한다. 이번 조치에 따른 경제적 이해관계를 냉철히 분석·대응하는것 못지않게 주도적인 AI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결국 관건이다.